휠체어 탄 기적의 지휘자 정상일 교수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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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년 11월. 세종문화회관 대강당. 정상일 세한대 실용음악학과 교수는 30년을 서왔던 오케스트라 무대가 낯설게 느껴졌다. 1년 전 11층 난간에서 떨어져 하반신 마비가 된 뒤 처음 잡아보는 지휘봉이었기 때문이다. 첫 곡은 모차르트의 오페라 ‘피가로의 결혼’ 서곡. 경쾌한 바이올린의 선율로 시작하는 이 곡엔 무려 35명의 연주자가 참여했다. 휠체어를 타고 무대 앞에선 정 교수는 손짓 하나하나에 혼신의 힘을 쏟으며 오케스트라를 지휘했다.

2012년 11층 난간서 추락후 하반신 마비 #2013년 휠체어 타고 첫 오케스트라 지휘 #휠체어 장애인 합창단 만들며 세계 공연

이 날 정교수의 지휘가 이뤄진 20여 분 동안 객석을 가득 메운 800여명의 관객들은 무대 한 가운데를 숨죽여 지켜봤다. 정 교수의 역동적인 몸짓에서 뿜어져 나오는 뜨거운 열정은 35개의 악기를 모두 합친 것보다 뜨거웠다. 그가 오케스트라가 연주를 마치고 인사를 올리자 관객들은 기립박수로 화답했다. ‘휠체어 탄 기적의 지휘자’가 탄생하는 순간이었다.

사고로 하반신 마비가 된 세한대 실용음악과 정상일 교수. 장애를 극복한 그는 휠체어 장애인 합창단을 지휘하고 있다. 3일 오후 서울 순화동 배재빌딩 근방의 조형물 앞에서 포즈를 취했다. 우상조 기자 

사고로 하반신 마비가 된 세한대 실용음악과 정상일 교수. 장애를 극복한 그는 휠체어 장애인 합창단을 지휘하고 있다. 3일 오후 서울 순화동 배재빌딩 근방의 조형물 앞에서 포즈를 취했다. 우상조 기자

“처음엔 불가능할 거라고 생각했죠. 제 몸 하나 가누기도 힘든데 지휘봉을 다시 잡는다는 건 상상도 못했습니다. 자칫 오케스트라 전체를 망칠 수도 있고요.” 그러나 정 교수를 다시 일으킨 건 그의 아내와 두 딸, 동료 교수들이었다. “다시 무대에 서보라는 이야기를 수백번 들었습니다. 그리고 용기를 냈죠.”

하지만 이전처럼 두 다리에 체중을 실어가며 역동적인 지휘를 할 순 없었다. 또 휠체어에 앉아선 보면대의 악보를 넘기는 것조차 힘들었다. “악보를 모두 외우다시피 했습니다. 개별 악기가 들어가고 나올 부분까지 모두 머리에 넣었죠.” 정 교수는 “평생을 해온 일이었지만, 무대에 다시 서는 것은 새로운 도전이었다”고 말했다.

다시 지휘봉을 잡은 후 그의 도전은 계속됐다. 그의 첫 복귀작인 ‘피가로의 결혼’ 서곡처럼 마치 인생의 2막이 새롭게 열리는 느낌이었다. 2014년 그는 자신의 영문 이름 이니셜을 딴 ‘CSI 오케스트라단’을 창단했다. 클래식 음악은 지루하다는 편견을 넘기 위해 해금과 거문고, 단소 등 국악기부터 드럼과 기타, 색소폰 등 대중악기를 클래식 악기들과 협연했다.

그가 본격적인 ‘휠체어를 탄 기적의 지휘자’로 불리기 시작한 것은 2016년 2월 ‘대한민국 휠체어합창단’을 만들고 나서부터다. 정 교수는 “휠체어를 탄 장애인들로만 구성된 대규모의 합창단은 우리가 전 세계에서 유일하다”고 말했다. 지난해 4월 50명의 휠체어 장애인들이 합창 무대에 처음 올랐다. 이들은 합창곡 '아름다운 나라'를 열창했다.

사고 이전에 이미 세계 20여개 국가의 무대에서 명지휘자로 활동했던 그의 재기 소식이 알려지자 곳곳에서 초청장을 보냈다. 지난해 7월 그의 합창단과 오케스트라단은 클래식의 본고장인 오스트리아 비엔나에 초청됐다. 지난 1월엔 이탈리아 로마에서 공연했고 올 7월엔 러시아 모스크바 공연을 앞두고 있다.

그의 다음 목표는 평창올림픽이다. 패럴림픽 개막식 때 그의 합창단원 100명이 휠체어를 타고 애국가를 함께 부르는 것이다. 정 교수는 "장애인과 비장애인 모두 어려운 현실 속에 움츠러 들지 않고 자신의 꿈을 멋지게 펼쳐가는 세상을 만드는데 힘을 보태고 싶다"고 말했다.

윤석만 기자 sam@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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