신영복 선생도 한때 단골 … 27년 산채식당 '오대산 내고향'
나이 들면서 식성이 한쪽으로 쏠린다. 고기보다 생선이 좋고, 그보다 나물이 더 좋아진다. 그것도 들나물보다 산나물에 끌린다. 내 입맛을 꿰뚫었는지 거부할 수 없는 초청이 왔다. 부러운 은퇴생활을 하는 지인이다. 은둔의 땅 또는 비조불통(飛鳥不通: 나는 새가 아니면 가지 못함)의 계곡을 지나야 나오는 오지라는 구룡령 아래 3둔 골짜기로 산나물 먹으러 가자는 것이다. 머뭇댈 이유나 인내심이 없다.
지난 주말 하룻밤을 묵으면서 산나물 잔치를 벌이고 왔다. 시간의 제약과 위의 저장 능력을 탓하며 한 자리에서 먹은 거로는 지금껏 가장 여러 종류의 산나물을 만끽했다. 더 신난 것은 안주인 안정숙(56)씨를 따라다니며 1만㎡(3000평) 텃밭에서 자라는 산나물을 공부한 시간이었다. 그는 새댁 때부터 36년간 해발 1500m를 넘나드는 험준한 산판을 누비며 산나물을 뜯어 날랐고, 산채 음식점 겸 펜션 ‘오대산 내고향(강원 홍천군 내면 광원리 698/전화 033-435-7787)’을 27년째 운영하고 있다.
이번에 보거나 먹은 산나물(약용식물 포함)을 생각나는 대로 적어 보면 50가지다. (나물 이름은 현지어로 정리했다. 구전 이름이라 실제 식물도감에 찾아보면 다른 나물이 나오기도 한다.) 개미취(책에는 버들분취), 단풍취, 미역취, 며늘취(금낭화=며느리밥풀꽃), 오가피순, 곰취, 음나무순, 모싯대, 산갓(안정숙씨가 부르는 이름. 는쟁이냉이의 다른 이름인 산갓는 다르다), 강활나물, 두릅순, 취나물, 중댕가리(쥐오줌풀), 산당귀(재배하면 토당귀), 일당귀(왜당귀), 산작약, 꽃작약, 뚱딴지(돼지감자), 토종 참나물, 파드득나물(삼엽채), 애기똥풀(매미나물; 흔히 아는 애기똥풀이 아니다), 명이, 달래, 둥굴레, 지장가리나물(풀솜대), 가시오가피, 참오가피, 눈개승마, 곤드레(고려엉겅퀴), 다래순, 싸리순, 더덕, 고비, 고사리, 영지버섯, 익모초, 마가목순, 황기, 씅애(왕고들빼기), 고들빼기, 돌나물, 돌미나리, 명아주, 부추, 파, 마늘, 고추, 도라지, 벌나무, 개불란(영어 이름 Lady's slipper).
두어 곳 둘러 도착하자 달둔·월둔 지나 깊은 계곡에 있는 음식점에는 밤 그늘이 내리고 있었다. 어스름에도 두 가지가 바로 눈에 들어왔다. 소귀 신영복(1941. 8. 23~2016. 1. 15) 선생 휘호와 5개의 ‘블루리본’이었다.
눈익은 ‘신영복체’ 큰 글씨로 ‘높은 산 맑은 시내’라고 쓰고는 작은 글씨로 ‘산은 시내를 보내고 시내는 산을 부른다 山水大友古今眞’이라고 부기했다. 한문은 ‘산과 물이 오랜 벗인 것은 예나 지금이나 참으로 그렇다’는 뜻이다. 휘호의 사연을 안씨는 페이스북에 소개했다(2016년 11월 29일). “더불어숲학교를 세우시고 세미나를 열 때마다 20㎞가 넘게 떨어져 있는 저희 집 음식을 시켜 드시고 저희 집과 맞는 글을 써주신다 하던 그 온화한 모습이 기억납니다. 얼마 남지 않은 1주기에 맞춰 제자 분들이 전국에 써주신 선생의 글을 모아 전시한다기에 흔쾌히 승낙한~~~높은 산 맑은 시내! 저희 집이 지대가 높고 뒤 계곡에선 맑은 물이 많이 흐른다 하여 써주신 글입니다.”
