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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열려라 공부] 연노랑 복도 벽에 동물 친구들 … 학교가 환해졌어요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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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8면

지난달 31일 서울 강서구 삼정초 3~4학년 학생들이 사진 촬영을 위해 1층 출입구 신발장 위에 올라 앉았다. 아이들 뒤편의 벽화가 재미있다. 서울시의 ‘학교 컬러 컨설팅’ 사업으로 이 학교 곳곳이 바뀌었다. [사진 우상조 기자]

지난달 31일 서울 강서구 삼정초 3~4학년 학생들이 사진 촬영을 위해 1층 출입구 신발장 위에 올라 앉았다. 아이들 뒤편의 벽화가 재미있다. 서울시의 ‘학교 컬러 컨설팅’ 사업으로 이 학교 곳곳이 바뀌었다. [사진 우상조 기자]

“학교가 나한테 ‘안녕’하고 인사하는 느낌이에요.” 서울 강서구 방화동에 있는 삼정초 6학년 김동현군은 달라진 학교에 대한 느낌을 이렇게 표현했다. 김군은 매일 아침 교문을 지나 학교 본관 서쪽 현관에 들어서자마자 연두색 바탕의 벽화와 마주한다. 벽화 속에선 학사모를 쓴 독수리, 나무, 책 읽는 소년, 우주복을 입은 곰 등이 한데 어울려 놀고 있다. 이 중에서 독수리는 김군이 직접 아이디어를 낸 캐릭터다.

교육 현장 바꾸는 ‘컬러 컨설팅’ #회색·흰색 벗어나 노랑·분홍·연두 … #전문가와 함께 채색·디자인 작업 #6년간 서울시내 학교 27곳 탈바꿈 #주의력 40% 늘고 안전사고도 줄어

“내가 생각해 낸 캐릭터가 학교 벽면에 그려져 있다는 게 신기하고 재미있어요. 볼 때마다 기분이 따뜻해지고 웃음이 나와요.”

삼정초 복도에 그려진 코끼리.

삼정초 복도에 그려진 코끼리.

김군의 교실이 있는 4층에도 김군이 좋아하는 그림이 이어진다. 우선 복도 초입의 급식용 엘리베이터 위 연보라색 벽면에 안경 쓴 곰돌이가 흰색으로 그려져 있다. 교실까지 이어진 복도의 벽면엔 연두·분홍·노랑·아이보리 등 포근한 느낌을 주는 색이 칠해져 있다. 학생들은 변화를 크게 반기고 있다. 6학년 김채연양은 "이전엔 복도가 칙칙하고 어두워 무서울 때가 많았다. 지금은 교실에 가는 길 내내 학교가 나를 따뜻하게 감싸주는 느낌”이라고 말했다. 김양은 학교에 대해 "동화 속 정원 같다”고도 표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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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학교도 이전에 다른 학교들처럼 어둡고 우중충한 분위기였다. 학교 곳곳이 현재 모습으로 달라진 건 지난해 10월이다. 이 학교는 서울시 디자인정책과가 추진하는 ‘학교 컬러 컨설팅’ 사업에 신청했다. 디자인·색채 전문가의 조언을 받고 학생들 의견을 반영해 학교 내부 색깔을 바꿨다. 컬러 컨설팅은 무채색 위주의 기존 학교 건물에 색을 입히는 프로젝트다. 다양한 색채, 친근한 캐릭터를 이용해 학생들이 학교를 편안한 공간으로 받아들이도록 돕는 일종의 ‘컬러테라피’다. ‘색(color)’과 ‘치료(therapy)’의 합성어인 컬러테라피는 색의 성질을 응용해 스트레스를 줄이고 삶의 활력을 키우는 정신요법이다. 이 학교 오미향 교장은 "어두컴컴하던 복도가 프로젝트 덕분에 환해졌다. 아이들이 복도에서 뛰다가 부딪쳐 다치는 안전사고도 줄었다”고 말했다. 오 교장은 "무엇보다 등교하는 학생들의 표정이 밝아진 것 같아 기쁘다”며 좋아했다.

