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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라고 안 되겠어?'...미스터 트리플더블, 웨스트브룩

중앙일보

입력

올 시즌에만 NBA에서 42차례 트리플더블을 달성한 웨스트브룩. [사진 오클라호마시티 선더 트위터]

올 시즌에만 NBA에서 42차례 트리플더블을 달성한 웨스트브룩. [사진 오클라호마시티 선더 트위터]

트리플 더블(triple double). 농구에선 득점, 리바운드, 어시스트, 블록슛 등 각종 기록 중에서 3가지 부문에 두 자릿수 기록을 세우는 걸 뜻한다. 높이, 기술에 따라 포지션별 역할이 다른 농구의 특성상 트리플 더블은 다재다능한 농구 선수의 상징으로 통한다. 국내 프로농구엔 올 시즌 트리플 더블이 단 네 차례만 나왔다.

1962년 로버트슨 기록 55년만에 경신...3점슛 버저비터도 #강한 승부욕으로 똘똘 뭉쳐 작은 키+수술 악재 보란듯이 깨 #'트리플더블 기록 선배'도 "훌륭한 웨스트브룩, 올 시즌 MVP"

올 시즌 미국 프로농구(NBA)엔 이 트리플 더블을 2경기에 한 번꼴로 하는 '괴수'가 나왔다. 러셀 웨스트브룩(29·오클라호마시티 선더·1m91cm). NBA에선 크지 않은 키지만 그는 올 시즌 리바운드도 평균 10.7개 잡아냈고, 득점 31.7점, 어시스트 10.4개를 기록했다. 지난 8일 피닉스 선즈와의 원정 경기에서 시즌 평균 트리플 더블을 확정한 그는 10일 미국 콜로라도주 덴버의 펩시 센터에서 열린 덴버 너게츠와의 경기에서 시즌 최다 트리플 더블 기록(42회)까지 달성했다. 이날 50점·16리바운드·10어시스트를 기록한 그는 1961-62 시즌 오스카 로버트슨(79·당시 신시내티)이 보유한 한 시즌 최다 트리플 더블(41회)을 갈아치웠다. 79경기 만에 대기록을 세운 걸 자축하듯 웨스트브룩은 경기 종료 직전 3점슛 버저비터로 오클라호마시티의 106-105 역전승까지 이끌었다. 웨스트브룩은 "꿈도 꾸지 못할 가장 높은 단계에 섰다"며 기뻐했다.

NBA 공식 홈페이지는 '러셀 웨스트브룩, 트리플 더블 킹(triple double king)'이라고 표현했다. NBA에서 트리플 더블이란 말이 공식적으로 등장한 건 1979-80 시즌이다. 에이스의 의존도가 높았던 1960년대 초·중반, 로버트슨은 무려 181차례나 트리플 더블을 기록했다. 그러나 당시만 해도 이 기록을 거들떠보는 사람은 많지 않았다. 지난 6일 USA투데이와 인터뷰에서 로버트슨은 "트리플 더블이란 말이 없을 때였다. 그 땐 이 기록의 가치가 얼마나 큰 지 모를 때였다"고 말했다.

'농구 스타' 웨스트브룩도 처음엔 보잘 것 없었다. 절친한 친구와 함께 캘리포니아주 명문 UCLA에 가겠다는 꿈만 갖고 농구선수를 해온 웨스트브룩은 고교 졸업반 때까지만 해도 별로 주목받지 못한 선수였다. 운동 능력이 좋았지만 17세 때 키가 1m72cm로 작은 이유로 저평가를 받았다. 덩크슛도 고교 졸업반에 올라가서야 간신히 할 수준이었다. 웨스트브룩 스스로도 "난 결코 최고의 선수가 아니었다"고 말했다.