소귀 선생은 음식점이 있는 샘골보다 하류인 미산계곡 개인산방(開仁山房)에 2003년 10월 ‘더불어숲학교’를 열고 2년여 초대 교장을 맡았다. 학교는 2008년 휴교했지만 선생은 2010년까지 그곳 일을 봤다. 그 시절 이야기인가 보다. 부러움이 샘솟는다.
식당 출입문 유리에는 2013~2017년 ‘블루리본’ 5장이 내리 붙어있었다. 블루리본 서베이는 2005년 출범한 우리나라 최초의 레스토랑 평가서다. 회원들이 매긴 점수를 합산해 평균을 내는 방식으로 전국의 맛있는 음식점 등급을 매긴다. 깊은 산골 음식점이 5년 동안 해마다 빠지지 않고 표지를 받았으니 예삿일이 아니다. 웃지 못할 사연을 안씨는 털어놨다. “처음 2년은 무슨 홍보물인 줄 알고 버렸어요. 그랬는데 2015년에 또 왔어요. 뭔가 해서 전화를 해봤죠. 설명해주는데 꿈도 못 꾸던 얘기더라구요. 놀라서 2년치 버렸는데 다시 해줄 수 있냐고 물었지요. 그렇게 구해서 붙여놓은 거예요. 나는 전혀 모르는데 평가단이 지나갔다는 거 아녜요. 그 분들이 믿고 먹을 수 있다고 저렇게 인정을 해주니까 힘들었지만 감사하죠. 자부심도 생기고요.”
기꺼이 ‘선생’이라 부를 수 있는 역사적 인물이 생전에 20㎞가 멀다 않고 식사하러 다녔으며, 5년 연속 ‘블루리본’을 받았다면 맛에 대해서는 안심해도 좋겠다. 게다가 나는 ‘산나물 성애자’ 아닌가.
대표음식은 산채정식(1만5000원/2인 이상 주문)이다. 저녁상이 차려졌다. 생나물로 곰취·당귀잎·참나물, 초간장절임으로 오가피순·명이·곰취, 오가피순·참나물 섞음과 껍질더덕 장아찌, 더덕장아찌, 산나물·강활가루 전, 서리태 콩자반, 돌게 간장게장, 감자조림, 다래청으로 맛을 낸 모싯대·얼갈이·돌미나리·양배추 물김치, 꽈리고추·호박씨·멸치볶음, 수수부꾸미, 강활가루·도토리묵, 11년 묵은 고추장, 11년 묵은 고로쇠된장으로 끓인 찌개가 상에 가득하게 나왔다. 쌀밥에는 사이 사이 노란 조 알갱이가 빛났다. 그리고 나온 나물무침 10종 모둠. ①개미취(묵나물· 사진 가운데) ②단풍취(묵나물·6시 방향/이후 시계방향 따라) ③오가피순 ④곰취 ⑤음나무순 ⑥모싯대 ⑦산갓 ⑧강활나물 ⑨두릅순 ⑩취나물이 접시에 돌아가며 그득하게 차려 있었다. 들기름, 참깨가루, 2000도 숯가마에서 24시간 구운 천일염(도초도 소금)만으로 무쳤다고 했다. 간은 심심했다. 안씨는 “나물이 다 제각각 성격이 다르다. 그 개성을 살리고 싶어서 양념을 최소한만 한다”고 했다.
일행 중 여러 사람이 장 맛을 칭찬했다. 특히 산중 진미들을 제쳐두고 고추장을 젓가락으로 찍어 밥에 올려 먹으며 "맛있다"를 연발했다. 한쪽에서는 접시에 남은 나물무침을 된장찌개 뚝배기에 쓸어 담고 밥을 비볐다. 배불러 미치겠다던 사람도 참지 못하고 몇 술을 더 뜨고 말았다.
