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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 최대 여행사의 ‘단칸방’ 실험실에 잠입하다

중앙일보

입력

세계 최대 규모의 온라인 여행사 익스피디아는 얼굴 근육의 움직임으로 사람의 감정을 파악하는 기술력을 갖추고 있다. 미국과 영국, 싱가포르에 연구소가 있다. 사진은 싱가포르 실험실 모습. [사진 익스피디아]

세계 최대 규모의 온라인 여행사 익스피디아는 얼굴 근육의 움직임으로 사람의 감정을 파악하는 기술력을 갖추고 있다. 미국과 영국, 싱가포르에 연구소가 있다. 사진은 싱가포르 실험실 모습. [사진 익스피디아]

온라인 여행사 익스피디아 싱가포르 지사 탐방 #마이크로소프트 사내 벤처에서 출발한 회사 #사람 표정으로 감정까지 읽어내는 기술력 갖춰 #한해 1000여 건 실험···결과는 사이트 개선에 반영 #

면적 7㎡(2평) 남짓한 방에 물건이라고는 책상과 의자 그리고 데스크톱과 카메라가 전부다. 세계 최대 온라인 여행사 익스피디아의 ‘실험실’ 풍경이다. 4월 초 싱가포르 익스피디아 아시아태평양 지사에서 만난 다라 코즈로샤히 최고경영자(CEO)가 “익스피디아의 심장부”라고 거창하게 소개한 실험실은 단출하고 소박했다.

익스피디아의 다라 코즈로샤히 CEO. 양보라 기자

익스피디아의 다라 코즈로샤히 CEO. 양보라 기자

미국 워싱턴주 밸뷰에 본사를 둔 익스피디아는 1996년 마이크로소프트(MS) 사내 벤처로 탄생했다. 호텔·항공·렌터카 등 여행상품 검색·예약 서비스를 제공하는 온라인 여행사로, 99년 MS에서 독립한 뒤 2016년 3분기에만 710억 달러(약 83조원)의 매출을 올렸다. 우리나라를 비롯해 세계 75개국에 현지화한 사이트를 운영 중이다. 공룡 여행사의 실험실이라면 대규모 공장만한 크기일 거라 짐작했는데 익스피디아 직원은 하나같이 고시원 방보다 작은 방을 ‘실험실’이자 ‘혁신 센터’라고 부르고 있었다.

실험에 참가한 사람이 익스피디아 사이트를 이용하는 모습을 익스피디아 연구원들이 지켜보고 있다. 양보라 기자

실험에 참가한 사람이 익스피디아 사이트를 이용하는 모습을 익스피디아 연구원들이 지켜보고 있다. 양보라 기자

여행사가 과연 어떤 실험을 진행하는지 궁금해 하던 찰나 익스피디아 아서 채핀 부사장이 “‘실험실 규모’에 실망하지 말라”며 관찰실로 안내했다. 관찰실에서 생중계하는 실험 과정을 참관하자니, 병원 진찰실을 엿보는 기분이 들었다. 실험에 참가한 아시아 여성이 데스크톱 앞에 앉자 연구원이 여성의 얼굴에는 전자 근운동기록기(Electro-myography·EMG) 센서를 부착했다. “이마와 턱, 눈가 근육의 미세한 움직임을 분석해 실험 참가자의 시선 분포와 감정의 변화를 추적하는 장치”라는 연구원의 설명이 뒤따랐다.

전자 근운동기록기(Electro-myography·EMG)라 불리는 감정·시각 전달 센서. 양보라 기자

전자 근운동기록기(Electro-myography·EMG)라 불리는 감정·시각 전달 센서. 양보라 기자

곧이어 관찰실 티비 화면에 참가자의 감정 상태를 표시하는 그래프가 떴다. 두 개로 나뉜 그래프는 각각 ‘집중도’와 ‘행복감’을 수치로 나타냈다. 연구원이 이 여성에게 “예산에 상관없이 당신이 머물고 싶은 호텔을 검색해보라”고 주문하자, 놀랍게도 ‘홍콩 만다린 오리엔탈 호텔’ 사진을 들여다보는 여성의 집중도·행복감 곡선이 요동을 쳤다. 반대로 “예산에 합당한 호텔을 찾으라”라는 말에 행복감 그래프가 하향 곡선을 그렸다.

시각 전달 센서를 통해 여성의 동공 움직임도 기록됐다. 1시간 정도 진행한 실험을 통해 이 여성이 호텔 후기를 꼼꼼히 들여다보고, 예약 사이트에 등록된 사진을 모두 체크한다는 점을 파악할 수 있었다. 익스피디아는 2014년부터 실제로 여행 계획이 있는 소비자를 초청해 여행 상품 예약 과정을 관찰했는데 2015년에는 1375건, 2016년에는 1450건의 테스트를 진행한 바 있다. 실험의 신뢰성을 높이기 위해 국적·성별·인종을 골고루 섞는다. 채핀 부사장은 “행동 인지 과학 박사학위자로 구성된 연구진이 실험과정을 모두 수치화하고 빅데이터로 만든다”면서 “소비자 행동 분석에서 익스피디아의 혁신이 탄생한다”고 말했다. 코즈로샤히 CEO 역시 “기술은 익스피디아의 DNA”라며 “익스피디아 임직원 2만 명 중 4분의 1은 소프트웨어 엔지니어고, 지난해에만 8억 달러(약 9200억원)를 기술 개발에 투자했다”라고 덧붙였다.

조나단 닐 익스피디아 아시아 CEO. 양보라 기자

조나단 닐익스피디아 아시아 CEO. 양보라 기자

실험을 통해 얻은 데이터는 곧장 익스피디아 사이트를 개선하는 데 반영되고 있다. 일례로 익스피디아는 2015년 사이트 재방문 고객이 지난 검색 내역을 확인할 수 있는 ‘스크래치 패드’를 신설했다. 익스피디아 실험 중 호텔 예약자가 마음에 드는 호텔을 노트에 적어놓는 패턴이 반복된 데서 착안한 것이다. 사이트 문구, 타이포그래피, 호텔 사진을 게시하는 순서까지 익스피디아의 작은 변화는 모두 ‘실험’에 의한 결과인 셈이다.
익스피디아는 기술력을 바탕으로 한국을 비롯한 아시아태평양 시장에 영향력을 키우려는 준비를 하고 있다. 익스피디아 아시아 조나단 닐 CEO는 “2016년 한국 국적 소비자를 대상으로 실험한 결과, 한국 여행자가 호텔을 예약할 때는 기차역과 얼마나 가까운지를 중요하게 고려한다는 점을 파악했다”면서 한국 사이트의 위치 정보 및 지도를 개선하는 과정 중이라고 밝혔다.

싱가포르=양보라 기자 bora@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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