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6 삼성화재배 월드바둑마스터스] 부랴부랴 새로 완공한 팻감 공장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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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0면

<4강전 2국> ●이세돌 9단 ○커   제 9단

7보(76~96)= 우변 ‘패’ 싸움을 둘러싸고 반상의 긴장감이 점점 높아진다. 두 대국자 주변 공기도 한층 촘촘해졌다. 커제 9단이 백76을 두자 이세돌 9단이 돌연 흑77로 상변을 향한다.

우변에서 패싸움을 하다 말고 갑자기 상변을 기웃거리는 이유는 우변에서 쓸 만한 팻감이 다 떨어졌기 때문. 싸움을 해야하는데 총알이 바닥났으니 다른 곳에서 총알을 조달해야 한다. ‘참고도’처럼 미련하게 패싸움을 밀어부쳤다가는 흑이 팻감 부족으로 사망(8…2).

참고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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흑77부터 81까지, 이 9단은 허둥지둥 상변에 작은 규모의 팻감 공장을 지어놓았다. 임시방편으로 어쩔 수 없는 선택이지만, 팻감을 만드는 과정에서 흑의 손해가 막심하다. 흑은 이제 뒤도 돌아보지 말고 패를 이기기 위해 달리는 수밖에 없다. 더 이상 물러날 곳이 없다.

반면 백은 자체 패감이 많아 아직 패싸움에서 여유가 넘친다. 백이 주변에서 느긋하게 팻감을 구하는 사이, 흑은 열심히 상변으로 달려가 팻감을 쓰고 우변으로 돌아오는 수순이 반복된다(87·93…△, 90·96…84).

문제는 상변에서 팻감을 계속 쓸수록 흑은 제살을 깎아먹는 꼴이라는 것. 대국을 지켜보는 한국바둑 국가대표팀의 표정이 좋지 않다. 아무리 낭떠러지 끝에서 승부를 즐기는 이 9단이라지만 이건 너무 무리라는 의견.

정아람 기자 aa@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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