웨스트브룩을 일깨운 건 강한 승부욕이었다. 그는 스스로 '나라고 안 될 게 뭐 있어?(Why not me?)'라는 말을 자주 되뇌었다. 자신의 가치를 인정하지 않는 시선에도 흔들리지 않으려고 했다. 그는 농구팬이었던 아버지 러셀 웨스트브룩 시니어와 평범한 길거리 코트에서도 함께 운동하며 슛 연습을 거르지 않았다. 그는 "정신력 덕분에 매일 고비를 넘길 수 있었고, 내가 가고자 하는 길을 갔다"고 말했다. 웨스트브룩은 이 문구를 딴 '웨스트브룩 와이낫 재단'을 만들어 형편이 어려운 어린이들의 교육을 돕고 자선 활동도 펼치고 있다.

웨스트브룩 [중앙포토]

웨스트브룩 [중앙포토]

긍정적인 자세로 남모르게 자신의 기량을 갈고 닦은 웨스트브룩은 목표했던 UCLA에 진학한 뒤, 조금씩 두각을 드러냈다. 1학년 때 평균 3.4점에 불과했던 그는 2학년 때 팀 주전으로 뛰면서 미국대학농구 퍼시픽-10 콘퍼런스에서 평균 12.7점, 3.4리바운드, 4.7어시스트로 활약했다. 특히 '퍼시픽-10' 올해의 수비상까지 받은 그는 2학년을 마친 뒤, 2008년 NBA 드래프트에 과감히 지원해 전체 4순위로 오클라호마시티에 지명받았다.

NBA 데뷔 시즌인 2008-09 시즌에 15.3점, 4.9리바운드, 5.3어시스트를 기록한 웨스트브룩은 2013년까지 매년 성장했다. 2010년엔 미국 국가대표에도 뽑혔다. 그러나 2013-14 시즌을 앞두고 오른쪽 무릎 수술을 한차례 받고, 2013년 크리스마스 때 수술받았던 무릎을 또한번 다치면서 재수술을 받은 악재가 덮쳤다. 당시 한 전문의는 "무릎 연골 치료와 회복이 어렵다. 웨스트브룩 농구의 핵심은 빠른 방향전환과 엄청난 점프인데 예전처럼 폭발적인 움직임을 보여주기 어렵다"고 진단했다. 그런데 웨스트브룩은 이를 보란듯이 뒤집었다. 2014-15 시즌, 2015-16 시즌엔 전보다 리바운드뿐 아니라 득점, 어시스트도 늘었다.

올 시즌 들어 웨스트브룩은 빅맨의 임무인 리바운드마저 평균 10개 이상 잡아냈다. 오클라호마시티 간판 포워드였던 케빈 듀랜트(29·2m6cm)가 골든스테이트로 팀을 옮긴 뒤에 외곽뿐 아니라 골밑에서도 적극적으로 뛴 결과다. 웨스트브룩은 "위대한 리바운더는 슛이 림을 맞고나올 때 공이 어느쪽으로 가는지 미리 파악하는 것이다. 늘 이 생각을 갖고 리바운드를 한다"고 말했다. 빌리 도노번 오클라호마시티 감독은 "외곽슛 상황에선 공이 멀리 튀어나와 빅맨이 아니어도 리바운드를 많이 잡을 수 있다"고 설명했다.

웨스트브룩은 올 시즌 정규리그 최우수선수(MVP)로도 유력한 후보다. 시즌 막판 대기록을 연달아 세운 웨스트브룩에 대해 '트리플 더블 기록 선배' 로버트슨은 "내 기록을 깨기 위한 여정이 놀라웠다. 위대한 시즌을 보낸 웨스트브룩에게 축하를 전한다"면서 "언제나 그가 휼룽한 선수라고 생각해왔다. 이번 시즌 최우수선수(MVP)도 그가 탈 수 있기를 바란다"고 덕담을 건넸다.

김지한 기자 kim.jihan@joongang.co.kr

▶ '미스터 트리플 더블' 웨스트브룩

- 2016~17 시즌에 세운 다양한 기록들  

 2: 시즌 트리플 더블 NBA 역대 두 번째. 31.7점·10.7리바운드·10.4어시스트(10일 현재)

 7: 7경기 연속 트리플 더블만 두 차례. 역대 처음.

42: 한 시즌 최다 기록. 1962년 로버트슨(41회) 이후 55년만에 경신.

79: 통산 기록. 로버트슨(181회)-매직 존슨(138회)-제이슨 키드(107회)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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