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송길영의 빅 데이터, 세상을 읽다

관성을 넘어서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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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2면

송길영 마인드 마이너(mind miner)

송길영 마인드 마이너(mind miner)

매일매일 그렇게도 할 일이 많았다고 합니다. 볍씨를 준비해 미리 싹을 틔우고, 물길을 내어 모내기를 하고, 피를 솎아 내고 벌레를 잡고, 큰바람과 큰비가 올 때마다 안달하며 얻어 낸 곡식의 힘으로 아이들을 기르던 우리네 조상의 이야기입니다.

하늘의 해와 구름의 힘에만 의존하기엔 걸린 목숨이 많아 이웃 동료들과 힘을 합치는 법을 그야말로 자연스레 깨치고 나니 나 혼자 사는 것보단 그래도 안심이 늘어 함께하는 즐거움은 덤으로 얻어 내었습니다. 다른 나라 사람들은 절대 모른다고 부득불 우기는 ‘정’이라는 낱말이 그 덤의 다른 말이라 믿으면서 말입니다.

이렇게 수천 년을 살아온 세월은 우리 몸과 마음에 나름의 관성을 만들어 내었습니다. 늘 얼굴을 부딪히고 몸을 부대끼며 살아야 하고 다른 삶의 속내까지도 함께하길 원하는 것, 같은 집단 내에 누군가가 나와 다른 삶을 살려 하면 혹 추수 때 서로 돕는 상호부조가 흔들릴까 두려워하는 것처럼 영 마뜩지 않아 보이는 것, 어딘가 새로운 곳으로 움직이려 하면 목숨이 걸린 땅을 버리고 불확실한 황야로 떠나는 듯해서 마음이 쓰이는 것. 이 모든 걱정은 지난 세월 조상들과 다시 그 조상들에게 물려받은 관성 속 저항입니다.

불과 수십 년 만에 거대한 도시로 사람들이 몰려듭니다. 두꺼운 아스팔트와 콘크리트는 단단한 포장으로 조상의 땅을 덮어 풀잎 하나도 자랄 수 없습니다. 여전히 다른 이와 힘을 합쳐 무엇인가를 이루는 것은 같을지 몰라도, 더 이상 해와 구름이 두렵지는 않습니다.

무엇보다 힘을 합치는 대상이 같은 땅이 아닌 다른 대륙에서 살기도 하는지라 얼굴을 꼭 봐야 할 이유도 같은 시간대에 깨어 있을 까닭도 없습니다. 빛과 같이 흐르는 정보의 구름은 각자가 만들어 낸 노력을 차곡차곡 나누도록 도와줍니다.

이렇듯 생활과 생업이 바뀌어진 지금도 물려받은 형질과 같은 습관과 생각은 뉴턴의 제1법칙과 같이 우리에게 고스란히 남아 있습니다. 어쩌면 우리를 보호하기 위해, 그리고 생존 확률을 높이기 위해 몸에 익게 한 법칙이 이처럼 빠른 변화의 세상 속에선 조금은 우리를 힘들게 합니다.

이제 관성을 넘어서야 할 때가 왔습니다. 언제든 지금 이 땅의 목초가 떨어지면 훌훌 떨치고 내 생명과도 같은 양떼와 함께 떠날 준비를 하는 유목민처럼, 우리는 이제 모든 것을 초월하고 어디서든 새로이 시작하는 습관을 배울 때가 된 듯합니다.

송길영 마인드 마이너(mind mine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