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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애인이 생겼을 때 그 곳이 가장 먼저 생각났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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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름처럼 아스라한 곳이다. 운일암반일암. 구름도 반나절 해도 반나절. 그토록 물 많고 깊은 계곡. 아스라한 만큼 나에겐 오래도록 아름다운 곳이다. 두 차례 갔었으나 모두 오래전 여름의 일이다. 1983년에 처음 갔었고 3년 뒤인 1986년에 다시 갔었다.

전북 진안 운일암반일암. [사진 강레아]

전북 진안 운일암반일암. [사진 강레아]

1983년의 나는 시와 소설을 쓴답시며 잔뜩 폼을 잡던 예비역 복학생이었다. 1986년은 총각으로서의 마지막 해였다. 1983년에는 대학 문학 서클 친구들과 와르르 어울려 갔고 1986년엔 애인과 단둘이 다녀왔다.

소설가 구효서 추천, 진안 운일암반일암

운일암반일암은 이름 그대로 암석과 암벽의 계곡인데 안 알려진 곳이라서 좋았고 안 알려진 것에 비해 입이 딱 벌어질 만큼 비경이라 좋았다. 일반 계곡에서 흔히 보는 매끈하고 둥글둥글하고 넉넉한 너럭바위와는 어딘가 다른 바위들이었다. 시 쓰는 친구들이 시시덕거리기를, 던진 만두 반죽 던진 찐빵 반죽 던진 곰보빵 반죽이라고 했다. 여느 화강암과는 느낌이 확연히 달랐다. 아닌 게 아니라 계곡의 바위들은 산신령이 빵 반죽을 하다가 말고 급히, 그것도 아무렇게나 떼어 던져놓은 것처럼 보였다. 갑자기 애인이 만나자는 바람에 산신령이 좀 급했나 보다고 친구들은 실없이 웃었다. 늘 풍부한 물 기운에 흥건히 젖어 검게 번들거렸으니 바위가 빵이라면 오징어 먹물 빵이었다.

계곡의 바위에다 산신령이며 그의 애인까지 들이대는 건 좀 뭣할지 모르나 그럴만한 까닭이 없지는 않다. 젊은 날의 관심사의 팔 할은 연애가 아니던가. 게다가 엠티고, 남녀의 비율이 적당히 반반이고, 민박이야 남녀 따로 정했지만 술 마시고 문학을 열광적으로 논하다 보면 한 방에서 밤이 깊어지게 마련 아니던가. 그러다 보면 없던 애인도 생기고 아닌 척했던 애인 관계도 탄로 나고 애인이었던 사이가 벌어지고 그러는 것.

전북 진안 운일암반일암. [사진 강레아]

전북 진안 운일암반일암. [사진 강레아]

그날도 여지없이 그랬다. 한 놈이 울고불고 그랬다. 그럴 줄 알았다. 문학은 무슨. 놈은 성질을 내고 바깥으로 뛰쳐나갔는데 밖엔 비가 쏟아졌다. 칠흑 같은 밤에 자칫 발이라도 헛디디면 천길 낭떠러지였다. 일행은 놈의 이름을 외쳐 부르며 어두운 계곡과 암벽을 샅샅이 뒤졌다. 날이 밝고도 한참이 지나서야 간신히 놈을 찾았는데, 술에 취한 놈이 비틀거리며 헤맸던 칼바위 길을 아침에 맞닥뜨렸을 때의 아찔함이라니. 절로 오금이 꺾였다. 그런데 오해라며 놈에게 달려들어 눈물 콧물 쏟으며 와락 얼싸안던 여자 시인 지망생의 지극한 오열이라니. 영화를 찍는구나. 아, 참, 나, 애인 없는 사람 서러워 살겠나, 한마디씩 했지만 어쨌든 놈 탓에 운일암반일암 구경은 밤낮으로 제대로 한 셈이었다.

나에게 애인이 생겼을 때 운일암반일암 생각이 가장 먼저 났던 것은 당연한 일이었을까. 하루쯤 캠핑하자고 그곳으로 지금의 아내와 함께 떠났던 여행이 그만 3박 4일이 되고 말았다. 어쨌거나, 무엇보다, 운일암반일암의 매력과 운치 때문이, 었, 겠, 지.

멀고 아스라해서 더 아름다운 기억이다. 지금도 그때의 그 운일암반일암일까. 어련할까. 선캄브리아기 때부터 이어져 내려오는 지질층이라지 않은가. 애인이 있는 사람도 애인이 없는 사람도 가 볼 곳이다.

구효서(소설가)

작가 약력 
1987년 중앙일보 신춘문예 소설 『마디』로 등단

소설 『타락』『동주』『랩소디 인 베를린』『나가사키 파파』『비밀의 문』『라디오 라디오』소설집 『별명의 달인』『저녁이 아름다운 집』『시계가 걸렸던 자리』『아침 깜짝 물결무늬 풍뎅이』산문집『인생은 깊어간다』등. 

‘이효석 문학상’ ’황순원 문학상’ ‘대산문학상’ ‘동인문학상’ 등 수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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