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드러나는 마크롱의 용인술 …30대 대통령에 40대 총리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에마뉘엘 마크롱 프랑스 대통령이 야당인 공화당 출신의 에두아르 필리프를 총리로 지명하면서 그의 용인술의 윤곽이 드러나고 있다. 총선에서 패배하지 않은 상황에서 대선 캠프 외부에서 총리를 임명한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총선 패배 없이 야당 출신 총리 임명은 처음 #필리프 총리, 정치소설 출간한 복싱 마니아 #"마크롱은 책임 안 지면서 약속한다" 비판도 #엘리제궁에도 30~40대 전문 인력 대거 포진

39살로 역대 최연소인 마크롱 대통령은 그와 마찬가지로 젊은 인사들을 요직에 포진시키며 프랑스 정계를 뒤집어놓고 있다. 필리프는 올해 46세다. 30대 대통령에 총리도 채 쉰이 되지 않았다.

에두아르 필리프 프랑스 신임 총리 [EPA=연합뉴스]

에두아르 필리프 프랑스 신임 총리 [EPA=연합뉴스]

민간 분야를 거치는 등 마크롱과 걸어온 길도 비슷하다. 두 사람은 프랑스 최고 명문으로 꼽히는 파리정치대학(시앙스포)과 국립행정학교(ENS) 동문이다. 마크롱이 경제부처 공직을 거쳐 투자은행에서 기업 인수 합병 전문가로 일한 것처럼 필리프는 프랑스최고행정재판소에서 일하다 미국계 로펌 변호사를 거쳐 프랑스 원자력기업 아레바에서 로비스트로 활동했다.

마크롱이 사회당 출신인데, 필리프도 시앙스포 재학 당시 사회당 출신 프랑수아 미테랑 대통령 정권의 총리였던 이론가 미셸 로카르의 영향을 받아 사회당에 적을 뒀었다. 로카르가 사회당을 이끌지 않자 필리프는 우파 쪽으로 이동했고 공화당의 알랭 쥐페계 핵심이 됐다.

필리프는 복싱 마니아다. 2년 반 동안 일주일에 세 차례 복싱을 해왔고 지구력과 기술이 뛰어나다고 그를 지도한 복싱 코치는 AFP 통신에 말했다. 복싱 영화 록키를 즐겨봤다고 한다.
필리프는 정치 추리소설 두 권을 출간한 작가이기도 하다. 그는 한 인터뷰에서 “어렸을 때 기자들의 질문에 답하는 상상을 하곤 했다"고 말했다. 영국 록 그룹 다이어 스트레이츠와 미국 록커 부르스 스프링스틴의 팬이다.

괴짜 기질이 있어 2015년에는 자신이 시장으로 있는 르아브르의 저수지를 수영해 건너기도 했다. 노르망디주 두 지역이 행정적으로 합쳐지면 헤엄치겠다고 말했다가 프랑수아 올랑드 대통령이 실제 행정구역을 조정하자 약속을 지켰다. 독일에서 고교를 다닌 적이 있어 독일어도 구사한다.

시앙스포에서 교편을 잡고 있는 아내와의 사이에 세 자녀를 둔 필리프는 똑똑하지만 거만해 주위 사람들과 잘 지내지 못한다는 평가도 받는다. 하지만 발레리 지스카르데스탱, 자크 시라크, 니콜라 사르코지 전 대통령 등의 성대모사를 잘해 주위를 즐겁게 해줬다고 한다.

공화당 알랭 쥐페 전 총리 계열인 그의 총리 임명은 좌우를 떠나 중도를 표방하는 마크롱의 인선 기준을 재확인시켜줬다. 마크롱의 대변인은 “좌우의 대립을 극복하고 진취적인 프로젝트에 동의해야 한다"는 조건에 맞는 사람들을 기용했다고 설명했다.

에마뉘엘 마크롱 대통령

에마뉘엘 마크롱 대통령

이를 위해 마크롱은 대선 과정에서 자신을 비판한 필리프까지 등용했다. 필리프는 지난해 9월 로피니옹과의 인터뷰에서 “두 개의 마크롱이 있는데, 내가 동의하는 말하는 마크롱과, 기억날만한 것을 아무 것도 이루지 못한 행동하는 마크롱이 있다”며 “마크롱은 아무 것도 책임지지 않으면서 모든 것을 약속한다"고 비꼬았다.

하지만 노동 유연화와 기업규제 완화 등 경제정책에서는 자유주의를, 사회정책에선 진보적 입장을 견지하는 견해는 마크롱과 일치한다. 필리프는 지난해 “마크롱은 90% 가량 나와 생각이 같다"고 말한 적이 있다.

필리프는 총리관저인 마티뇽에서 한 취임 연설에서 “나는 우파 정치인이지만 모든 국민과 정치인, 공무원들이 공익을 위해 헌신해야 함을 잘 안다"며 마크롱 대통령의 통합 의지를 뒷받침하겠다고 말했다.

엘리제궁에서 마크롱을 보좌할 핵심 인력에도 젊은 전문가들이 포진했다.

마크롱 대통령은 비서실장에 44세인 알렉시 콜레르를 임명했는데, 프랑스 재무부와 국제통화기금(IMF) 등에서 근무했고 수 년 동안 마크롱의 특별 보좌관으로 활동했다. 홍보특보를 맡은 이스마엘 에믈리앙은 서른살이다. 대선 승리를 견인한 정치운동 앙마르슈(전진)를 만들어낸 핵심 멤버로, 마크롱이 경제산업부 장관을 지낼 때부터 인연을 맺어왔다.

앙마르슈에서 홍보를 담당했던 37살 시베트 은디아예. 세네갈 출신으로 세 아이의 엄마인 그는 엘리제궁에서도 같은 역할을 담당한다. [트위터]

앙마르슈에서 홍보를 담당했던 37살 시베트 은디아예. 세네갈 출신으로 세 아이의 엄마인 그는 엘리제궁에서도 같은 역할을 담당한다. [트위터]

세네갈 출신으로 대선 캠프에서 홍보를 담당했던 37살 시베트 은디아예는 엘리제궁에서도 같은 역할을 맡고 있고, 대변인으로 활동하다 입각이 유력한 벵자맹 그리보도 39살이다.

마크롱은 경험이 필요한 분야에는 장년층 베테랑을 임명해 안전판을 마련하고 있다. 외교 수석보좌관에는 전 독일대사를 지내 유럽연합(EU) 및 독일통인 필리프 에티엔(61)을 임명했다.

30대 대통령과 40대 총리가 이끄는 프랑스 정부의 새 장관들의 평균 연령도 낮아질 가능성이 있다.

런던=김성탁 특파원 sunty@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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