서울 우신초 복도. 이전에 무채색 일색이던 학교 복도에 노랑·분홍·연두·보라색 등이 더해져 따뜻한 느낌을 준다. 서울의 27개 학교가 이렇게 바뀌었다. [사진 서울시]

서울 우신초복도. 이전에 무채색 일색이던 학교 복도에 노랑·분홍·연두·보라색 등이 더해져 따뜻한 느낌을 준다. 서울의 27개 학교가 이렇게 바뀌었다. [사진 서울시]

이 프로젝트는 전문가와 학교의 공동작업으로 이뤄진다. 우선 디자인 관련 연구소와 미대 교수 등 색채 전문가 그룹이 학교·학생의 특성과 주변 환경 등을 고려해 프로젝트 콘셉트를 조언해 준다. 여기에선 개별 학교 환경을 반영한 ‘맞춤형 처방’이 기본이다. 삼정초는 개화산 산자락에 자리 잡고 있다. 이런 여건을 살려 이 학교 프로젝트에선 ‘자연의 느낌을 살린 동화 속 정원’을 모티브로 정했다.

과밀 학급이 많은 서울 송파구 신천중은 명도(색의 밝기)가 높은 색을 복도에 입혔다. 학생이 많아 혼잡함을 느끼는 아이들에게 밝고 쾌적한 인상을 주기 위해서다.

서울 중원초 복도. 이전에 무채색 일색이던 학교 복도에 노랑·분홍·연두·보라색 등이 더해져 따뜻한 느낌을 준다. 서울의 27개 학교가 이렇게 바뀌었다. [사진 서울시]

서울 중원초복도. 이전에 무채색 일색이던 학교 복도에 노랑·분홍·연두·보라색 등이 더해져 따뜻한 느낌을 준다. 서울의 27개 학교가 이렇게 바뀌었다. [사진 서울시]

이렇게 콘셉트가 정해지면 전문 작가들이 학교에 맞는 캐릭터를 디자인한다. 전문가들은 약 6개월간 교사·학생들과 수차례 회의를 열고 디자인을 함께 완성해 간다.

지난해 서울 송파구 풍납중학교 컬러 컨설팅에 참여한 홍익대 김영수(디자인영상학부) 교수는 "학생들이 학교 상징물로 별을 그리면 작가는 학생의 아이디어에 착안해 우주공간을 디자인한다. 이런 식으로 학생 의견을 반영하며 ‘참여 디자인’ 방식으로 진행하는 것이 이 프로젝트의 핵심”이라고 설명했다.

서울 거원중 복도. 이전에 무채색 일색이던 학교 복도에 노랑·분홍·연두·보라색 등이 더해져 따뜻한 느낌을 준다. 서울의 27개 학교가 이렇게 바뀌었다. [사진 서울시]

서울 거원중복도. 이전에 무채색 일색이던 학교 복도에 노랑·분홍·연두·보라색 등이 더해져 따뜻한 느낌을 준다. 서울의 27개 학교가 이렇게 바뀌었다. [사진 서울시]

비용은 서울시와 학교가 함께 부담했다. 학교 한 곳을 컨설팅하는 데엔 현장 조사, 워크숍 개최, 작가 섭외 등 수개월이 걸리고 약 1000만원이 든다. 이 비용은 서울시가 댄다. 페인트 작업 등 실제 공사 비용은 학교가 부담한다. 2011년 이후 현재까지 이 프로젝트를 거친 학교는 27곳에 이른다.

학생들에겐 어떤 변화가 있을까. 서울시와 학교에 따르면 학생들의 집중력과 주의력이 높아지고 스트레스는 줄어들었다고 한다. 서울시가 2014년 프로젝트를 거친 학교 중 하나인 우장초 학생 20명을 대상으로 뇌파 검사를 해 본 결과 주의력은 40%, 집중력은 27% 상승한 것으로 나타났다.

서울 풍납중 복도. 이전에 무채색 일색이던 학교 복도에 노랑·분홍·연두·보라색 등이 더해져 따뜻한 느낌을 준다. 서울의 27개 학교가 이렇게 바뀌었다. [사진 서울시]

서울 풍납중복도. 이전에 무채색 일색이던 학교 복도에 노랑·분홍·연두·보라색 등이 더해져 따뜻한 느낌을 준다. 서울의 27개 학교가 이렇게 바뀌었다. [사진 서울시]

