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근혜 정부가 몰락한 핵심 원인의 하나는 엉망인 당정 관계였다. 의원들이 뽑은 집권당 원내대표가 대통령 한마디에 쫓겨나고, 친박 실세 몇몇이 당 공천을 좌지우지하는 어처구니없는 사태가 임기 내내 이어졌다. 그러나 청와대와 당 사이에서 갈등을 풀어줘야 할 정무수석은 재량권이 없어 대통령 눈치 보기에만 급급했다. 정권의 머리와 몸통이 원수처럼 싸우며 따로 놀았으니 총선·대선에서 연패하고 무너진 건 어쩌면 당연하다.
그런 점에서 문재인 대통령이 14일 정무수석에 전병헌 전 의원을 임명한 것을 주목한다. 전 신임 수석은 비문(동교동계) 3선 의원 출신으로 민주당 원내대표 시절 유연한 협상력을 선보였고, 대인관계도 원만해 야권에도 가까운 의원이 많다. 당정 관계를 수평적으로 운영하고, 야권과의 대화도 활성화하겠다는 문 대통령의 의지가 엿보이는 인사란 점에서 긍정적으로 평가할 만하다.
문재인 정부에서 집권당 의석은 120석에 불과하다. 자유한국당·국민의당·바른정당·정의당과 연대하지 않으면 국정을 제대로 이끌 수 없다. 또 당내에도 비문세력이 만만찮은 비중을 차지하고 있다. 언제든 자중지란이 일어날 수 있는 구조다.
전 정무수석의 어깨가 그래서 무겁다. 이념과 지지기반, 노선이 제각기 다른 5당과 청와대 사이를 조율해 결과물을 만들어내야 할 힘든 과제가 주어졌기 때문이다. 전 수석은 무엇보다 여야를 가리지 말고 의원들과 수시로 소통하면서 그들의 쓴소리를 대통령에게 가감 없이 전달해야 한다. 집권당의 위세를 앞세워 군소야당을 흡수해 온 구시대적 정계개편 시나리오를 버리고, 상대방의 존재를 인정하고 공통분모를 찾는 협치의 정신을 행동으로 보여야 할 것이다.
문 대통령은 취임 첫날 야당 지도부를 찾아 "최대한 자주 대화하겠다"고 약속했다. 그 말이 빈말이 되지 않게 하려면 전 정무수석에게 확실한 권한을 주고, 그가 전하는 비주류와 야당의 목소리를 경청해야 한다. 박 전 대통령의 비극은 수석들이 몇 달이 되도록 대통령 얼굴 한 번 보기 어려웠던 폐쇄적 시스템에서 비롯됐음을 명심하기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