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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 속으로] EMG 센서로 소비자 분석 … 공룡 여행사의 단칸방 혁신 센터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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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8면

익스피디아의 싱가포르 지사 실험실 가보니 

실험에 참여한 한 여성이 전자근운동기록기를 부착한 채 익스피디아 사이트를 이용하고 있다. 익스피디아는 미국과 영국, 싱가포르에 연구소를 설치하고 해마다 1000회 이상 소비자 행동 분석 실험을 한다. [사진 익스피디아]

실험에 참여한 한 여성이 전자근운동기록기를 부착한 채 익스피디아 사이트를 이용하고 있다. 익스피디아는 미국과 영국, 싱가포르에 연구소를 설치하고 해마다 1000회 이상 소비자 행동 분석 실험을 한다. [사진 익스피디아]

면적 7㎡(2평) 남짓한 방에 물건이라고는 책상과 의자 그리고 데스크톱과 카메라가 전부다. 세계 최대 온라인 여행사 익스피디아의 ‘실험실’ 풍경이다. 4월 초 싱가포르 익스피디아 아시아·태평양 지사에서 만난 다라 코즈로샤히 최고경영자(CEO)가 “익스피디아의 심장부”라고 거창하게 소개한 실험실은 예상보다 단출하고 소박했다.

미국 워싱턴주 밸뷰에 본사를 둔 익스피디아는 1996년 마이크로소프트(MS) 사내 벤처로 탄생했다. 호텔·항공·렌터카 등 여행상품 검색·예약 서비스를 제공하는 온라인 여행사로, 99년 MS에서 독립한 뒤 2016년 3분기에만 710억 달러(약 83조원)의 매출을 올렸다. 세계 3만 개 도시의 32만 개 호텔과 네트워크를 갖고 있으며, 한국을 비롯해 세계 33개국에 현지화한 사이트를 운영 중이다.

이처럼 큰 공룡 여행사의 실험실이라면 대규모 공장만 한 크기일 거라 짐작했는데 익스피디아 직원은 하나같이 고시원 방보다 작은 이 단칸방을 ‘실험실’이자 ‘혁신 센터’라고 부르고 있었다.

미 본사, 영 지사 등 3곳에 실험실
6개월 내 여행 예정자 초청해 실험
소비자의 여행상품 예약 과정 관찰

어떤 것에 관심 갖는지 빅데이터화
실험 참가자 표정·동공 움직임 추적
행동·인지과학 박사들이 감정 분석 

여행사가 과연 어떤 실험을 진행하는지 궁금해 하던 찰나 익스피디아 아서 채핀 부사장이 “실험실 규모에 실망하지 말라”며 관찰실로 안내했다. 관찰실에서 생중계하는 실험 과정을 참관하자니, 병원 진찰실을 들여다보는 기분이 들었다. 실험에 참가한 아시아 여성이 데스크톱 컴퓨터 앞에 앉자 연구원이 여성의 얼굴에 전자 근운동기록기(Electro-myography·EMG) 센서를 부착했다. “이마와 턱, 눈가 근육의 미세한 움직임을 분석해 실험 참가자의 표정 변화를 읽어내고 감정 기복을 추적하는 장치”라는 연구원의 설명이 뒤따랐다.

익스피디아 연구원이 생중계 화면을 통해 실험 과정을 지켜보고 있다. [양보라 기자]

익스피디아 연구원이 생중계 화면을 통해 실험 과정을 지켜보고 있다. [양보라 기자]

곧이어 관찰실 티비 화면에 참가자의 감정 상태를 표시하는 그래프가 떴다. 두 개로 나뉜 그래프는 각각 ‘집중도’와 ‘행복감’을 수치로 나타냈다. 연구원이 이 여성에게 “예산에 상관없이 당신이 머물고 싶은 호텔을 검색해보라”고 주문하자 홍콩 만다린 오리엔탈 호텔 사진을 들여다보는 여성의 집중도·행복감 곡선이 요동을 쳤다. 반대로 “예산에 합당한 호텔을 찾으라”라는 말에 행복감 그래프가 하향 곡선을 그렸다.

