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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홍승일의 시시각각

“조선소 안 간다”는 조선학도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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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0면

홍승일 논설위원

홍승일 논설위원

서울대 조선해양공학과장인 김용환 교수는 최근 한국과 일본의 대학 캠퍼스에서 접한 두 장면을 씁쓸하게 털어놨다.

업계·정부는 유망 직업 믿음 줘야 #미래 선박·해양플랜트 전문가 절실

장면 1. 국내 최대 조선·중공업 업체인 현대중공업이 대졸 신입 10명을 뽑겠다고 지난달 서울대 조선해양공학과에 입사지원 의뢰를 해 왔다. 공고를 했더니 모인 지원자는 학부생·대학원생 합해 3명뿐이었다.

장면 2. 김 교수가 특임교수로 일하는 일본 오사카대 조선해양학과에 지난 겨울방학 머물 때의 일. 학부생 7명과 상담하다가 깜짝 놀랐다. 모두 조선소 취직이 꿈이라고 했다.

우선 장면 1. 신입생이 46명인 조선해양공학과는 전공 충성도가 높기로 유명했다. 3년 전만 해도 졸업생 절반이 조선소에 취업했다. 대학원 연구 기능을 중시하는 서울대 특성상 30% 남짓 같은 과 대학원에 진학한 이들을 빼면 대부분 조선소를 첫 직장으로 택한 셈이다. 그러던 것이 지난해엔 학부 졸업생 22명 가운데 조선소 취직과 대학원 진학 합해 7명으로 급감했다. 올해는 3명에 불과하고, 그것도 한 명은 외국인 학생이었다. 삼성중공업·대우조선은 아예 채용 계획이 없었다.

조선 대형 3사의 해양플랜트 사업 실패와 경영난으로 후유증을 앓는 상아탑의 풍경이다. 대우조선은 존망의 기로이고, 다른 두 업체도 대규모 적자에 시달렸다. 불안하기 짝이 없는 직장이다. 전과(轉科)나 복수전공으로 타 학과 문을 두드리는 학생이 부쩍 늘었다.

장면 2. 조선학과 졸업생이 조선소에 가겠다는 게 뭐 그리 놀랍나. 일본 은 십수 년 동안 그렇지 않았기 때문이다. 조선 주도권을 한국·중국에 잇따라 빼앗긴 뒤 조선소 대신 도요타·소니 같은 화려한 업종으로 빠져나갔었다.

명문대생이 최고 업체를 외면할 만큼 우리 조선해양산업의 1등 이미지는 많이 퇴색했다. 한 조선학과 학생은 ‘조선업 살아나라고 기도하지만 현중(현대중공업) 구조조정 하는 것 보니 공부가 잘 안 된다’고 SNS에 올렸다.

실패였다는 일본 조선 구조조정의 길을 우리가 갈지도 모른다. 오일쇼크로 선박 발주 시장이 마르자 1970년대, 80년대에 대형 도크, 설계·연구 인력을 확 줄이는 구조조정을 단행했다. 한국 조선업은 그때 오히려 시설과 인력을 크게 늘려 세계 1등이 됐다.

이제 우리는 당시 일본의 패배주의 분위기다. “한국 조선은 중국에 추격당할 사양 산업, 공적자금 빨아먹는 흡혈귀, 방만경영·분식회계 일삼는 파렴치범” 아니냐고.

일본 시코쿠 에히메현의 이마바리조선소는 요즘 같은 불황에도 공격투자를 한다. 세계 최대 규모인 600m 도크를 건설하고 있다. 지난해 말 수주 잔량에서 현대중공업을 앞선 회사다. 도쿄대는 90년대 후반 조선공학과를 폐지해 학문 주도권을 오사카대에 넘겨준 걸 근래 후회하는 기색이다. 조선해양 연구시설을 대거 확충해 학과 재건의 소문이 나돈다. 일본 조선이 쇠락할 때 한국이 보인 파이팅을, 한국 조선이 고전하는 지금 일본이 거꾸로 보여주는 듯하다. 중국만 무서운 게 아니다.

생산시설을 과도하게 구조조정하면 고급 인력의 싹을 잘라버린다는 걸 일본 조선의 역사는 보여준다. 젊은 인재가 떠나버리면 그 산업은 회복 불능이라는 걸 미쓰비시·미쓰이 같은 조선소가 보여준다.

그린 십(환경 친화)·스마트 십(IT 친화) 같은 차세대 고부가가치 선박은 조선해양 분야 산학 연구가 활발한 대학과의 협업이 불가피하다. 대학의 해양플랜트 특성화 과정을 활용해 융합엔지니어링 전문가를 길러야 한다(이영길 대한조선학회 교육위원장).

조선해양은 전후방 산업 연관 및 고용유발 효과가 커서 ‘괜찮은 일자리(Decent job)’의 보고(寶庫)라고 한다. 금융위원회와 산업통상자원부도 대우조선 파산 손실이 얼마(59조원이냐 17조원이냐)인지 티격태격할 때가 아니다. 조선산업 갱생의 큰 그림은 무언지 사회 첫걸음을 떼는 젊은이들에게 보여줘야 한다.

홍승일 논설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