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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굿모닝 내셔널]포켓몬고? 고사리고! 임금님 드신 제주고사리 사냥

중앙일보

입력

지난 27일 관광객 이모씨가 제주도 한라산에서 꺾은 고사리를 자랑하고 있다. 최충일 기자

지난 27일 관광객 이모씨가 제주도 한라산에서 꺾은 고사리를 자랑하고 있다. 최충일 기자

매년 4~5월 제주 한라산에서 자라는 고사리. 최충일 기자

매년 4~5월 제주 한라산에서 자라는 고사리. 최충일 기자

“아이가 포켓몬고 할 땐 그만해라 다그쳤는데, 이걸(고사리) 꺾는 손맛을 느끼니 쉽게 헤어 나올 수 없을 것 같아요.”
지난 24일 제주로 관광 온 홍모(50·여·천안시)씨는 이렇게 말했다. 홍씨에게 “툭툭” 경쾌한 소리와 함께 꺾는 손맛을 준 주인공은 ‘고사리’다.

제주도 산간 4~5월 되면 제주도민·관광객 고사리 꺾이 나서 #제주 고사리, 삶거나 구운 돼지고기와 곁들이면 환상의 조합 #오늘(29일)부터 30일까지 서귀포서 한라산 청정 고사리축제

제주에서 4~5월 봄이 되면 비날씨가 잦아지는데 제주사람들은 이때를 ‘고사리 장마’라고 부른다. 이 비를 맞으면 고사리가 잘 자란다. 막 자리기 시작한 이때 꺾은 고사리가 가장 연하고 맛있다. 5월 하순에 들면 고사리의 잎이 피고 줄기가 단단해지면서 맛이 없어진다.

이 기간 제주 산간의 목장을 비롯해 오름(작은화산체), 곶자왈(용암지반 숲지대) 등지에는 아침부터 사람들이 몰려든다. 중장년이 주를 이루고 주로 나이지긋한 노인까지 연신 허리를 굽혀 고사리 사냥에 한창이다.

주로 관광객인 초보자들은 시야가 확 트인 들판이나 숲을 돌아다니며 고사리를 꺾는다. 하지만 고사리꺾기 ‘고수’들은 숨겨둔 자신만의 ‘포인트’를 찾아간다. 제주에서는 ‘고사리 명당은 딸이나 며느리에게도 알려주지 않는다’는 말이 있을 정도다.

지난 27일 제주도 한라산 500m 중턱에서 만난 고사리 꺾기 달인 강상월씨가 꺾은 고사리를 들어 보이고 있다. 최충일 기자.

지난 27일 제주도 한라산 500m 중턱에서 만난 고사리 꺾기 달인 강상월씨가 꺾은 고사리를 들어 보이고 있다. 최충일 기자.

제주도에서 30년간 고사리를 꺾어온 강상월(64·여·서귀포시 대포동)씨는 고사리 꺾기의 달인이다. 지난 27일 해발 500m 한라산 중턱에서 만난 그녀는 100m 전방의 들판에서 고사리를 꺾는 이들을 보며 “저런 고사리 꺾어봐야 먹지도 못해. 상품이 될 고사리는 주로 수풀 사이 음지에 따로 있어”라고 말했다.

정말 고수가 꺾은 고사리는 다른이들이 꺾은 것보다 한눈에도 굵고 오동통해 맛있어 보였다. 고사리 꺾는데도 기술이 필요했다. 강씨는 “줄기의 땅쪽 끝부분은 질겨 먹지 못하니 땅에서부터 줄기의 20~30% 윗부분을 꺾어야 한다”는 비법을 알려 줬다. 강씨가 꺾은 이런 상품 고사리는 푹 삶아 말려 팔면 1㎏에 7만원정도를 받을 수 있다. 꽤 짭짤한 용돈벌이가 되는 셈이다.

관광객들은 용돈벌이보다는 주로 직접 맛보려고 꺾는 경우가 많다. 이모(50·여·서울시 상암동)씨는 “TV 프로그램 등에서 제주 고사리가 맛있다고 한 걸 본적이 있어 꺾고 있다”며 “특히 현장에서 돼지고기를 삶거나 구워 함께 곁들여 먹으면 일품이라는 이야기를 들은 만큼 1시간만 꺾으려 했던 일정을 3시간으로 늘렸다”고 말했다.

고사리는 '산에서 나는 소고기'라고 불릴 정도로 영양이 풍부하다. 단백질·칼슘·철분·무기질을 많이 함유하고 있어서 건강에 이롭다. 제주 고사리는 과거 ‘궐채(蕨菜)’라고 불리며 예로부터 임금님께 진상했다고 한다.

이렇게 고사리 채취객이 늘어나다보니 매년 봄철이면 제주에서는 ‘길 잃음 안전사고 주의보’가 발령된다. 제주경찰청에 따르면 최근 3년 간 고사리 채취객 길 잃음 사고는 2014년 44건, 2015년 47건, 2016년 45건 등 136건이다.

고사리만 보고 숲을 걷다 길을 잃어버리는 것이다. 길 잃음 사고를 예방하기 위해서는 고사리를 채취할 때 일행들과 함께 가고, 여분의 휴대전화 배터리와 위치를 알릴 수 있는 호루라기 등을 챙겨야 한다.

지난 27일 관광객들이 제주도 한라산에서 고사리를 꺾고 있다. 최충일 기자

지난 27일 관광객들이 제주도 한라산에서 고사리를 꺾고 있다. 최충일 기자

길 잃을 우려 없이 고사리 꺾는 ‘손맛’을 볼 수 있는 기회도 있다. 오늘(29일)부터 30일까지 이틀간 서귀포시 남원읍 한남리 국가태풍센터 서쪽 일대에서는 제22회 한라산 청정 고사리축제가 열린다.

이번 축제는 그간 방문객들의 사랑을 받았던 고사리 풍습 체험, 고사리 음식만들기 체험 외에 고사리를 넣은 흑돈 소세지 만들기, 머체왓 숲길 걷기대회 등 다양한 체험 프로그램을 추가했다.

제주=최충일 기자 choi.choongil@joongang.co.kr

지난 27일 관광객들이 제주도 한라산에서 고사리를 꺾고 있다. 최충일 기자

지난 27일 관광객들이 제주도 한라산에서 고사리를 꺾고 있다. 최충일 기자

지난 27일 한 관광객이 제주도 한라산에서 꺾은 고사리를 보여주고 있다. 최충일 기자

지난 27일 한 관광객이 제주도 한라산에서 꺾은 고사리를 보여주고 있다. 최충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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