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행기이륙후 비로소여유 "출장 갔다온 기분" 농담도|도서기관, 서울행 KAL기상 이모저모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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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4면

【KE906기상에서=홍성호·이민우특파원】21개월에 걸친 기약없는 억류의 악몽과 가족상봉의기대가 엇갈리는 가운데 도재승서기관은 잠을 이루지 못했다.
3일하오4시51분 꿈에 그리던 고국당 김포공항도착을 앞두고 2일하오9시33분(한국시간) 서독프랑크푸르트공항을 떠난 KE906점보기에 탑승한 도서기관은 기착지 앵커리지까지의 9시간동안 극심한 피로감속에서도 만감이 교차하는듯 거의 잠을 이루지 못한채 몸을 뒤척이기만했고 여전히 말수는 적었다.
2일하오3시 석방후 첫기착지인 스위스 제네바에서 프랑크푸르트에 도착한 도서기관은 현지 한국총영사관(총영사 정창)의 안내로 시내로 나가 휴식을 취한뒤 같은날 하오8시30분 일반승객과 똑같은 출국및 탑승수속을 밟아 대한항공 점보기의 프레스티지클래스(준1등)12-B좌석에 앉았으나 여러승객들의 수속지연으로 이륙은 약1시간이나 늦어졌다.
정원3백78석중 승객2백80명이 탑승한 대한항공여객기가 이륙한 직후 현지시각으로 점심시간이되자 도서기관은 비로소 여유를 되찾은듯 상의를벗어 스튜어디스에게 맡기고는 동행하는 제네바주재 한국대표부 공관원이 『잠을 푹 자두어야한다』면서 권하는 백포도주를 연거푸 4잔이나 마셔가면서 식사를 했다.
기내에서는 사무장 권문언씨(46)와 스튜어디스 오승희양(23)이 줄곧 도서기관의 시중을 들었다.
이들은 서울본사로부터 특별연락을 받았다며 도서기관이 안락하게 여행할수 있도록 만반의 준비를 갖추어 놓았다고 했다.
승무원 오양이 시중을들면서 『댁으로 가시게되어 기쁘시겠어요. 가족 보고싶으시지요』라고 말을건네자 도서기관은 『네,고맙습니다』라고 대답했다.
그는 『식욕이 매우 좋아보인다』는 말에 『64㎏이었던 체중이 55㎏으로줄었는데 잘 먹어야지요. 서울서 보내준 좋은약과 잣죽같은 유동식부터 시작해 소화가 잘 되는편이다』라며 이날 점심으로 나온 기내식중 빵1개를 빼고는 쇠고기 안심스테이크, 야채샐러드, 감자·당근·완두콩 삶은 것, 과일파이등을 말끔히먹었고 코피도 즐기는 듯 2잔씩이나 마셨다.
그는 기내에서 우연히 파리 유네스코 총회에 참석후 귀국하는 외무부의 오랜 동료인 한재철과장을 만나자 좌석에서 벌떡 일어나 『언젠가 꿈에 한과장을 보았는데 오늘 여기에서 만나게 되다니…』라며 반갑게 인사를 나누었다.
도서기관은 외무부의 동료들이나 안면이 있는 사람들과는 부드러운 표정으로 이야기를 곧잘 했으나 취재진이나 승객등 낯선사람이 접근하면 금방 표정이 굳어져 잘 모르는 사람들에 대한 일종의 공포·경계심같은 것이 아직도 남아있는 것 같았다.
도서기관이 무엇인가 상념에 잡힌듯 무료하게 앉아있을때마다 기자들이 접근, 감금생활과 석방경위등에 대해 집요하게 물었으나 그는 『그저 어려웠던 환경정도로만 알고 더 이상은 묻지말아달라』고 답변을 계속 피했다.
도서기관은 항공기가 안정고도를 잡자 자신의 기사가 보도된 31일자 국내신문들을 자세히 읽고는 리시버로 음악을 들으며 잠을 청했다.
그러나 손을 가끔 움직이고 때로는 눈을 다시떠 어둠이 깔리는 창밖을 물끄러미 응시하면서 상념에 잠기는등 잠을 제대로 이루지 못했다.
도서기관은 3일 상오8시 앵커리지 공항에서 잠시 비행기를 내려 휴식을 취하는 한편 현지 공관원들의 환영과 위로를 받았다.
도서기관이 4번게이트를 나서자 강석홍총영사등 앵커리지주재 공관원들은 『수고했어. 고생했다』고 마중했고, 도서기관은 『출장 갔다온 기분』이라고 농담까지하며 환한미소를 지어보였다.
도서기관은 이어 현지공관원들과 동승한 기자단등 20여명과 함께 공항귀빈실에 마련된 간단한 환영연에 참석.
도서기관은 이어 기자들이 『서울에 거의 다온셈인데 소감이 어떠냐』고 묻자, 『전두환대통령의 배려에 감사하며 제네바도착후에 대사님을 비롯, 공관직원들이 각별히 세심한 주의를 기울여 극진한 대우를 해주어 고맙게 생각하고 있다.
그리고 기자 여러분들의 관심표명에도 감사하고 있다. 이렇게 한분 두분 한국인을 만나고 가족의 근황에 대해 자세히 듣게되고 그리고 신문에 난것등을 보여주기도해 고맙다. 저로서는 출장갔다온 기분인데 그러나 착각과 현실은 너무나 큰 차이가 있는 것같다. 정상적인 생각이나 빠른 건강회복도 국민 여러분의 성원과 관심덕택이라고 생각한다』고 대답. 도서기관은 21개월의 강제구금의 충격에서 아직 말끔히 벗어나지 못하고 고국에 돌아간다는 생각에 몹시 흥분한 듯 말을 떠듬거렸다.
도서기관은 또 『가장 괴로왔던 순간은 언제였느냐』는 질문에 『여러번 생각했는데 안하는 것이 좋겠다 (말을 하지않겠다는뜻인듯) 남까지 피해를 줄것 같으니 더이상 물어주지 말아주십시오』라고 요청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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