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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민, 말하다] ⑥ "평범하게 사는 게 꿈" 청년 노숙인 평화씨

중앙일보

입력

 중앙일보ㆍJTBC의 디지털 광장 시민마이크(www.peoplemic.com)가 제19대 대통령 선거를 맞아 대한민국 보통 사람들의 목소리 '시민, 말하다'를 연재합니다. 대선을 계기로 같은 공간에서 살아 가는 동시대인들이 풀어 놓는 내가 바라는 대한민국은 어떤 모습일까요. 우리 이웃들의 이야기를 전합니다. 여섯 번째 주인공은 청년 노숙인 김평화(가명·39)씨입니다.

사진=조문규 기자, 멀티미디어 제작=조민아·전민호 디자이너 cho.mina@joongang.co.kr

사진=조문규 기자, 멀티미디어 제작=조민아·전민호 디자이너 cho.mina@joongang.co.kr

 저는 한 때 노숙을 했던 서른 아홉살 청년입니다. 지금은 자립을 준비하고 있어서 엄밀히 노숙인이라고 할 수는 없지만 저와 같은 어려움을 겪은 분들에게 용기를 주고 싶어 이렇게 대중 앞에 섰습니다.

일용직 전전하다가 몸 다쳐 1년 간 노숙 생활 #누구나 벼랑 끝 내몰리면 노숙인 될 수 있어 #다시서기센터 인문학 수업 들으며 정치 관심 #꿈은 '평범한 삶'…우리 사회 아직 희망 있어

  제가 영등포역에서 노숙을 시작한 건 작년 이맘 때였습니다. 일용직으로 인테리어 공사를 하던 도중 허리 부상으로 일을 못 하게 돼 고시원비를 6개월 동안 미뤘기 때문이지요. 저도 처음엔 노숙인이 됐다는 사실을 받아들이지 못했습니다. 어쩌면 지금도요. 거리에 박스를 깔고 항상 술에 취해 지저분한 모습으로 누워 있는 사람들과 저는 다르다고 생각했으니까요. 하지만 어느 누구도 그 생활을 원해서 하는 건 아닙니다. 어쩌다 보니, 삶의 벼랑에 내몰려 불가피한 선택을 하는 것 뿐이지요.

  저는 홀아버지 밑에서 자랐습니다. 어머니는 저와 동생 둘이 어렸을 때 집을 나가셨어요. 유일한 끈이었던 아버지는 제가 군대를 제대하기 30일 전에 돌아가시고 말았습니다. 건설 현장 일용직으로 저희 삼남매를 건사하셨지만 현장에서 사고를 당해 돌아가셨지요. 아버지의 산업재해 사망보험금 2억원은 친척분이 가져가셨습니다. 당시 저는 스무 살이었고 동생들도 많이 어렸습니다. 친척은 저희를 보살펴 주시겠다며 보험금을 가져가시곤 사업 자금으로 쓰셨다고 들었어요. 한동안 그 댁에서 삼남매가 살았지만 꼭 남의 집에 얹혀 사는 것 같아 갈등이 점점 심해졌습니다. 결국 저희 모두 그 집을 나와 뿔뿔이 흩어졌습니다.

  저는 그 때부터 일용직과 고시원을 전전하면서 살게 됐습니다. 참 많은 일을 했습니다. 대리운전 기사, 퀵서비스 기사, 건설현장 노동…. 구로, 신림, 독산동 등을 돌며 어디든 일이 있는 곳에 둥지를 틀었지요. 그러던 중 몸을 다쳐 10원 한푼 없는 신세가 되면서 노숙을 하게 된 것입니다.

  노숙 첫날 영등포 지하상가 쓰레기통에서 청바지와 티셔츠를 주웠습니다. 그날 새벽 한 공사현장의 수돗가에서 몰래 빨래를 해서 그 옷으로 며칠을 또 버텼습니다. 저는 죽어도 박스 깔고는 못 자겠더라요. 교회 계단 같은 곳에서 앉아서 잠을 청했습니다. 처음엔 '그 사람들과 나는 달라', '동화되지 않을거야' 라고 생각했죠. 어느새 주위 노숙인 아저씨들에게 의지하고 있는 저를 발견하게 됐습니다. 선배 노숙인들에게 어디가면 무료로 밥을 먹을 수 있는지, 씻을 수 있는지도 배웠어요. 그러다가 작년 11월 서울역의 다시서기 희망지원센터를 알게 됐습니다. 여기선 노숙인들에게 주거지원도 하고, 자활근로를 하면 월급도 준다더군요.현금이 한 푼도 없어 걸어서 영등포역에서 서울역까지 갔습니다. 초겨울, 두 시간 동안 발이 터지도록 걸으면서 많은 생각이 들었습니다. 이후 센터에서 상담을 하고 지원을 받게 됐어요. 말소된 주민등록도 되살리고, 서울역 희망지원센터에서 일하면서 고시원도 새로 얻었습니다. 최근엔 코레일에서 서울역 광장을 청소하는 일을 하게 됐어요. 한달에 50여 만원의 급여를 받는데 이중 절반 이상을 저축하고 있습니다.

  저는 이번 대선 때 처음으로 투표를 해보려고 해요. 군에 있을 때 딱 한번 부재자 투표를 해보긴 했는데 선임들이 하라고 해서 한 거지 제 의지로 투표를 한 건 아니었거든요. 지금까지는 정치에 전혀 관심이 없었어요. '권리', '주권' 좋은 말이죠. 그런데 먹고 사는 게 우선인 사람들한테는 투표를 안 하는 것도 권리라고 생각했어요.

  다시서기센터에서 노숙인을 상대로 하는 성프란시스대학 인문학 과정을 들으면서 '생각의 전환'을 하게 됐어요. 글쓰기 수업에서 자신이 살아온 인생을 적어내려가는데, 저도 모르게 눈물이 나더라고요. 지금까지 저의 삶에 대해 이렇게 관심을 갖고 물어본 사람, 용기를 준 사람이 있었나 하는 생각에요. 이 밖에도 역사, 철학, 예술사에 대해 배우면서 다시 공부를 하는 느낌입니다. 무엇보다 같이 수업 듣는 사람들이 저와 비슷한 처지의 분들이라 위로가 많이 돼요. 유대감도 생기고요. 인문학 수업 학생들하고 대선 후보 TV토론을 자주 봤는데 저희가 제일 관심 있었던 건 복지 분야였어요. 문재인 더불어민주당 후보가 공공 일자리를 늘리고 저소득층에게 임대주택을 보급하겠다고 한 공약이 기억에 남습니다. 이런 게 많아질 수록 어느정도 희망을 가질 수 있겠단 생각에요.

  제 꿈은 '남들처럼 평범하게 사는 것'이에요. 우선 쫓겨날 걱정 없는 집이 있었으면 좋겠어요. 지금 저는 스스로 딱히 불행하다고 생각하지 않아요. 제가 떼 돈을 벌겠다는 것도 아니고 언젠가는 괜찮은 직장 다니면서 평범하게 사는 게 소원이기 때문이죠. 저도 이번에 안 건데 아직 우리 사회는 본인이 살고자 하는 의지가 있다면, 손을 내밀면 누군가 잡아줄 수 있는 희망이 있거든요. 그런 걸 더욱 확대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시민마이크 특별취재팀 peoplemic@peoplemic.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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