흥이 오른 주인이 설명을 했다. “고추장이 11년 묵으니까 까맣고 단단하게 굳었다. 6년 된 산사열매청(발효액·효소라고 흔히 말하지만 원리상 맞지 않는 말이다)을 섞어 다시 저어뒀다. 고로쇠된장도 11년을 묵어 굳어졌다. 2년짜리 된장을 섞고 메주가루와 보리밥을 더 해서 넣어 물러지게 했다. 7년 전(2010년) 돌아가신 시어머니가 담근 장인데 중간에 식당을 임대 준 기간에는 쓰지 않아서 남아있는 것이다.”
다음 날 아침에는 또 다른 대표음식인 두부전골(8000원/2인 이상 가능)이 올라왔다. 특식으로 메뉴판에는 없는 양념한 순두부, 깊은 산골 민물고기탕까지 준비했다. 이 집 두부가 유명한 것은 동네에서 키운 콩만으로 만들기 때문이다. 1년에 40~50가마를 쓰는데 홍천군 내면 콩만 쓰는 게 원칙이다. 내면농협 가을 수매 때 충분한 양을 확보한다. 물량이 달리면 이웃 서석농협에서 사들인다. 식당 뒤 채 처마 밑에는 콩 가마가 그득히 쌓여 있었다. 20가마 넘어 보였다. 자세히 보니 생산자 표시에 ‘광운리’ ‘창촌리’라고 씌어 있었다. 음식점 있는 곳이 광운리, 바로 옆 면소재지 마을이 창촌리이다. 지난 밤에 보니 두부 만드는 부엌에는 어른이 들어가 앉아도 남을 만한 가마솥이 걸려있고 그 앞 커다란 고무 함지박에는 두부를 담가놓고 간수를 빼느라 물을 흘려 보내고 있었다. 24모나 됐다. 이 두부를 전골·구이 메뉴로 내고, 졸여서 반찬으로 쓰기도 한다. 몽글몽글 뽀얀 순두부도 부드럽고 고소하기가 다른 데서 만나기 쉽잖은 맛이었다.
안씨는 “두부는 매일 새로 해요. 손님 많은 가을 단풍철에는 하루 두 번 해요. 어느 손님네 아이가 두부를 안 먹었는데 우리 집 두부를 잘 먹더래요. 그래서 아이한테 두부 먹이려고 우리 집에 다니는 가족이 있어요. 그런 거 보면 행복하죠”라며 정말 행복한 표정을 지었다.
깊은 산골의 민물고기 매운탕은 큰 강변에서 먹는 것과 다르다. 맛이 맑고 깊다. 물고기 살이 야물고 차지기 때문이다. 여기는 물 좋은 내린천 최상류 유역이다. 오대산 줄기의 두루봉·응복산에서 발원한 두 개울과 가칠봉 아래 명개골과 삼봉약수에서 내린 물이 모두 합수한 계방천이 S자를 크게 그리며 음식점 뒤를 휘감고 지나간다. 수량은 풍부하고 물살이 빨라 돌 틈에 사는 물고기들은 활력이 넘친다. 퉁가리(산메기)·쉬리·꺽지·버들치·미꾸라지 등 매운탕 거리로 좋은 물고기를 통발만 놓아도 하루 대여섯 냄비 끓일 양은 쉽게 잡힌다. 매일 통발을 놓았다가 걷어온다. 저녁을 먹은 다음에야 잡아온 걸 보고 입맛을 다셨더니 아침에 매운탕으로 준비해줬다. 매운탕은 메뉴판에 없지만 민물고기는 있는 날이 많으니 주인에게 청하면 먹을 수도 있다.
안씨는 아침 7시부터 집 주변에 자라고 있는 나물들을 설명해줬다. 입으로는 말을 하면서도 손으로는 계속 일을 하고 있었다. 두릅 움 순이 많이 올라왔다며 계속 꺾었다. 아침에 튀김을 해주겠다고 했다. 이 장면은 그의 인생을 관통한 동작과 생각의 집약이었다.