도서관 내부 색깔을 바꾼 학교에선 학생들의 도서관 이용 문화가 달라졌다. 노원구 중원초가 이런 사례다. 도서관 벽면을 연두색으로 바꾸고 벽면엔 조랑말·기린·코끼리 등이 나무 사이에서 노니는 그림을 그려 넣었다. 이 학교 이용신 사서 교사는 "도서관 이용 학생이 하루 150명에서 200명으로 늘었다. ‘도서관 벽화를 구경하겠다’며 왔다가 자연스레 책을 펼치는 학생이 많다”고 자랑했다. 이 학교 이경자 교감은 "아이들의 환경을 바꾸는 것이 이렇게 효과가 클 줄은 몰랐다”고 했다. 학생들의 스트레스도 줄었다. 서울시가 5개 학교 학생 46명을 대상으로 측정해 봤더니 스트레스가 평균 20.7% 줄어든 것으로 분석됐다.

대부분 학교에서 화장실은 학생들이 ‘되도록이면 가고 싶지 않은 곳’이다. 어둡고 음침한 느낌을 주는 곳이 많아서다. 중원초 는 컬러 컨설팅으로 이 문제를 해결했다. 화장실마다 입구 벽에 주황·연보라·하늘색을 칠하고 꼬마병정·풍차·구름 등 학생들이 좋아할 만한 캐릭터를 그렸다. 6학년 최건희군은 "한 반에 서너 명씩은 학교 화장실을 가지 않았는데 이젠 이런 친구들이 큰 어려움 없이 화장실에 잘 간다”고 전했다.

서울 신목중 복도. 이전에 무채색 일색이던 학교 복도에 노랑·분홍·연두·보라색 등이 더해져 따뜻한 느낌을 준다. 서울의 27개 학교가 이렇게 바뀌었다. [사진 서울시]

서울 신목중 복도. 이전에 무채색 일색이던 학교 복도에 노랑·분홍·연두·보라색 등이 더해져 따뜻한 느낌을 준다. 서울의 27개 학교가 이렇게 바뀌었다. [사진 서울시]

컬러테라피는 성인보다 청소년에게 효과가 더 크다고 한다. 김선현 차의과학대(미술치료학과) 교수는 "학교의 색채 환경은 아이들의 감성과 행동 패턴은 물론 기질이나 학습 효율, 건강 까지 영향을 준다”며 "성인에 비해 환경 변화에 더 예민하고 적응이 빠른 청소년에게 특히 효과적”이라고 설명했다.

변화를 겪은 학교는 평판이 좋아져 학부모들의 학교 행사 참여 증가로 이어졌다. 송파구 풍납중학교가 대표적이다. 이 학교는 지난해 ‘꿈을 찾는 시간 여행’이라는 콘셉트로 학교를 바꿨다. 열정을 상징하는 빨강, 풍요의 느낌을 주는 노랑, 치유의 시간을 뜻하는 녹색, 지혜와 이성을 상징하는 파란색을 학교 내부에 입혔다. 학부모들로부터 "학교가 화사해 좋다. 학교 오기가 편해졌다”는 반응이 나왔다. 이 학교 김병오 교장은 "지난해엔 학부모 총회에 많아야 100명이 왔는데 이달 학부모 총회엔 180여 명이나 왔다. 학부모의 발걸음이 가벼워진 것 같다”고 소개했다.

이 같은 효과가 나타나자 이 프로젝트를 서울시가 아니라 서울시교육청이 직접 맡기로 했다. 프로젝트 대상 학교도 올해 추가로 30여 곳을 선정하기로 했다.

● 컬러테라피

색(color)과 치료(therapy)의 합성어로 색의 성질을 이용해 심리·재활치료 등 스트레스를 완화시키고 삶의 활력을 키우는 정신 요법이다. 예를 들면 녹색은 신경과 근육의 긴장을 완화시켜 마음을 평온하게 해주고, 노랑·주황 등 따뜻한 계열의 색은 우울감을 줄이고 몸에 활력을 불어넣는 효과가 있다. 색이 인체에 미치는 영향은 1950년대에 연구가 시작돼 미국 의학자들에 의해 다양한 치료기법으로 발전했다. 현대에 이르러 컬러테라피는 의학 분야뿐 아니라 기업의 마케팅, 환경 개선을 통한 범죄 감소 등 정치·사회·경제·문화 등 다양한 분야에 폭넓게 활용되고 있다.

글=정현진 기자 Jeong.hyeonjin@joongang.co.kr
사진=우상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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