EMG에 시각 추적(eye-tracking) 기능도 딸려 있어, 실험 참가자의 동공 움직임도 감지할 수 있었다. 여성이 주시하고 있는 화면에 주황색 점이 표시됐고, 시선이 이동할 때마다 주황색 점도 따라 움직였다. 예약 과정을 관찰한 결과 이 여성이 호텔 후기를 꼼꼼히 들여다보고, 예약에 앞서 호텔 소개 페이지에 등록된 사진을 모두 체크한다는 사실을 파악할 수 있었다. 수영장 사진을 들여다볼 때 행복감이 올라가는 것도 눈에 띄었다.

익스피디아 사이트 이용자가 어떤 정보에 관심을 갖고, 어떤 이미지에 감정 변화를 보이는지에 대한 실험은 1시간 정도 진행됐다. 뒤이어 아시아계 남성 참가자에게도 똑같은 실험이 진행됐는데, 여성과의 차이점이 확연했다. 남성은 여성보다 시선의 움직임이 빠르고, 사진이 멋있는 호텔보다는 ‘오늘만 50% 할인’이라는 문구가 붙은 호텔을 클릭하는 횟수가 잦았다. 시내 중심가에서 호텔까지 거리가 가까운 호텔을 들여다볼 때 집중도가 올라갔다.

익스피디아는 2014년 본사가 있는 밸뷰와 영국 런던 지사에 실험실을 설치해, 소비자의 여행 상품 예약 전 과정을 관찰해 오고 있다. 2015년에는 1375건, 2016년에는 1450건의 테스트를 진행했다. 2017년 4월에는 익스피디아의 세 번째 실험실을 싱가포르에 신설해 한국·일본·홍콩·호주 등 아시아·태평양 소비자 분석을 본격화한다.

익스피디아 다라 코즈로샤히 CEO.

익스피디아 다라코즈로샤히 CEO.

익스피디아는 실제로 6개월 안에 여행을 계획하고 있는 일반 여행객을 초청해서 실험을 진행한다. 1시간가량 실험에 참여하면 익스피디아 사이트에서 이용할 수 있는 포인트를 지급해준다. 실험의 신뢰성을 높이기 위해 피실험자의 국적·성별·인종을 골고루 섞는다. 개인 휴가인지 비즈니스 출장인지 구분하고, 여행 동반자가 가족인지 커플인지도 따진다.

실험을 통해 얻은 데이터는 곧장 익스피디아 사이트를 개선하는 데 반영한다. 일례로 익스피디아는 2015년 사이트 재방문 고객이 과거의 검색 내역을 확인할 수 있는 ‘스크래치 패드’를 신설했다. 익스피디아 실험 중 호텔 예약자가 마음에 드는 호텔을 노트에 적어놓는 행위가 반복된 데서 착안한 것이다. 스크래치 패드에는 과거에 검색했던 호텔이 날짜별로 나열되고, 그 호텔의 현재 판매 가격이 함께 표시된다.

데이터 나오면 곧바로 사이트 개선
세계 33개국서 현지화 사이트 운영
3만 개 도시, 32만 개 호텔과 네크워크

MS의 사내 벤처, 테크놀로지 DNA
임직원 2만 명 중 4분의 1이 개발자
작년 기술 개발에 9200억원 투자

현재 익스피디아는 예약 버튼의 크기, 예약 날짜를 표시하는 달력 방식 등 달리한 사이트 버전 50여 개를 운영하면서 어떤 버전이 효율적이고 빠른지도 평가한다. 매출 효과가 좋은 버전은 남기고, 효과가 미미한 버전은 폐기하는 방식이다. 채핀 부사장은 “사이트 문구, 타이포그래피, 호텔 사진을 게시하는 순서까지 익스피디아의 작은 변화는 모두 ‘실험’에 의한 결과”라고 말했다.