그는 1981년 맏아들인 이진우(64)씨와 결혼하면서 이곳으로 들어와 지금까지 살고 있다. 집 앞을 지나 구룡령(정상 해발 1013m)을 넘어가는 국도56호선이 그때는 차가 비켜가기 힘들 정도로 좁은 비포장도로였다. 구전에 의하면 1908년 구룡령 광산의 철광석을 실어 내기 위해 처음 길을 냈고, 분단 이후에는 군사도로로 사용하던 길이다. 도로가 뚫리기 전 구룡령 옛길(명승 제29호)에는 산적이 출몰해 사람이 모일 때까지 기다렸다가 15명이 넘어야 고개를 넘었다고 한다.
현재의 음식점에서 길 건너에 있는 닭장과 작은 비닐하우스 있는 곳에서 시어머니 모시고 신혼 살림을 시작했다. 비닐하우스 자리에 있던 안채는 정말 게딱지만했다. 시누이 넷과 시동생 두 명이 함께였다. 그때 소원이 큰 집에 사는 거였다. 2년만 살고 분가하기로 했지만 살다 보니 36년을 살고 있다. 심심산골에 1990년부터 천지가 개벽하는 듯한 변화가 일어나기 시작했다. 살림이 불길처럼 일어났다. 국도56호선 확장·포장 공사가 집 앞을 지나갔다. 시어머니와 건설현장식당(함바집)을 했다. 도로공사장에서 일하는 사람들에게 밥을 해준 것이다. 어려운 여건에서 그나마 할 수 있는 음식을 차렸는데 외지에서 온 사람들에게는 기막힌 별미였다. 주변에 널려있는 산나물과 이 동네 콩으로 만든 ‘촌두부’였다. 요즘도 대표메뉴로 사람을 모으고 있는 음식이다. 1991년 식당을 차렸다. 사람이 구름처럼 몰려왔다.
음식점·펜션과 넓은 텃밭이 들어앉은 땅은 계방천과 국도56호선이 앞뒤를 둘러싼 주머니 같은 지형이다. 그 사이 1만㎡ 전체가 이 집 땅이다. 원래는 지대가 낮아 여름에 큰물 한번 지나가면 절반은 휩쓸려가는 쓸모 적은 땅이었다. 국도 공사를 할 때 험준한 고개에 길을 내다보니 산비탈 절개하는 일이 많았다. 토석이 엄청나게 나왔다. 시공회사는 토석을 버릴 곳이 필요했다. 가까울수록 비용이 덜 든다. 함바집 주인은 천변 저지대를 튼튼하게 매립하고 싶었다. 서로의 필요가 만나 저지대는 금싸라기 땅으로 우뚝 섰다. 함바집을 1년여 해서 지금 식당으로 쓰는 집을 한 채 지었고 이제는 모두 다섯 채로 늘었다. 안씨의 소원은 넘치도록 풀렸다.
이 땅은 주인부부에게 도깨비방망이 같은 보물이 됐다. 식당의 생명선이 산나물인데 제철에 산에 들어가는 게 점점 어려워지고 있다. 숲은 점점 우거지고 산불이 잦은 데다 한 번 나면 피해가 막대하기 때문이다. 올해는 특히 이웃 마을 명개리 쪽 산에서 불이 났고, 며칠 뒤 강릉과 고성에서도 큰 산불이 나면서 입산이 전면 통제됐다. 나물 작업을 거의 하지 못했다. 이럴 때를 대비해 부부는 산나물 씨를 받거나 뿌리를 캐 와서 집 주변 울타리와 넓은 텃밭에 심었다. 처음엔 한두 포기였지만 경쟁하듯 뿌리를 벋어 사람이 관리하기가 어려울 정도로 무성해졌다.
