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데뷔 60년 안성기 “팬클럽 없으니 모든 국민이 팬”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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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3면

13일 데뷔 60주년을 맞아 마련된 특별전 ‘한국영화의 페르소나, 안성기展(전)’ 개막식에 참석한 배우 안성기. 그는 “영화는 많은 생각을 하고 사람들과 이야기 할 시간적 여유가 충분한 데 반해 드라마는 50분 분량 촬영을 이틀 만에 끝내더라”며 드라마에 출연하지 않는 이유를 밝혔다. [사진 한국영상자료원]

13일 데뷔 60주년을 맞아 마련된 특별전 ‘한국영화의 페르소나, 안성기展(전)’ 개막식에 참석한 배우 안성기. 그는 “영화는 많은 생각을 하고 사람들과 이야기할 시간적 여유가 충분한 데 반해 드라마는 50분 분량 촬영을 이틀 만에 끝내더라”며 드라마에 출연하지 않는 이유를 밝혔다. [사진 한국영상자료원]

‘국민배우’라는 타이틀이 이보다 더 잘 어울리는 사람이 있을까. 인간미 넘치는 연기로 60년간 평범한 우리 이웃, 한국의 보통 사람을 연기해온 배우 안성기(65)의 얘기다. 그의 데뷔 60주년을 맞아 한국영상자료원이 ‘한국영화의 페르소나, 안성기展(전)’을 마련했다. 13일 서울 상암동 시네마테크에서 열린 개막식에 참석한 그는 “60년은 정말 실감이 안 나는 숫자”라며 “사실 나를 50대 중반으로 알고 있는 사람도 많은데 이 행사를 통해 얻는 것보다 잃는 게 많을 수도 있을 것 같다”고 소감을 밝혔다.

‘한국영화의 페르소나 … ’ 특별전 개막 #5세 때 김기영‘황혼열차’로 데뷔 #“130편 중 한 작품만 고르라면 고문 #선·후배 함께 연기 오래 하는게 꿈” #배창호 “하얀 도화지 같은 배우”

1957년 김기영 감독의 영화 ‘황혼열차’에서 아역으로 데뷔한 안성기는 지난 60년간 약 130편의 작품에 출연했다. 신문광고에 “천재 소년 안성기”라는 문구가 등장할 정도로 큰 관심을 받았다. 그는 “당시에는 전쟁 후라 아역배우가 흔치 않았다”며 “연기가 뭔지도 모르고 시키는 대로 했을 뿐, 선전용 문구 ‘천재 소년’과는 거리가 있었다”고 겸손함을 보였다.

하지만 안성기는 ‘하녀’(1960), ‘남부군’(1990) 등 굵직굵직한 작품에 출연하면서 필모그래피를 쌓아갔다. “가장 중요한 작품을 뽑아달라”는 취재진의 요청에 그는 “한 작품만 고르라면 고문”이라면서도 이장호 감독의 ‘바람 불어 좋은 날’(1980)을 시작으로 터닝 포인트가 된 8편의 작품을 꼽았다. “당시 사회적으로 새로운 바람이 일어나는 시대였고 정확하게 그 시대를 관통하는 작품이었다”는 회고처럼 그는 곧 시대를 대표하는 얼굴이 되었다. 거렁뱅이 청춘 민우(‘고래 사냥’·1984)부터 부패하고 망가진 조 형사(‘투캅스’·1993) 등 스펙트럼은 해를 거듭할수록 넓어졌다.

그는 전시 제목처럼 작가주의 감독의 페르소나였다. 임권택 감독과는 ‘만다라’(1981)로 처음 만나 ‘화장’(2015)까지 30년이 넘는 시간 동안 함께 작품세계를 구축해왔다. 이날 축사를 맡은 배창호 감독은 “내가 연출한 18편 중 13편을 안성기와 함께했다”며 “하얀 도화지처럼 여러 가지 색깔을 입힐 수 있기에 많은 작품을 할 수 있었다”고 말했다. “상복이 많아서 ‘안상복’, 치밀하고 조용한 성격에 ‘독일 잠수함’이라는 별명을 붙이기도 했다”며 에피소드를 전했다.

