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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삶의 향기

세상의 소리를 본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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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4면

이건용작곡가한국예술종합학교 교수

이건용작곡가한국예술종합학교 교수

귀는 자기중심적이다. 귀로 들어오는 많은 소리 중에서 자기가 듣고자 하는 소리를 골라 듣는다. 예를 들어 내가 전철 안에서 옆에 앉은 친구와 얘기를 한다면 동시에 들려오는 전철의 덜커덩 소리, 스피커에서 나오는 안내 방송, 옆 사람들의 대화 소리, 누군가 저쪽에서 전화하는 소리 등등도 귀에 들어오지만 다 머리까지는 오지 못하고 친구와의 대화만이 들린다. 그런데 옆 사람들의 대화에서 내가 아는 이름이 나오면 곧장 주의력이 그쪽으로 간다. 대신 친구가 하는 얘기는 귓등을 스쳐 지나간다. 그러다가 내가 내릴 때가 되면 곧 나의 주의력은 안내방송을 향한다.

귀는 자기중심적이라 듣고 싶은 것 골라 듣게 돼 #잘못된 소리 옳은 소리 식별할 지도자 기다린다

눈도 어느 정도는 그렇다. 로미오가 줄리엣을 처음 만났을 때 주변의 모든 것은 흐릿해지고 줄리엣의 모습만이 뚜렷해지는 영화 장면을 본 일이 있다. 눈이 대상에 꽂히면 그렇게 될 것이다. 하지만 보통은 시야에 들어오는 여러 사물을 파악하노라 눈동자가 열심히 움직이는 것을 보면 눈은 자기중심적이라기보다는 관찰적이다.

나이가 들고 나에게 이명(耳鳴)이 생겼다. 듣는 일이 나의 직업이므로 4, 5년 전 정밀한 검사를 받았다. 결론은 허무했다. 그동안 많이 써서 생긴 증상이니 노안처럼 받아들이라고. 혼자 조용히 있을 때면 나는 남들이 못 듣는 이 소리를 듣는다. 그런데 이명을 검사하는 과정 중 하나가 재미있다. 낮은 소리에서부터 점차 소리를 높이며 “이 소리가 들립니까?” 하고 묻는다. “들립니다.” 또 음을 높이고 “들립니까?” “들립니다.” 계속 높이다가 이명에 가까운 소리가 날 때부터 그 소리가 들리지 않는다. 이명과 외부에서 들리는 소리가 겹쳐서 내가 식별하지 못하는 것이리라. 즉 이명을 가진 사람은 남들이 듣는 이명과 같은 소리를 듣지 못한다. 나만 나의 잠꼬대를 못 듣듯. 박지원이 일찍이 이명과 잠꼬대를 함께 언급했던 일이 새삼 놀랍다.

나는 음악을 들으면서 다른 작업을 못한다. 작곡 등 음악과 관련된 일은 물론 책도 못 읽는다. 음악이 자꾸 들리기 때문이다. 운전할 때도 음악이 방해가 돼 대개 꺼 버린다. 나에게 음악은 분위기가 아니다. 말을 걸어오는 대상이다. 그런데 내가 아는 어떤 건축가는 음악을 틀어놓고도 작업을 잘한다. 좋아하는 음악이 나오면 같이 노래를 흥얼거리기도 하다가 아예 본격적인 음악 감상에 돌입하기도 한다. 아마도 그의 주의력은 음악에 가까이 갔다가 멀어졌다가 하면서 필요한 만큼의 거리를 취하고 있으리라.

지휘자는 지휘하고 있는 오케스트라의 모든 소리를 듣는다. 하기야 같이 연주하는 연주가들도 또 청중들도 그 모든 소리를 듣는다. 지휘자는 들을 뿐만 아니라 그중에서 고쳐야 할 것을 식별해 내기도 한다. 어떤 음이 빠져 있는지, 어떤 악기가 어떻게 음을 잘못 내고 있는지를 듣고 구별한다. 듣지 못하면 고칠 수 없고 고칠 수 없으면 음악이 좋아지지 않는다. 듣지 못하는 지휘자 밑에 좋은 오케스트라는 없다.

지휘자가 만들어내는 음악은 작곡가에 의해 잘 설계된 하나의 완성된 세상이다. 작은 세계이기는 하지만 제목도 있고 이미 여러 번 듣고 또 들어 잘 아는 세상이다. 지휘자는 오케스트라를 통해 이를 잘 구현하면 된다. 그러나 정치가가 이끄는 세상은 그렇지 않다. 무수히 많은 다른 삶이 제각각 목소리를 내는 혼돈의 세상이다. 아비규환일 때도 있다. 계획이 없어 어디로 갈지도 모른다. 정의와 평화의 세상으로 갈지 전쟁으로 갈지. 주제와 제목은 물론 시작과 끝도 없다. 그런 세상의 소리를 들어 가면서 모두를 하나의 조화된 세상으로 이끌어 가려면 마에스트로보다 더 크고 예민한 귀를 가진 소유자라야 하리라.

들음의 극치는 관세음(觀世音)일 것이다. 소리를 들으려면 시간이 걸린다. 이 세상의 아픔과 하소연, 기도 소리와 비명 소리를 다 들으려면 한없이 시간이 필요하다. 그래서 관음보살은 소리(音)를 듣지 않고 본다(觀). 한눈에 세상의 고통을 파악하려는 것이다.

관음보살이 아니라도 좋다. 자신의 귀에서 울리는 소리만 듣거나 듣고 싶은 소리만 골라 듣는 이가 아니기를, 잘못 내는 소리와 제대로 된 소리를 구별하는 귀를 가진 지도자가 나타나기를 바라는 요즈음이다.

이건용 작곡가·한국예술종합학교 명예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