이런 살림을 일구기까지 안주인의 노고는 이루 말할 수가 없다. 그와 대화하다가 손을 보니 내 가슴이 아플 만큼 일이 골수에 사무친 모습이었다. 굽고 휘고 오그라지고 … 36년을 그렇게 살아 일에 인이 배겨 입으론 설명을 하면서도 손으로는 나물을 하고 머리로는 음식 구상을 하는 것이다.
손님은 점점 늘었지만 일을 너무 많이 해 2006년 손과 허리 관절이 고장 났다. 힘을 쓸 수가 없어 2008년에는 음식점을 임대했다. 4년 동안 남에게 맡겼다. 그 사이 건강을 어느 정도 회복하기도 했고, 어렵게 일군 터전을 더 잘 가꾸기 위해 2012년부터 다시 직접 운영하고 있다.
안주인은 “자연음식만 하는 게 생애 소망이다. 모든 나물은 산에서 뜯어오거나 텃밭과 울타리에서 키운 것들이다. 이 골짜기에서 난 것 100%라고 자신한다. 상 차리면서 즉석에서 무치고, 닭도 예약이 들어오면 바로 잡아서 솥에 올린다. 속이지 않고 거짓말 안 하고 열심히 하면 복은 하늘에서 준다. 저 밭에서 내가 필요한 나물이 늘 나오는 걸 보면 그렇다. 하늘의 복을 다 받았다고 생각한다. 워낙 어려운 살림을 살아와 지금은 어떤 어려움이 닥쳐도 두렵지 않다. 일을 하도 열심히 하니까 시어미니께서 ‘몸 아껴라, 몸 아껴라’ 하셨는데 그 말 뜻을 이제 몸이 알려준다.”
4월 1일~11월 중순에는 매일 오전 8시~오후 9시까지 영업을 하지만 11월 중순~3월 말에는 예약 손님만 받는다. 평시에도 산채정식과 토종닭백숙은 2시간 전에 예약해야 한다. 7~8월과 10월 성수기에는 토종닭 말고는 예약하지 않아도 바로 식사를 할 수 있다.
음식점 가는 길은 아직은 멀다. 홍천군은 면적 1817.90㎢로 전국에서 가장 넓은 군이다. 제주도(1848㎢)와 비슷하고 서울(605.21㎢)의 3배나 된다. 내면은 448㎢로 홍천군 전체의 24%를 차지한 전국 최대 면이다. 면이지만 울릉군(72.8km²)의 6배가 넘는 넓이다. 땅이 넓다 보니 음식점에서 홍천읍내까지는 80㎞, 1시간10분이 걸린다. 구룡령 너머 양양읍까지는 40분이면 간다. 하지만 서울에서 가는 길은 다음달부터 훨씬 가까워진다. 동서고속도로(서울~양양)가 완전 개통되는 덕에 내촌·상남 나들목을 이용하면 2시간 남짓이면 닿게 된다.
가을에 인파가 몰리는 홍천 은행나무 숲, 삼봉약수, 열목어가 끝없이 도약하는 칡소폭포 등이 바로 이웃해 있다. 누구든 이 협곡을 지나거든 황동규 시집『미시령 큰바람』(문학과지성사, 1993)에 실린 ‘삼봉약수’를 읊조려 보시라. 아름드리 노송들이 줄지어 환영하는 계곡 풍경보다 더 큰 감흥과 마음의 안식이 가슴에 내려앉을 것이다.
1
강원도 홍천군 내면에서 만난 개울,
우리 마음 이리 맑은 적 있었는가?
차(車)가 맑은 거울 부시며 개울을 건너고
새들은 얼굴 찡그리며 나무에 붙어있다.
삼봉약수가 사람을 기다리고 있을까,
나무토막 박아 만든 계단 중간에서
왼손은 허리에 오른손은 펴서 이마에 대고?
어지럽혔던 개울 다시 거울이 되면
웃는 낮달 뜬 하늘에 새들만 표표히 날리.
2
세상이 고장난 시계처럼 움직이면
들어가 살리, 홍천군 내면.
내면에서도 계방천(桂芳川) 지류의 한적한 숲길.
