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18 인터뷰]"먼저 간 남편도 같이 불렀다면 좋았을텐데"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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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일 광주광역시 북구 운정동 국립 518민주묘지에서 열린 제37주년 5·18기념식에 참석한 유족 이순규씨. 프리랜서 장정필

18일 광주광역시 북구 운정동 국립 518민주묘지에서 열린 제37주년 5·18기념식에 참석한 유족 이순규씨. 프리랜서 장정필

5·18민주화운동이 37주년을 맞은 18일 광주광역시 북구 운정동 국립 5·18민주묘지. 누구보다도 일찌감치 찾아와 참배광장에 마련된 객석을 지킨 이가 있었다. 1980년 5월 장남을 잃은 이순규(84·여)씨다.

5·18때 장남 잃은 이순규씨, 임을 위한 행진곡 제창에 감격 #이씨 남편, 제창 아닌 합창에 안타까워하다가 지난해 숨져 #이씨 "제창 약속 지킨 문 대통령, 5·18 왜곡도 끝내달라"

소복 차림을 한 이씨는 오전 8시부터 행사장을 찾아와 2시간 뒤 기념식이 시작되길 기다렸다. 9년 만에 제창이 가능해진 ‘임을 위한 행진곡’을 마음껏 부르기 위해서다. 이씨는 기념식이 시작되고 제창 순간이 되자 누구보다도 밝은 표정으로 옆사람의 손을 잡고 흔들며 '임을 위한 행진곡'을 함께 불렀다.

이씨는 전날도 손자와 함께 이곳을 방문했다. 5남매 중 장남으로 광주에 살던 아들이 전남 장성의 고향집에 오려고 집을 나섰다가 계엄군에 의해 숨질 때 며느리의 배 속에 있던 큰 손자다. 이씨는 “문재인 대통령이 '임을 위한 행진곡' 제창을 지시했다는 소식에 기쁜 마음으로 손자와 함께 아들을 만나러 왔다”고 했다.

이씨는 이날 5·18기념식에서 남편을 생각하며 목청껏 '임을 위한 행진곡'을 제창했다. 지난해 먼저 생을 마감한 남편의 몫까지 함께 불러주기 위해서다. 남편은 생전 5·18기념식에서 ‘임을 위한 행진곡’을 모든 참석자와 함께 부르지 못하게 된 현실에 안타까워했다고 한다.

국가보훈처는 이명박 정부 때인 2009년부터 지난해까지 5·18기념식에서 임을 위한 행진곡을 제창이 아닌 합창으로 대체했다. 이씨 부부와 같은 5·18 유족의 반발도 소용이 없었다. 이씨는 “남편이 1년만 더 살았더라면 '임을 위한 행진곡'을 다시 함께 불렀을 텐데…”라며 아쉬워했다.

'임을 위한 행진곡'에 대한 제창이 불허되는 동안 5·18기념식은 파행을 되풀이했다. 유족들과 5월 단체들은 불참하거나 별도의 기념식을 열기도 했다.

그러나 이씨 부부는 매년 빠짐없이 참석했다고 한다. 이씨는 “우리 부부라도 '임을 위한 행진곡'을 불러야 내 아들과 민주주의를 위해 싸운 이들에게 위로가 될 것 같았다”고 말했다.

이씨는 마지막 바람을 전했다. 5·18의 배후에 북한이 있었다는 설, 5·18이 민주화운동이 아닌 폭동이라는 주장 등 5·18에 대한 왜곡과 폄훼를 끝내는 일이라고 했다. 이를 위해 문 대통령이 5·18기념식 참석과 '임을 위한 행진곡' 제창 약속을 지켰던 것처럼 선거 공약을 꼭 지켜달라고 했다.

이 노래를 5·18공식 기념곡으로 지정해줄 것도 당부했다. 이씨는 “다시는 '임을 위한 행진곡'을 합법적으로 제창하지 못하는 지난 세월과 같은 일이 반복되지 않길 바란다”고 말했다.

광주광역시=김호 기자 kimho@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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