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원 분위기] 판사들 "일단 지켜보자"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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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다수의 판사는 아직 침묵을 지키고 있다. 하지만 어떤 계기가 생기면 의사 개진을 하지 않겠느냐."

서울지법의 한 중견 판사는 이렇게 말했다. 대법관 제청에 반대하는 소장 판사 1백44명이 연명서를 대법원에 전달한 데 이어 일부 부장판사까지 집단행동을 보일 것으로 알려지면서 전국 법원에는 무거운 분위기가 감돌고 있다.

개혁 성향의 서울고법 한 판사는 "상당수의 판사가 인사 제도와 관련, 불만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다음주 초 대법관 제청 후 이들이 새로운 집단행동에 동조할 가능성이 작지 않다"고 말했다.

하지만 일선 판사들은 대부분 유보적 입장이었다. 법원 내부 전산망에는 이번 사태와 관련된 글이 새로 두건 게재되는 데 그쳤고 대다수의 판사는 "일단 지켜보자"는 입장을 보이는 등 연명서 전달 이후 아직까지 가시적 움직임은 보이지 않고 있다.

수원지법의 한 판사는 "할 말이 없는 것은 아니나 일단 다음주 초 대법관 제청 등 추이를 지켜보겠다"고 말했다. 특히 집단행동에 대해서는 부정적 반응이 지배적이다. 서울지법의 한 판사는 "사법개혁과 대법관 제청 제도 개선의 큰 줄기에는 공감하지만 누구는 안된다는 식으로 비난하고 나서는 것은 온당치 않다"고 밝혔다.

대법원은 14일 하루종일 분주하게 움직였다. 오전 9시30분부터 1시간30분 동안 법원행정처 차장 주재로 간부회의가 열려 이번 사태에 대한 대책 등을 논의했으며 오후에는 법원행정처장과 차장이 역시 1시간여 동안 회의를 열고 판사들의 집단행동 움직임 등을 놓고 숙의했다.

대법원의 한 관계자는 "대법원 간부들은 '시민단체나 변협 등이 대법관 제청을 두고 왈가왈부하는 것은 관심밖이지만 내부의 집단 움직임은 신경이 쓰인다'는 반응을 보이고 있다"고 말했다. 이 관계자는 "광복절 연휴 등을 거치며 일단 잠잠해졌다가도 다음주 초 대법관 제청 이후 다시 불이 붙을 가능성에 대해 걱정하는 분위기"라고 전했다.

한편 대법관 제청 자문위원인 박재승 변협 회장은 이날 오전 라디오 프로그램에 출연, "현재의 대법관 제청 자문위원회는 요식 절차에 불과하다"며 대법원의 결정을 다시 한번 비난했다.

정진경 광주지법 부장판사는 '무엇이 문제인가'라는 내부 통신망의 글에서 "이번에 추천된 세 분의 후보에게 문제가 있다고 생각지는 않는다"며 "그럼에도 저는 대법원의 절차적 폐쇄성에 분노했고 이는 현 대법원의 경직성을 보여주는 사례"라고 비판했다.

전진배.이수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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