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분 제안에 “한국 국민에게 여러 이야기하고 싶어” 10분 발언…펜스 방한 뒷이야기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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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이크 펜스 미 부통령이 2박3일의 방한 일정을 마치고 18일 오전 일본으로 출국했다. 북한과 중국을 향해 강경한 경고 메시지를 발신하고 출발 직전엔 한·미 자유무역협정(FTA) 개정 가능성까지 언급, 굵직한 뉴스들을 쏟아놓고 간 그의 사흘을 돌아봤다.

펜스 부통령 방한의 시작은 고고도미사일방어(THAAD·사드) 체계 배치 문제로 소란스럽게 시작됐다. 그와 동행한 백악관 외교 보좌관이 “사드 배치는 차기 대통령이 결정하는 것이 옳다”고 말하면서다. 한국을 배제한 미·중 간 밀약설까지 불거졌다. 하지만 한·미 당국자들의 말을 종합해보면 이는 말실수에 가까웠다고 한다. 구체적인 배경 지식 없이 기술적 부분에서 원론적 언급을 한 것이 문제가 됐다는 것이다. 펜스 부통령도 이 발언을 한 보좌관에게 언짢은 반응을 보였다는 후문이다.

2박3일 중 하이라이트격인 행사는 17일 오후 총리 공관에서 황교안 대통령 권한대행과 함께 서서 한 입장발표였다. 미국의 시리아 공격, 아프가니스탄 공습까지 거론하며 북한을 향해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과 미군의 결의를 시험하지 말라”고 단도직입적 경고를 보냈다.

당초 이날 입장 발표는 양 측이 3~4분씩 하는 것으로 사전 조율이 됐다. 하지만 펜스 부통령이 한국에 도착한 뒤 미 측은 “좀 더 길게 발언을 해야 할 것 같다”는 뜻을 전해 왔다. 펜스 부통령이 “한국에 온 김에 한국 국민에게 여러 이야기를 하고 싶다”고 했다는 것이다. 실제 펜스 부통령의 발언은 순차 통역을 빼고 약 10분 정도 진행됐다. 한미동맹과 대북 공조부터 사드 배치, 6·25 전쟁에 참전한 선친 이야기까지 다양한 주제가 언급됐다. 최근 한국 내에 팽배한 코리아 패싱(미국이 한반도 문제에서 한국을 배제한 채 결정을 내릴 수 있다는 우려) 여론을 의식한 듯 한·미 간 긴밀한 공조도 수차례 강조했다. 양국의 우정이 영원할 것(eternal)이란 이례적 표현까지 써가면서다.

한국 측은 미국 측에 펜스 부통령이 발표시 짚어주면 좋을 포인트를 몇개 전달했다고 한다. 정부 관계자는 “우리가 이야기한 포인트를 다 짚은 것은 물론이고, 우리가 생각치 못한 부분까지 입장 발표에 넣었더라”고 전했다.

미 최고위급 인사의 방한을 맞아 정부는 의전에도 크게 신경을 썼다. 펜스 부통령이 집무실에도 아버지가 받은 훈장을 걸어놓을 정도로 아버지의 참전 사실을 자랑스러워한다는 점에 착안해 선물을 준비했다. 펜스의 아버지와 관련된 발굴되지 않은 사진 등도 찾아봤으나 여의치 않았다. 그래서 나온 아이디어가 펜스 부통령이 소중히 여기는 아버지가 훈장을 받는 사진을 그림으로 그려서 주자는 것이었다. 여기에 한국 전통미를 강조하기 위해 일반 기념패가 아니라 고려 백자 자기를 택했다. 펜스 부통령은 이 선물을 받고 크게 기뻐했다고 한다.

그는 비무장지대(DMZ)에서 진행한 미 CNN 방송 인터뷰에서 “어렸을 적 기억에 아버지는 전쟁에서 겪은 일을 거의 이야기해주지 않았다. 이번에 브룩스 한미연합사령관이 아버지가 참전했던 폭찹힐 전투에 대해 여러 정보를 알려줬다”며 “이번 방한은 나와 내 가족에게 정말 뜻깊은 것으로, 지금 한국의 번영을 보면 아버지도 천국에서 미소짓고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유지혜 기자 wisepe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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