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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니페스토 운동 집중 보도 한국 정치개혁 공헌 큰 기대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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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9면

우리 사회에서 지속적으로 사기론 혐의를 벗어나지 못하는 선두는 정치 부문이다. 여론조사에서 나타나는 변함없는 결과다. 이런 점에서 중앙일보의 매니페스토 운동에 대한 1면과 6면에서의 집중 보도(2월 1일)와 참여 정치인에 대한 추가 보도(2월 2일)는 정치인의 사기 공약(空約)에 대한 언론의 올바른 대처라고 생각된다. 보도에 따르면 이 운동은 1997년 영국 총선에서 블레어 후보, 2003년 일본 지방선거에서 마쓰자와 후보가 시작해 확산되고 있다. 선거공약에 목표, 우선순위, 추진일정, 재원조달 방법 등의 기준에 대한 구체적인 내용이 포함돼야 하며, 모든 내용은 선거 전에 검증받고 당선 후에도 평가를 받게 된다. 따라서 실천 가능한 공약(公約)이 신중하게 제시되고 공약에 대한 유권자의 검증과 평가가 쉬워진다. 따라서 우리나라 선거에 적용된다면 다행스러운 일이 아닐 수 없다.

오는 5월에 지방자치단체 선거가 실시되니 시의성도 충분하다. 처음부터 지킬 수 없거나, 지킬 마음가짐도 없이 전시용으로 급조한 가짜 공약은 대한민국 선거에서 오래도록 흘러 넘쳤다. 그러다 보니 투표율의 하락은 총선에서 60%에 못 미치고 지방선거에서는 20%대를 기록한 적도 있다. 이래서는 대의정치제도를 골간으로 하는 민주주의가 제대로 운영된다고 할 수 없다. 선거나 정치의 위기에 그치는 것이 아니라 정치리더십의 정당성 자체를 훼손하기에 이른 것이다.

그러나 중앙일보의 매니페스토 보도가 실질적으로 한국 정치개혁에 공헌하기 위해서는 가야 할 길이 만만치 않아 보인다. 당선과 낙선이 혼재하는 선거라는 극적 소재에 안주해 당선 예측에 주력하고 정책보다는 인간 위주의 호기심을 충족하는 단편적인 정보만으로 국민을 흥분시켜 온 선거보도 타성을 버리기가 쉽지 않겠기 때문이다. 정치인과 정당을 쫓아다니는 취재 시스템의 변화가 필요하다. 취재처 중심의 보도(institution-based coverage)를 탈피하고 주요 주제를 심층적으로 보도할 수 있는 체제를 갖추어야 한다. 또한 신뢰할 수 있는 정보원을 좁게 한정함으로써 다양한 정보원에 의한 다양한 견해를 반영하는 데 한계가 있었던 전통적인 관행을 바꾸어야 한다.

선거와 같은 우리 사회의 리더십을 결정하는 과정이 시민들의 참여와 합리적인 판단에 의해 결정되는 일은 무엇보다 우선돼야 할 공공성이다. 신문이야말로 공공성을 실천하는 저널리즘을 보여주어야 한다. 선거보도가 시민의 참여와 후보자 선택에 도움을 주는 정보를 제공하지 못하고 단순한 선거뉴스 전달에 그치는 것은 개선돼야 한다. 매니페스토 운동에 대한 보도가 일회성으로 그치지 않고 지속적인 후속 보도와 선거보도 시스템의 혁신으로 이어져 5월 지방자치단체 선거에 대한 중앙일보의 보도가 정치꾼보다는 일반 시민을 중요하게 여기는 하의상달식 이슈 설정과 보도(bottom-up agenda setting and reporting)의 모범사례가 되기를 기대한다.

김정기 한양대 교수 신문방송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