영상으로 기록된 실험 과정은 행동 인지 과학 박사학위자로 구성된 연구진이 며칠에 걸쳐 분석한다. 고객의 표정 변화와 집중력 추이, 호텔을 검색한 양, 호텔 사진을 들여다 본 횟수 등 전 과정을 모두 수치화하고 빅데이터로 만든다. 코즈로샤히 CEO는 “MS에서 출발한 회사답게 익스피디아의 DNA는 테크놀로지라 할 수 있다”며 “익스피디아 임직원 2만 명 중 4분의 1은 소프트웨어 엔지니어(개발자)고, 지난해에만 8억 달러(약 9200억원)를 기술 개발에 투자했다”고 밝혔다. 또 “소비자 행동 분석이야말로 익스피디아의 핵심 기술이자 익스피디아의 혁신이 탄생하는 지점”이라고 덧붙였다.

익스피디아는 싱가포르 실험실이 본격적으로 가동되면 한국을 비롯한 아시아·태평양 시장에 영향력을 확장할 수 있을 거라 판단하고 있다. 아·태지역 여행 시장 규모는 3920억 달러(약 441조5000억 원·Southeast Asian Traveler Report 2017) 정도인데, 이중 온라인 예약 비중이 37%에 이른다. 익스피디아는 현재 아·태지역 온라인 여행 수요의 5%를 점유하고 있다.

익스피디아 아시아의 조너선 닐 CEO는 “2016년 한국 국적 소비자를 대상으로 실험한 결과 한국 여행자가 호텔을 선택할 때는 호텔과 기차역이 얼마나 가까운지를 중요하게 고려한다는 점을 파악했다”면서 “한국 사이트의 위치 정보 및 지도를 개선하고 있다”고 밝혔다.

[S BOX] 여행자가 호텔 고르는 결정적 요인은 가격 아닌 사진

사람 얼굴에 전자근운동기록기(Electro-myography·EMG)를 부착해 온라인으로 검색하고 예약할 때 표정 변화와 감정을 읽는 익스피디아만의 독특한 ‘실험’은 사용자 경험(User Experience) 부서가 처음 고안했다.

필리핀 보라카이의 고급 리조트. [사진 익스피디아]

필리핀 보라카이의 고급 리조트. [사진 익스피디아]

익스피디아는 미국 워싱턴주 밸뷰에 있는 본사에 실험실을 설치하고 2014년 첫 실험을 했는데, 사용자 경험 부서 타미 스노 디렉터는 재밌는 사실 하나를 발견했다. 여행자가 호텔 숙박을 결심하게 되는 결정적인 요인은 ‘가격’이 아니라 ‘사진’이라는 점이었다. 사용자 경험 부서는 그해 1000여 건의 실험을 진행하면서 여행객이 방문하고자 하는 여행지 사진, 음식 사진이 고객의 행복감을 높인다는 점에 주목했다.

실험 결과에 따라 익스피디아는 각 호텔에 ‘사진 가이드라인’을 제시했다. 특히 프라이빗 해변과 수영장이 딸린 호텔의 경우 비치 체어와 파라솔, 물놀이 기구 등의 시설을 여러 앵글로 찍도록 했다. 사진을 보면서 여행자가 호텔을 방문했을 때 누릴 수 있는 즐거움을 상상하도록 만든 것이다. 익스피디아는 아예 전문 사진사를 고용해 필리핀 지역 호텔 사진 100곳의 사진을 가이드라인에 따라 새로 촬영했다. 호텔 주변의 볼거리와 먹거리 사진도 곁들였다. 그 결과 2015년, 2016년 연속으로 새로운 사진을 업로드한 호텔의 숙박일 수가 증가했다. 익스피디아는 현재 ‘여행 사진’을 모아 둔 이미지뱅크를 운영하고 있다.

싱가포르=양보라 기자 bora@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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