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리피리 <한용운 시·황유엽 그림>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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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5면

보리피리 불며, 본언덕
고향 그리워
필닐리리,//
보리피리 불며, 꽃 청산
어린때 그리워
필닐리리,//
보리피리 불며, 인환의 거리
인간사 그리워
필닐니리,//
보리피리 불며, 방랑의 기산하눈물의 언덕을
필닐니리.
한용운(본명 태영·1919∼75)은 나병으로 일생을 방랑자처럼 떠돌면서 시를 썼다. 그는 자신의 저주받은 삶과 고통스런 육체때문에 처절한 절망을 많이 노래했다. 그러나 그렇기 때문에 그의 시에는 역설적으로 삶에 대한 뜨거운 애정과 훼손되지 않은 그리운 세계가 주된 테마를 이루곤 했다.
이 시는 바로 이같은 그의 절망과 그리움을 어린시절 고향의 꽃 청산 위에 누여놓고 있다. 천형을 상징하듯 검고 거칠고 굵은 선 속에서도 한없이 따뜻한 눈물의 서정을 느끼게 하는 그림 속에서 보리피리 소리를 따라 새들이 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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