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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박보균 칼럼

한번 폴리페서면 영원한 폴리페서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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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5면

박보균
박보균 기자 중앙일보
박보균칼럼니스트·대기자

박보균칼럼니스트·대기자

폴리페서가 몰락했다. 권력 해체로 드러난 집단비극이다. 그들의 무능과 무책임, 탐욕과 배신은 어지럽다. 교수 출신 장·차관, 수석들의 언행은 역설로 작동한다. 박근혜 권력의 한심한 진실이 폭로됐다.

박근혜 정권 폴리페서 몰락은 #과대포장 교수 세계의 비극 #김광두·김상조·김호기 주장은 #상투적이고 대세론 과시용 #강병구의 강렬한 국장급 선택 #교수 상품의 거품 빠져야

박근혜 정부는 폴리페서(polifessor) 전성시대였다. 교수들은 장·차관급 고위 정무직에 중용(15~20%)됐다. 그 수치는 관료 출신 다음으로 높다. 폴리페서의 성공 확률은 낮다. 실패 요소는 여러 가지다. 안종범, 김종, 김상률, 홍기택의 경우는 실감 난다.

교수와 관료 세계의 차이는 뚜렷하다. 대학은 관념과 추상이다. 공직은 실질과 현장이다. 공직은 정책을 선택, 집중하는 자리다. 우선순위와 경중(輕重) 선정에 익숙해야 한다. 홍기택 전 산업은행 회장에게 그런 영역은 낯설었다. 대우조선해양의 구조조정은 그를 괴롭혔다. 그는 그 무게를 견디지 못했다. 정부는 그를 아시아인프라투자은행(AIIB) 부총재로 옮겨줬다. 하지만 그는 중도하차했다. 국가 망신으로 이어졌다.

폴리페서는 공직의 내밀한 노하우를 모른다. 정책 실패도 수사 대상이 된다. 관료들은 요령 있게 적는다. 수첩을 수시로 없앤다. 안종범 전 청와대 수석의 수첩은 56권. 그 압수물은 그의 29개월(경제수석+정책조정수석)의 행적이다. 그의 받아 적기는 꼼꼼했다. 일련번호도 매겼다. 우직한 보좌 자세다. 하지만 수첩은 범죄의 사초(史草)로 둔갑했다. 대검중수부장 시절 심재륜의 활약은 수사의 전형이다. 심재륜은 “압수수색의 우선 추적물은 수첩과 다이어리다. 하지만 꾀 많은 비서와 약삭빠른 자들은 수첩을 남기지 않는다”고 했다.

폴리페서의 승부의식은 빈약하다. 정책은 결단의 배수진을 요구한다. 하지만 그들 다수는 정권과 운명을 같이하지 않는다. 그만두면 대학으로 복귀할 수 있어서다. 박근혜 정권의 정책 승부수는 규제 혁파였다. “규제의 암을 제거해야 일자리가 생긴다”고 외쳤다. 규제는 공무원의 권력이다. 규제를 없애려면 부하 관료를 설득, 압박해야 한다. 하지만 교수 출신 장관들은 대체로 시늉뿐이다. 역량 부족에다 허술한 근성 탓이다. 정권의 규제 개혁은 실패했다.

교육문화수석 직책은 김상률에게 어울리지 않았다. 그의 좌파적 시각은 정권과 충돌한다. 그는 차은택의 외삼촌이다. 그것이 수석 발탁 배경이다. 그는 맞지 않는 옷을 입었다. 그리고 권력의 단맛을 즐겼다. 폴리페서들은 호가호위에 익숙하다. 그만큼 빠르게 돌변한다. 김종 문체부 전 차관의 법정 처세는 그런 상념을 낳는다. 그는 “사죄드리고 싶다. 대통령과 최순실로부터 이용당했다고 생각한다”고 했다. 그 후회 속에 배신의 그림자가 너울거린다. 정치 참여 교수의 성공 사례도 있다. 그런 작품을 만든 인물의 공통점이 있다. 정치적 상상력, 결과에 대한 책임의식, 대통령의 신임, 직언할 수 있는 용기다. 박정희 시대의 남덕우가 그런 부류에 꼽힌다. 라종일(김대중), 김병준(노무현), 류우익(이명박)도 그런 품성과 기량을 가졌다.

문재인 캠프의 참여 교수들은 늘어난다. 1000여 명 규모의 폴리페서다. 김광두·김상조·김호기 교수의 합세는 대세론의 과시다. 그들은 합류 이유로 “지식인의 책임의식”을 내세운다. 그 주장은 상투적이다. 폴리페서들의 명분은 비슷하다. “정치 밖의 훈수, 논평은 한계가 있고 무책임하다. ” 그들 세계의 관행과 불문율이 있다. “한번 폴리페서는 영원한 폴리페서다.” 다른 교수의 줄서기를 모른 척한다. 교수들은 쉽게 사퇴한다. 복직도 어렵지 않다.

폴리페서의 몸값은 높다. 정치 불신의 반사이득이다. 그들은 장·차관, 수석으로 직행한다. 그들의 평판과 상품성에 끼인 거품은 심하다. 하지만 의미 있는 거부와 파격적인 변화도 있다. 국가기술표준원의 강병구 표준정책국장은 교수(고려대 경영학과) 출신이다. 그는 기술 표준(KS 마크) 분야의 최고 민간 전문가다. 2015년 그는 민간 스카우트 공무원에 기용됐다.

강병구의 사연은 강렬하다. “우리 사회에선 대학교수가 과대 포장돼 있다. 교수는 장관이나 수석으로 가는 것을 당연하게 여긴다. 내가 국장급 자리를 맡으니까 급수가 낮다고 일부 교수가 고개를 갸우뚱하더라.” 그의 국장급 지원은 용기 있는 선택이다. 강병구는 “미국에선 교수가 장관에 기용되기 전에 대부분 정부 국장, 과장을 거친다. 학문적 성과를 정책에 접목시키려면 실무 국장부터 맡아야 효율적”이라고 했다. 교수 사회의 거품은 빠져야 한다. 장관·수석은 실험하고 경험하는 자리가 아니다. 정책 운용의 실적을 내야 한다.

교수 사회는 인재를 충원한다. 전문성을 생산한다. 하지만 폴리페서는 그런 긍정적 풍토를 어지럽힌다. 폴리페서의 특혜와 줄서기 때문이다. 특혜는 다른 쪽에 피해를 준다. 학생들의 수업권은 침해받는다. 더불어민주당 문재인 전 대표는 적폐 청산을 강조한다. 그런 특혜와 줄서기는 적폐다.

박보균 칼럼니스트·대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