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쪽같이 사라진 정부양곡 26억원치, 누가 훔쳐갔나?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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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앙포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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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북 예천에서 정부 양곡 수십억원치가 사라졌다. 경찰은 민간 위탁으로 양곡을 보관하던 창고업자가 빚에 쪼들리다 양곡을 훔친 것으로 보고 있다.

800kg들이 양곡 2240포대 사라져 26억 피해 #경찰, 창고 위탁운영한 창고업자 용의자 지목

24일 경찰에 따르면 예천군 풍양면 8개 저장 창고에 보관 중이던 정부 양곡 800㎏들이 2240포대(1792t)가 최근 사라졌다. 창고에서 보관하고 있던 2014~2016년산 정부 양곡의 일부다. 예천군은 재고 조사에서 이 같은 사실을 발견하고 지난 22일 경찰에 수사를 의뢰했다. 예천군은 사라진 양곡의 가격이 수매가 기준으로 26억원(시가 17억원)에 이를 것으로 추산했다.

지자체들은 쌀 재고를 유지하고 농민의 경제적 부담을 줄이기 위해 양곡을 수매해 비축한다. 보관 장소의 물리적 한계 때문에 김씨처럼 저장 창고를 갖고 있는 이들에게 보관료를 주고 위탁 운영한다.

혹시 모를 도난 사건에 대비해 5~6명의 연대보증을 세운다. 예천군은 지역 창고 69곳에 나눠 정부양곡 보관 의뢰했다.

부친으로부터 창고를 물려받은 김씨는 대를 이어 창고업을 하고 있다. 주로 정부양곡과 일반 농가에서 맡기는 농산물을 보관하고 보관료를 받았다.

수사에 착수한 경찰은 창고를 맡아 운영하던 김모(46)씨가 몰래 양곡을 처분한 것으로 보고 있다. 김씨는 현재 가족을 남겨두고 잠적한 상태다.

8개 창고 중 6개는 김씨의 모친 명의, 1개는 조카 명의, 1개는 본인 명의로 두고 있었지만 실제 관리는 김씨가 하고 있었다. 정부 양곡을 보관하는 대가로 매달 받는 보관료 2500만원도 김씨가 모두 챙겨 왔다.

예천군 관계자는 "정기적으로 점검을 나갈 때마다 김씨가 '아무 이상 없다'고 공무원을 안심시키고 창고 안쪽을 볼 수 없도록 입구 쪽에 800㎏들이 포대를 집중적으로 쌓아둬 양곡이 사라진 사실을 늦게 알았다"면서 "김씨가 눈에 띄지 않게 1년여 전부터 조금씩 양곡을 처분해온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김씨는 정부양곡 말고도 일반 민가에서 맡긴 쌀도 상당 수 보관해 온 것으로 알려져 피해 규모는 늘어날 것으로 보인다.

경찰은 사라진 김씨를 추적하는 한편 그가 어떤 방식으로 양곡을 현금화했는지 수사하고 있다. 규정상 매년 3·10월 2차례에 걸쳐 정부양곡 재고를 조사하게 돼 있지만 담당 공무원이 이를 제대로 하지 않았다는 지적도 나온다.

박원식 예천경찰서 수사과장은 "김씨는 저장 창고 말고도 미곡종합처리장도 운영하고 있었기 때문에 스스로 양곡을 도정 처리해 판매했을 가능성도 있다"면서 "주변 농민들을 상대로 탐문 수사를 하고 있다"고 말했다. 박 과장은 "김씨 앞으로 돼 있던 식당이나 주택 등이 모두 경매에 넘어갔을 정도로 그는 재정난을 겪고 있었는데 빚에 시달리다 양곡을 훔친 것으로 보인다"고 덧붙였다.

예천군 관계자는 "농림축산식품부에서 양곡 보험 가입을 의무적으로 해 놓고 있어 피해에 대한 보상은 이뤄질 것"이라고 전했다.

예천=김정석 기자
kim.jungseok@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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