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overStory] "환리스크 관리 않는 게 투기"

동양석판(주) 손준원 사장

"환 위험을 막는 데 쓰는 돈을 비용이라고 생각하는 발상부터 바꿔야 합니다."

통조림 깡통의 재료인 석도강판 등을 생산하는 동양석판㈜의 이순호(46) 재무팀장은 요즘 가파르게 떨어지고 있는 환율이 두렵지 않다. 원화값이 치솟아도 경영에 영향을 받지 않도록 하기 위해 평소 치밀하게 환 위험을 관리해 온 덕분이다. 이 회사는 지난달 한국증권선물거래소가 뽑은 '2005년 환 위험 관리 최우수 기업'에 선정됐다.

2001년까지만 해도 이 회사의 손익은 환율에 휘둘렸다. 2004년 기준 매출액 2600여억원 중 52%를 미국과 동남아에 공급하는 등 수출 의존도가 높았지만 재료는 전량 국내에서 조달했기 때문이다. 특히 수출한 물건값의 95%를 달러로 받다 보니 원-달러 환율 변동의 영향력이 절대적이었다. 원-달러 환율이 1원 떨어지면 1억2000만원의 손실이 났다. 하지만 380여 명의 직원 가운데 외환전문가라고는 한 명도 없었다.

이런 상황이 바뀐 건 2002년 1월 손준원(44) 사장이 취임하면서부터. 창업주인 손열호(85) 전 회장의 아들로 미국에서 경영대학원(MBA) 과정을 마치고 돌아온 손 사장은 환율 변동 위험을 관리하지 않고선 안정적인 회사 경영을 기대할 수 없다고 판단했다. 그는 먼저 총괄이사와 영업본부장.재무팀장.해외영업팀장으로 구성된 외환관리위원회를 조직했다. 위원회는 환율 변동 상황을 수시로 점검해 헤지(Hedge) 비율이나 헤지 가격 등을 결정하도록 했다. 실제 거래는 전문적인 노하우를 갖춘 선물회사에 맡겼다.

직원들의 환 지식을 높이기 위한 노력도 병행했다. 사원들이 무역협회 등에서 운영하는 선물거래상담사와 외환관리사 등의 과정을 이수할 수 있도록 교육비를 전액 지원했다. 재무 등 외환 담당자들이 외환 관련 자격증을 취득할 경우 승진 심사 때 가산점을 주도록 했다.

이런 노력 끝에 이 회사는 최근 몇 년간 환율이 가파르게 떨어지는 와중에도 해마다 100억원 안팎의 이익을 낼 수 있었다. 손 사장은 "수출 시점과 돈을 받는 시점의 환율 차이 때문에 해마다 100억원 안팎의 환 손실이 발생했지만 환 헤지로 같은 금액을 벌어 손익에 영향을 받지 않았다"고 말했다.

외환 관리는 기업 경영에서 반드시 들어야 할 보험이라는 게 손 사장의 생각이다. 중소기업, 특히 수출 기업일수록 환율이 기업 경영의 주요 변수인 만큼 만약에 생길지 모를 손실을 최소화한다는 본래의 목적을 잊지 않아야 한다는 것이다.

동양석판은 이 때문에 외환 거래에서 어떠한 기대 이익도 추구하지 않는다는 방침을 세우고 있다. 1년 뒤 환율과 예상 수출액을 염두에 두고 매달 환율 전략을 짜고, 예상 수출액의 범위 안에서만 헤지 거래를 하는 것도 이 때문이다. 결과보다 과정을 중시하는 시스템도 중요하다.

이 회사는 사내 전산망을 통해 관련 부서가 환 정보를 공유해 상호 통제하도록 하고, 손실이 나더라도 합당한 사유가 있으면 책임을 묻지 않는다. 손 사장은 "환율 차이를 통해 이익을 보겠다는 욕심을 버리고 기업 수준에 맞는 환 관리 전략을 짜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임장혁 기자

*** 동양석판㈜의 환 위험 관리 10계명

(1) 환율 변동에 따른 어떠한 기대이익도 추구하지 않는다.

(2) 예상수출액의 범위 내에서만 환 위험 관리전략(헤지.Hedge)을 짠다.

(3) 전혀 헤지를 않는 것도 투기다.

(4) 1년 뒤 환율과 예상수출액을 염두에 두고 매달 환율 전략을 짠다.

(5) 환 관리 전략을 조정하는 '환관리위원회'는 환율 변동에 따라 수시로 소집한다.

(6) 환 위험 관리비용은 기업 경영의 불확실성에 대한 보험료다.

(7) 환차손익 자체보다 의사결정의 합당한 사유, 내부지침의 준수 등을 평가한다.

(8) 전 사원이 환 위험 마인드를 갖는다.

(9) 헤지를 실행할 때는 유관 부서가 모두 체크할 수 있도록 정보를 공유한다.

(10) 외환관리사.선물거래상담사 등 전문가를 내부에서 육성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