페이스북 폭력ㆍ자살 동영상, 왜 사라지지 않나 했더니

중앙일보

입력

페이스북에서 자살과 폭력 동영상 등 불법적인 게시물이 사라지지 않는 이유는 뭘까.
잔인한 죽음 장면을 담은 동영상은 정신 질환에 대한 경각심을 줄 수 있기 때문에 반드시 삭제해야 할 대상은 아니라는 게 페이스북의 판단이기 때문이다. 페이스북이 내부적으로 운용하고 있는 유해 게시물 삭제 원칙과 가이드라인을 영국 일간지 가디언이 입수해 21일(현지시간) 공개했다.

마크 주커버그, 페이스북 CEO.

마크 주커버그, 페이스북 CEO.

가디언은 “페이스북 사용자들이 어떤 게시물은 보고, 어떤 게시물은 볼 수 없는지 가르는 기준이 처음 공개됐다"며 "페이스북은 폭력ㆍ테러ㆍ섹스 등 유해 게시물 허용 여부에 관한 가이드라인을 사진과 슬라이드, 문서 등을 상세하게 설정해 놓고 있다”고 보도했다. 페이스북은 유해 게시물의 사전적 정의와 삭제 요건을 구체적으로 정하고, 허용되거나 불허되는 경우를 예를 들어 설명했다.

가디언 "페이스북 폭력ㆍ섹스 게시물 가이드라인 공개" #자살 동영상 "정신 질환 경각심 일깨워 삭제 안해" #보복성 성관계 동영상은 3가지 조건 있어야 삭제 #"불법적인 유해물 차단 기준 보다 엄격해야"

페이스북에 “트럼프를 총으로 쏴”라는 글을 쓰면 삭제될 가능성이 높다. 트럼프가 국가 원수로서 보호 대상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뚱뚱한 애들을 두들겨 패자” “빨간 머리 가진 사람을 발로 차라” “사람을 죽이려면 온 힘을 다해 목 중앙을 눌러야 한다” 같은 글은 잔인함을 내포하지만 삭제 대상은 아니다. 구체적으로 피해자가 특정되지 않기 때문이다.

페이스북 가이드라인에 따르면 잔인한 폭력성을 띄는 죽음 동영상도 무조건 삭제 대상은 아니다. 자해하는 모습을 생중계하는 것도 허용한다. ‘충격적인 장면을 내포하고 있다’는 표시를 하면 게재할 수 있다. 이유는 “폭력적인 죽음 영상은 보기에 불편하지만 경각심을 불러일으키는 데 도움이 되기 때문"이다. 페이스북은 "죽음 동영상은 자해로 인한 고통, 정신 질환, 전쟁 범죄 등 많은 중요한 이슈를 상기시키는 중요한 역할을 할 수 있다. 이 영상으로부터 미성년자를 보호할 필요는 있지만, 성인은 선택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 때문에 죽음 동영상이라고 자동으로 삭제하지 않는다”고 설명했다.

같은 이유로 동물 학대 영상이나 왕따 동영상, 신체적 괴롭힘 영상도 관리자가 임의로 삭제하지 않는다. 보복성 성관계 동영상, 일명 ‘리벤지 포르노’는 세 가지 조건을 충족할 경우에만 삭제한다. 영상의 배경이 사적인 장소일 것, 전라ㆍ반라ㆍ성관계 중일 것, 동의없이 찍은 영상이라는 점을 입증할 것이다.

최근 페이스북에 불법적이고 폭력적인 게시물이 늘어남에 따라 각국 정부와 비판론자들 사이에서는 페이스북에 대한 규제를 강화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다. 이에 대해 페이스북은 “페이스북은 뉴스를 생산하지 않기 때문에 전통적인 미디어 회사와 같은 기준을 적용할 수는 없다”고 주장한다.

모니카 비케트 페이스북 글로벌 정책 매니지먼트 책임자는 “2억 명이라는 사용자가 속한 배경이 너무나 다양해서 게시물 공유 기준에 관한 컨센서스를 이루기가 어렵다”며 “어떤 기준을 설정하더라도 회색 지대는 있을 수 밖에 없다"고 말했다. 풍자와 유머, 부적절한 콘텐트간 선을 긋기 곤란한 경우가 대부분이라는 것이다.
박현영 기자 hypark@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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