허허로운 바람소리 : “절망도 때로는 도피(逃避)니라.”
입구의 팻말만 바꾼다면
두어 겨울 나기 어렵지 않으리.
약수터 안내판 대신 “떠돌이 쉬는 곳.
찬 물에 계속 뜨거운 머리 식히지 못하면 그대로 죽는
열목어가 마지막 와서 몸과 마음 묻는 곳.”
잣 콕콕 박힌 손두부 구이 들기름 향 고소한 '길매식당'
서울에서 가는 길에 아직은 동서고속도로의 마지막 나들목인 동홍천을 나가면 바로 만나는 ‘길매식당(강원 홍천군 화촌면 구룡령로 214-1 화촌중학교 앞/전화 033-432-2314)’에서 점심을 먹었다. 홍천 여행 첫 끼다.
한적한 시골에 있지만 주말이면 예약도 안 되고 대기손님이 줄을 길게 서는 집이다. 2017년 ‘블루리본’을 받았다. 독특한 옥호는 주인 이름을 따왔다. 김길매(72) 할머니가 1990년부터 도로변 작은 가정집에서 두부를 만들어 팔면서 시작해 28년째 이어오는 토속음식점이다. 예전에는 납작한 시멘트 기와집이었는데 최근 집을 새로 지어 안팎이 깔끔해졌다. 집 둘레에는 주인의 성품인 양 여러 가지 으아리·붓꽃, 매발톱·사랑초·꽃창포·제라늄 등 다양한 꽃들이 활짝 피어 화려한 자태로 손님을 반겼다.
잣두부(구이·전골/1인 9000원)백반이 유명한 집이다. 마을에서 생산된 콩으로 만드는 두부에는 잣 알갱이가 콕콕 박혀 있다. 김 할머니가 날마다 새벽에 일어나 만드는 두부가 다 팔리면 그 날 영업은 바로 종료한다. 부드럽고 구수한 잣두부구이가 기억에 남는데 기름 잘 먹어 반짝이는 솥뚜껑 번철에 두부를 잘라 올리고 들기름을 듬뿍 둘러서 내왔다. 기름이 지글지글 끓으며 두부가 구워지는 모습만 봐도 입 안에서는 벌써 두부가 굴러다니는 듯하다. 백반 반찬을 보니 10가지가 하나같이 강원도 산골답다는 느낌이 전해지는 토속음식이다. 코다리양념구이, 감자조림, 말린 애호박나물, 고사리무침, 고추지 고추장무침, 고추씨 들어간 백김치, 석박지, 말린 가지나물볶음, 취나물무침, 오이지무침. 맛이 빠지는 것이 하나도 없다. 한 순간에 내 산골 고향에 간 듯 향수가 넘실대는 밥상이다.
막국수(7000원)는 좀 색다르다. 직접 뽑은 면발이 가늘고 차졌다. 그리고 쉽게 불었다. 김 할머니 아들은 막국수를 들고 오면서 “먼저 드셔야 한다”고 재촉했다. 사리는 추가로 시키지 않았는데도 따로 조금 내왔다. 벽의 메뉴판 아래에 ‘막국수 맛있게 먹는 법’이 게시돼 있다. 살얼음이 떠있는 동치미 한 국자, 설탕 두 스푼, 겨자 반 스푼, 식초와 고추씨기름 적당량을 넣고 비벼서 먹으라고 권했다. 메밀은 중국산을 쓴다고 했다. 달지 않은 동치미처럼 맛을 내려고 무리한 노력을 기울이지 않은 순박한 맛이다. 한 끼를 그것만으로 끝내기에는 어딘지 허전함도 있었다.
모든 식사는 2인분 이상만 주문을 받는다. 두부를 먹고 막국수를 더 시켜도 2인분이 돼야 한다. 오전 10시부터 오후 7시까지 연다고는 하지만 두부가 떨어지면 언제든 닫으니 점심시간 이후에는 전화해보고 가는 게 안전하다. 매주 화요일 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