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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봇이 1분만에 만든 13만개 마이크로 홀'…스마트 공장, 무풍에어컨을 만들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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업데이트

삼성전자 정밀금형 개발센터에는 8대의 대형 로봇이 가전제품 디자인 제작을 담당한다. [사진 삼성전자]

삼성전자 정밀금형 개발센터에는 8대의 대형 로봇이 가전제품 디자인 제작을 담당한다. [사진 삼성전자]

1분에 200번 왕복하는 고속 프레스 로봇이 에어컨 전면부 철제 패널에 구멍을 뚫는다. 모래알(1.2㎜) 크기의 구멍(마이크로 홀) 13만5000개를 뚫는데 걸린 시간은 1분 남짓. 마이크로 홀은 찬 바람이 직접 배출되는 것을 막고 냉장고에서 냉기가 나오듯 시원한 공기만 통과시킨다. 삼성전자 무풍에어컨의 핵심 기술로 꼽힌다.

삼성전자, 광주 무풍에어컨 생산라인·정밀금형 개발센터 공개 #2만2000㎡ 작업장에 30명 근무…8대 대형 로봇이 가전 디자인 담당 #기계·사람 분업해 실외기 생산…스마트폰으로 공장 환경 조절도

사람 손길 없이 로봇이 제작하는 스마트 공장이 한국의 가전 공장에도 도입되고 있다. 18일 삼성전자가 처음 공개한 광주공장 내 정밀금형 개발센터가 대표적이다. 센터 안에 들어서자 2만2000㎡ 규모의 작업장 안에 근무 중인 사람을 찾기가 어려웠다. 대신 8대의 대형 금형 제작 로봇들이 작업을 전담하고 있었다. 최성욱 삼성전자 수석은 "정밀금형 센터에서 일하는 직원은 30여 명"이라며 "2020년에는 모든 공정을 무인 자동화 시스템으로 만들 것"이라고 강조했다.

정밀금형 개발센터는 삼성 가전의 외관을 디자인하는 곳이다. 삼성이 로봇을 이용해 거푸집으로 비유되는 금형을 만들면 수백 곳에 달하는 협력업체가 이 금형을 이용, 제품 조립용 부품을 대량 생산한다. 현재 센터는 냉장고와 세탁기·공기청정기·무풍에어컨 등 중·대형 가전제품의 금형을 제작하고 있다.

로봇이 제작을 전담하다 보니 단순 금형 제작뿐만 아니라 세밀한 디자인까지 실현할 수 있게 됐다. 삼성전자 고급형 냉장고 지펠 T-9000의 문짝에는 머리카락 두께 '20분의 1' 크기의 미세 구멍 1800개가 뚫려 있다. 이는 기계가 찍어 누르는 프레스 금형 기술로는 만들 수 없기 때문에 레이저를 이용한다. 육안으로는 보이지 않는 이 구멍에다 버튼을 눌러 백라이트를 켜자 냉장고 문 위에 은은한 연두색 빛 글자가 표시됐다. 액정을 붙이지 않아 고급스런 메탈 느낌을 살리면서도 냉장·냉동실 온도와 같은 정보를 표시할 수 있게 한 것이다.

특히 최근 프리미엄 가전 제품 수요가 늘면서 정밀금형 개발센터가 직접 제품을 제작하는 일도 늘고 있다. 거푸집을 만들어 대량으로 찍어낸 제품이 아니기 때문에 '조각가가 직접 공들여 만든 예술품'으로 비유된다. 삼성전자 프리미엄 주방가전인 '셰프 컬렉션'이나 QLED TV 등 고가 제품의 외형이 이런 방식으로 제작된다.

스마트 기술은 생산 라인의 혁신도 이뤄내고 있다. 광주공장 무풍에어컨 조립 라인에서 근무하는 근로자들은 대형 증강현실(AR) 모니터로 에어컨 조립 방식을 2주간 익히고 난 뒤 실전에 투입된다. 실제 라인에서 조립하는 에어컨 내부와 똑같은 모습을 모니터에 띄우고 어떤 색깔의 전선을 어디로 연결할 지, 어떤 순서로 나사를 조여야 할 지 등을 미리 연습하는 것이다. 또 공장 내부 적정 온도와 냉매 충전량 등도 스마트폰으로 조절할 수 있도록 '커넥티드 공장(인터넷에 연결된 공장)' 기능도 도입했다.

실외기 생산 과정은 사람과 로봇이 한 조를 이룬 듯했다. 로봇이 콤프레서를 들어올려 실외기 바닥에 놓으면 컨베이어 벨트를 타고 근로자에게 넘어 온다. 볼트와 너트를 끼워넣거나 기계 외관 스크레치 여부를 검사하는 작업은 사람이 담당한다. 기계와 사람이 서로가 더 잘할 수 있는 일로 분업이 이뤄지는 것이다.

삼성전자 광주공장 근로자들이 각자의 개인 작업장인 '셀'에서 무풍에어컨을 조립하고 있다. [사진 삼성전자]

삼성전자 광주공장 근로자들이 각자의 개인 작업장인 '셀'에서 무풍에어컨을 조립하고 있다. [사진 삼성전자]

삼성전자는 에어컨 생산라인을 컨베이어 벨트에서 공동 작업하는 방식에서 개인에게 작업장을 주는 '셀 방식'으로 바꿨다. 개별 셀에 달린 모니터에는 하루 조립 에어컨 목표량과 실제 조립량이 기록되고, 조립이 끝난 뒤 불량품이 나오면 어떤 셀에서 생산된 제품인지 추적해 근로자에게 피드백을 준다. 이계복 삼성전자 에어컨제조그룹장은 "지난 2013년부터 셀 방식을 적용해 본 결과 생산성은 이전보다 25% 늘고 불량률은 절반으로 줄었다"고 설명했다

이정 유진투자증권 연구원은 "일본의 화낙은 로봇과 기계를 인터넷으로 연결한 제조 플랫폼을 올해 출시하고 독일 지멘스도 제품에 RFID 칩을 붙여 공정 진행 상황을 실시간 확인하는 스마트 시스템을 도입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이 연구원은 "스마트 팩토리는 단순히 불량률을 낮추는 것을 넘어 4차 산업혁명의 핵심적인 혁신 기술로 떠오를 것"이라고 강조했다.

다만 무인 자동화 확대로 제조업계 일자리 감소는 불가피해 보였다. 이에 대해 이준호 삼성전자 홍보실 부장은 "단순 반복 작업은 로봇으로 대체되겠지만, 로봇과 생산라인을 관리하는 새로운 일자리는 앞으로도 계속 생겨날 것"이라고 말했다. 김도년 기자 kim.donyu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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