그 역시 원작을 발굴하며 작품에 적극 관여하기도 했다. “‘하얀 전쟁’(1992)은 한국외대 베트남어과 출신인 내가 베트남전 참전 병사의 모습을 꼭 그리고 싶어서 정지영 감독에게 동명 소설을 영화로 만들자고 권했던 작품”이라며 “베트남전을 뒤집어본 영화라는 데 의미가 있다”고 설명했다. 주연에서 조연으로 연착륙한 ‘인정사정 볼 것 없다’(1999)와 첫 천만관객을 돌파한 ‘실미도’(2003) 역시 안성기의 연기 인생을 논할 때 빠질 수 없는 작품이다. 본인과 가장 닮은 캐릭터로는 톱스타 최곤 역을 맡은 박중훈과 호흡을 맞춘 ‘라디오 스타’(2006)의 매니저 박민수 역을 꼽았다.

13일 데뷔 60주년을 맞아 마련된 특별전 ‘한국영화의 페르소나, 안성기展(전)’ 개막식에 참석한 배우 안성기. 그는 “영화는 많은 생각을 하고 사람들과 이야기 할 시간적 여유가 충분한 데 반해 드라마는 50분 분량 촬영을 이틀 만에 끝내더라”며 드라마에 출연하지 않는 이유를 밝혔다. [사진 한국영상자료원]

13일 데뷔 60주년을 맞아 마련된 특별전 ‘한국영화의 페르소나, 안성기展(전)’ 개막식에 참석한 배우 안성기. 그는 “영화는 많은 생각을 하고 사람들과 이야기할 시간적 여유가 충분한 데 반해 드라마는 50분 분량 촬영을 이틀 만에 끝내더라”며 드라마에 출연하지 않는 이유를 밝혔다. [사진 한국영상자료원]

스크린쿼터 등 사회문제에 꾸준히 목소리를 내고 있는 이유에 대해서도 허심탄회하게 밝혔다. 그는 “성인 연기자로 다시 시작한 1980년대는 영화에 대한 대중의 인식이 좋지 않았다”며 “영화하는 사람도 좀 더 존중받고 동경의 대상이 됐으면 좋겠다는 생각에 작품 선택에 더욱 신중을 기하고 영화에 관련된 일이면 앞장서서 열심히 한 편”이라고 설명했다. 유니세프 친선대사·신영균예술문화재단 이사장·아시아나 국제단편영화제 집행위원장 등 다양한 직함에 대해서도 “한국 영화의 미래를 짊어지고 갈 젊은이를 지원하는 의미있는 일”이며 “나 자신에게도 큰 자극이 된다”고 덧붙였다.

앞으로 계획 역시 모두 영화로 수렴했다. “연기를 오래 하는 것, 젊은 후배들이 보다 오래 일할 수 있도록 배우 정년을 늘리는 것”을 꿈이라고 말하는, 가장 왕성하면서도 올곧게 활동해온 배우 앞에서 ‘팬’을 자처하지 않을 사람이 어디 있겠는가. 그 역시 “팬클럽이 없으니 모든 국민이 팬이라고 생각한다”고 밝혔다. 그간 함께 일궈온 한국 영화의 괄목할 만한 성장에 기뻐하면서도 “대기업이 투자하다 보니 나이드신 분들이 도태되는 것이 마음이 아프다”며 “지금 현장에 남은 선배들과 밑에서 올라오는 세대가 공존하는 모습을 만들어가고 싶다”고 말했다.

이날 행사에는 신성일, 강수연, 송강호, 장동건, 한예리 등 원로부터 신예까지 다양한 연령대의 동료 배우들도 참석해 자리를 빛냈다. “탁월한 캐릭터 소화력으로 영화마다 다른 모습을 보여주는 천의 얼굴을 가진 배우”(오동진 영화평론가), “재능과 근성을 겸비한 연기자의 표본이자 롤모델”(윤성은 영화평론가) 등이 그에 대한 평가다. 이번 특별전은 오는 28일까지 계속되며 주요작 27편을 무료로 감상할 수 있다.

민경원 기자 storymi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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