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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와대 참모 조직 비대화 막아야

중앙선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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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25호 01면

원로·전문가 제언, 불행한 대통령 악순환 끊으려면 …

박근혜 전 대통령이 지난달 31일 서울구치소에 구속 수감되면서 친인척과 측근 비리로 추락했던 역대 대통령들의 비극이 정점을 찍게 됐다. 1987년 대통령 직선제 개헌 이래 한국 정치사에서는 전직 대통령 6명 모두 자신 또는 일가족이 권력형 비리에 얽히는 악순환이 반복됐다.

권한 독점 인정한 제도에서 #실패의 불씨 자라고 있는 셈 #권력 분산 개헌 머리 맞대야 #총리의 장관 제청권 실질 운영을

이에 대해 우리 사회 원로들과 각계 전문가들은 “헌법상 우리나라 대통령제는 대통령에게 각종 규제와 인허가를 관할하는 공무원 인사권은 물론 검찰·경찰·국정원·국세청 등 권력기관을 관장할 수 있는 권한을 독점적으로 부여하고 있는 게 가장 근본적인 문제”라고 지적했다. 그러면서 “이 같은 제도적 맹점이 대통령의 실패로 직결되고 있는 것”이라며 “지금이야말로 제왕적 대통령제를 전면적으로 손봐야 할 때”라고 입을 모았다.

이홍구 전 총리는 “헌법이 규정한 최고 정책심의기구인 국무회의보다 헌법상 권한이 없는 청와대 수석비서관회의가 더 주목을 받을 정도로 대통령제가 심각하게 왜곡돼 있다”며 “대통령이 국무위원인 장관을 임명할 때 국무총리의 제청을 받도록 규정한 헌법 제87조를 실질적으로 운영하는 것부터 제왕적 대통령제의 폐해를 고쳐 나가야 한다”고 말했다.

송복 연세대 명예교수는 “87년 헌법에선 단임제가 중요했지 대통령이 얼마나 많은 권력을 갖는지는 크게 신경 쓰지 않았다”며 “막강한 권력을 쥐고 있다 보면 기업이든, 개인이든 자의적으로 움직일 수 있다는 착각과 자만에 빠지기 쉽다”고 지적했다.

이들은 대통령 구속이라는 국가적 불행이 닥친 지금이 제도 개혁의 호기라고 한목소리를 냈다. 최장집 고려대 명예교수는 『양손잡이 민주주의』에서 “정부 형태이자 통치 체제인 민주주의를 어떻게 잘 제도화하고 운영할 것이냐라는 문제에 더 많은 관심을 가져야 할 때”라고 말했다. 서정건 경희대(정치외교학) 교수도 “사람 대신 로봇이 일하는 4차 산업혁명을 맞이한 지금 한 사람에게 권력이 집중되는 시스템인 제왕적 대통령제가 시대 변화와 얼마나 동떨어졌는지는 더 말할 필요가 없다”며 제도적 수술의 필요성을 강조했다.

서 교수는 또 “작은 청와대에 대한 상징적 조치로 우리와 같은 대통령제를 채택한 미국에는 없는 청와대 정무·민정수석실부터 없애야 한다”고 제안했다. 대통령이 청와대 참모 조직을 통해 국회와 권력기관을 통제하는 폐쇄적인 과정에서 비선 실세가 개입할 틈이 생겼다는 지적이다.

이번 최순실 국정 농단 사건에서 보듯 권력 내부에 대한 감시가 전혀 이뤄지지 않았다는 점에서 감시 시스템이 제대로 작동될 수 있는 사회적 기반을 갖추는 게 시급하다는 지적도 나왔다. 이와 관련해 권력을 견제하는 언론의 역할과 분발을 주문하는 목소리도 적잖았다.

‘대통령 잔혹사’를 낳고 있는 현행 헌법을 권력 분산형으로 바꾸는 개헌의 필요성도 제기됐다. 임채정 전 국회의장은 “권력만 쥐면 만사가 형통한다는 ‘권력형통’ 의식이 문제”라며 “5년 단임 대통령제를 포함해 소선거구제 등 선거제도까지 개헌 목록에 올려놓고 여야가 함께 머리를 맞대야 한다”고 말했다.

이헌재 전 경제부총리는 ‘다원성’과 ‘소통’을 키워드로 제시했다. 한 사람에게 모든 권한이 집중되는 것에서 탈피해 여러 분야로 권한을 나눠 시스템으로 움직이도록 해야 한다는 주문이다. 서 교수는 “이번 사태를 거치면서 국민의 정치의식도 많이 성숙한 만큼 앞으로는 대통령이 현직 프리미엄을 누리기가 어렵게 됐다”며 “임기 내에 성과를 내기 위해선 권한을 나누고 선택과 집중을 할 수밖에 없을 것”이라고 말했다.

정용환·염지현·박민제 기자

cheong.yongwha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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