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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워할 수 없는 욕망의 민낯… ‘버블 패밀리’ 마민지 감독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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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버블 패밀리' 마민지 감독 [사진=라희찬(STUDIO 706)]

영화 '버블 패밀리' 마민지 감독 [사진=라희찬(STUDIO 706)]

‘버블 패밀리’는 올해 JIFF 한국 경쟁부문의 11개 영화 가운데, 가장 젊고 날것 같은 작품이다. 영화는 “나는 서울에서 태어나, 서울에서 살고 있다”는 자기소개로 시작해, 곧장 한 가족의 일상으로 파고든다. 부동산 버블 광풍 속에서 부침을 거듭한 가족의 이야기. 잠실 토박이인 마민지(28) 감독의 ‘사적’이고도 ‘자전적’인 다큐멘터리다.

도시 개발로 서울이 들썩이던 1980년대, 마 감독의 부모는 이른바 ‘집 장사’로 돈을 불렸다. 부동산에 올인했고, 그러다 1997년 IMF 외환위기가 닥치자 가세가 기울었다. 그렇게 가족은 지금의 잠실 허름한 빌라에 자리 잡았다. 빚과 월세에 허덕이지만 부모는 강남 언저리를 벗어날 생각이 결코 없다. 물론 ‘부동산 대박’의 꿈도 여전하다. 카메라가 쫓는 건 그 아이러니한 일상이다. 딸의 영화 제작비를 부동산에 투자하자는 아버지, 몰래 부동산 전단을 돌리다 박람회에서 쫓겨나는 어머니, 가훈처럼 집안에 걸린 ‘계약’이란 문구 등등. 감독은 제 부모를 통해 한국사회 저변에 깔린 부의 욕망과 그 허황한 꿈의 민낯을 클로즈업해 보여 준다. 우스꽝스럽고 발칙한 반면 솔직하고 의미심장하다.

영화 '버블 패밀리' 스틸

영화 '버블 패밀리' 스틸

마 감독은 2013년 처음 ‘버블 패밀리’를 기획했다. 당시 구술 생애사에 관한 학교 과제로 부모님을 인터뷰한 게 계기였다.
“부모님이 건축 사업에 몸담고 계신 줄로만 알았는데, ‘집 장사’를 수십 년 해오셨더라. 강남 일대의 주택 변천사가 우리의 가족의 역사와 한 몸처럼 엮여있다는 생각에 미치자, 가만히 있을 수 없었다.”

마 감독은 그날로 신문 아카이브를 뒤져 60년대 이후의 기사를 수집했다. 논문과 방송 자료를 찾아다녔고, 어머니가 90년대 찍어둔 홈비디오 영상도 긁어모았다. 그러는 한편 부모를 설득해 촬영도 시작했다. 완성된 영화의 러닝타임은 77분이지만, 실제 촬영 분량은 300시간에 달했다.

영화 '버블 패밀리' 스틸

영화 '버블 패밀리' 스틸

마 감독은 ‘버블 패밀리’가 “깔깔거림과 한숨이 반복되는 롤러코스터 다큐”라고 했다. 그의 말마따나 한편의 블랙코미디 같기도 하다. 영화 내내 도시와 가족의 현재와 과거가 교차되는데, 그 균열의 리듬감이 영상에 활기를 더한다. “결국 영화는 영화다. 진지하고 심각한 문제를 다루더라도 영화적으로 재미있는 다큐로 만드는 일이 더 중요하다”고 말하는 그다.

마 감독은 앞으로도 “공간과 지역 그리고 도시” 관한 이야기를 멈추지 않을 생각이다. 다음 프로젝트에 대해선 “여성주의적 시선에서 공간의 의미, 박탈당한 것들에 대한 이야기”라는 밑그림도 이미 그려 놓았다.

마 감독의 재능은 이미 해외에서도 인정 받았다. ‘버블 패밀리’는 2015년 인천다큐멘터리포트를 통해 핀란드 나파필름과 공동 제작을 성사시켰고, 세계적인 다큐영화제 핫독스에서도 소개됐다. 핀란드 국영 방송 YLE에서 방영도 앞두고 있다. 어쩌면 한국보다 해외에서 먼저 빛을 보게 될지도 모를 일. ‘버블 패밀리’의 개봉을 강력히 바라는 이유다.

백종현 기자 jam1979@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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