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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검찰, 미국 FBI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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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4면

채병건 기자 중앙일보 콘텐트제작Chief에디터
채병건워싱턴 특파원

채병건워싱턴 특파원

달라도 너무 다르다. 한국 검찰과 미국 연방수사국(FBI) 얘기다. 최소한 지난해 대선 직전부터 지금까지의 행보로 보면 FBI는 현재 권력을 의식하지 않고 움직였다.

지난해 11월 대선을 코앞에 두고 FBI는 여당 대선 후보인 힐러리 클린턴의 e메일 게이트 의혹을 재수사하겠다며 파란을 일으켰다. 클린턴 캠프는 즉각 반발했고 백악관도 충격을 받았다. 지난해 11월 2일 당시 도널드 트럼프 공화당 대선 후보는 한 유세에서 “나는 FBI를 존경한다”며 한껏 고무됐다.

대선 이틀 전 FBI는 e메일 의혹에 대해 불기소 방침을 발표했다. 그럼에도 FBI의 재조사 발표로 클린턴 캠프가 타격을 입은 것은 사실이다. 클린턴이 당선되면 e메일 의혹으로 현직 대통령이 수사를 받는 불행한 사태가 벌어지며 국정을 제대로 이끌 수 없을 것이라는 세간의 우려에 기름을 부은 조치나 다름없었다. 어쨌든 FBI는 수사가 미진하면 질질 끌지 않고 재수사에 착수한다는 방침을 재확인했다.

트럼프 대통령은 취임 직후인 올해 1월 22일 백악관에서 제임스 코미 당시 FBI 국장을 만난다. 코미의 등을 두드려 주고 귓속말까지 나눴다. 이런 장면이 미국 방송을 통해 유권자에게 그대로 전달됐다. 그래서 코미는 오래 갈 줄 알았다.

하지만 FBI는 두 달 후 트럼프 대통령의 전·현직 측근들이 러시아 측 인사들을 만나 부적절한 행동을 했는지를 파헤치는 러시아 게이트 수사에 공식 돌입한다고 발표했다.

급기야 트럼프 대통령은 이달 9일 코미를 전격 해임했다. 이유는 “일을 잘하지 못했다”였다.

하지만 그간 FBI 수장은 10년 임기를 보장받는 게 불문율이었다. 코미 이전까지 대통령이 FBI 국장을 해임한 사례는 단 한 차례밖에 없었다.

1993년 빌 클린턴 대통령 당시 윌리엄 세션스 국장이 공금을 집 수리비에 쓰고 관용기를 타고 개인 여행을 다닌 게 드러나며 공사를 구분하지 못해 해임됐다.

애매모호한 코미 해임 사유는 곧바로 의혹 확산으로 이어졌다. 러시아 게이트 수사를 차단하려는 의도라고 주류 언론은 질타했고 후속 보도가 쏟아졌다.

한·미 모두 새 정부다. 그런데 검찰과 FBI를 바라보는 국민 여론은 정반대다. NBC뉴스·월스트리트저널이 14일 발표한 여론조사 결과에 따르면 코미 해임을 놓고 ‘정당하지 않다’(38%)가 ‘정당하다’(29%)보다 더 많았다. 응답자의 과반(52%)이 FBI를 긍정적으로 평가한 반면 부정적 평가는 16%에 불과했다.

반면에 리얼미터가 15일 내놓은 여론조사에 따르면 문재인 정부의 개혁 과제로 검찰 개혁(24.0%)이 1순위에 올랐다. 모두가 한마디씩 하는 정치 개혁(19.9%)은 2순위였다.

미국의 사례를 모범으로 삼아 무조건 떠받드는 시대는 지났다. 그럼에도 FBI는 우리와 정말 비교된다. FBI에서처럼 국민의 과반이 한국 검찰을 호평하는 날이 올 수 있을까.

채병건 워싱턴 특파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