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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밑 빠진 독’ 대우조선에 또 5조 8000억 지원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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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01면

임종룡 금융위원장(오른쪽)과 이동걸 산업은행장이 23일 열린 산업경쟁력강화 관계장관회의에서 인사를 나누고 있다. 정부와 채권단은 이날 대우조선해양에 2조9000억원의 신규 자금을 추가로 지원키로 했다. [뉴시스]

임종룡 금융위원장(오른쪽)과 이동걸 산업은행장이 23일 열린 산업경쟁력강화 관계장관회의에서 인사를 나누고 있다. 정부와 채권단은 이날 대우조선해양에 2조9000억원의 신규 자금을 추가로 지원키로 했다. [뉴시스]

“추가 지원은 없다”던 정부가 대우조선해양에 2조9000억원을 신규로 지원하기로 했다. 채권은행과 회사채 투자자의 50% 이상 출자전환을 통해 2조9000억원의 자본 확충도 이뤄진다. 금융위원회와 산업은행은 23일 이러한 내용을 담은 대우조선 유동성 지원 방안을 확정 발표했다. 신규 자금 2조9000억원은 산은과 수출입은행이 절반씩 분담한다. 2015년 10월 서별관회의를 거쳐 산은·수은이 대우조선에 4조2000억원을 투입한 지 1년5개월 만이다.

“도산 땐 경제 손실 59조원” #정부, 이번엔 살리겠다지만 #1조대 회사채 채무조정 난관 #합의 실패 땐 사실상 법정관리 #정상화까지는 걸림돌 많아 #노조 등 고통분담 전제돼야

임종룡 금융위원장은 이날 브리핑에서 삼정회계법인의 실사보고서를 인용해 “대우조선이 도산한다면 국가 경제적 파급효과가 최대 59조원에 달한다”고 말했다. 건조 중인 배 114척 대부분이 계약 취소로 고철 처리되는 최악의 상황을 가정했다. 임 위원장은 “숫자를 부풀린 공포 마케팅이 아니라 노출된 위험을 계산한 것”이라며 “대우조선 정상화가 국민 경제에 바람직하다”고 지원의 당위성을 강조했다.

국민경제론. 정부와 채권단이 대우조선에 신규 자금 2조9000억원을 지원하면서 내세운 핵심 논리다. 다른 말로 표현하면 결국 대마불사(大馬不死)다. 지난해 한진해운 법정관리행으로 깨진 듯했던 대마불사의 신화가 1년도 채 안 돼 대우조선 구조조정을 통해 되살아났다.

지난해 말까지도 ‘추가 지원은 없다’던 정부와 채권단은 몇 달 새 말을 바꿨다. 임 위원장은 이날 “분명히 말을 바꿨습니다. 그 점 송구스럽습니다”고 인정했다. “추가 지원 가능성을 내비치면 대우조선의 자구 노력이 느슨해질까봐 일부러 그랬다”는 해명을 덧붙였다. 대우조선은 약속했던 5조3000억원의 자구 계획 중 1조8000억원을 이행하는 데 그쳤다. ‘선 자구노력, 후 지원’의 원칙을 깨는 퍼주기라는 비판이 나온다. 오정근 건국대 금융IT학과 특임교수는 “대우조선의 경쟁력 있는 부분만 살리는 과감한 구조조정이 이뤄져야 하는데, 전략 없이 돈만 쏟아붓고 있다”며 “밑 빠진 독에 물 붓기”라고 비판했다.

지원을 결정한 시점을 두고도 논란이 적지 않다. 대선이 한 달 반밖에 남지 않은 시점이다. 대우조선 회사채 중 4400억원은 만기가 다음달 21일 돌아온다. 2015년 10월 결정된 지원금 중 남은 금액은 3800억원. 따라서 여기에 약간의 자금만 추가 지원해도 일단 4월 위기는 넘길 수 있다. 하지만 정부과 채권단은 대우조선이 2021년까지 버틸 수 있도록 하는 지원 계획을 짰다. 강성진 고려대 경제학과 교수는 “지금은 정치권 누구도 대우조선을 망하게 하자고 할 수 없는 대선 기간”이라며 “금융위가 지금 대우조선 살리기에 나섰다는 자체가 정치적 행보”라고 지적했다. 대선주자인 문재인 전 더불어민주당 대표는 이날 “조선업은 훗날 다시 한국 경제의 효자산업이 될 것”이라며 정부의 대우조선 지원안에 힘을 실어주는 발언을 했다.

자료:금융위원회

자료:금융위원회

금융위와 산은은 이해관계자 모두의 손실 부담을 전제로 자금을 지원한다는 점을 강조한다. ‘밑 빠진 독’의 밑을 틀어막은 뒤에 물을 붓겠다는 뜻이다. 채권자들은 채무 재조정에, 대우조선 노조는 인건비 25% 감축에 합의하는 게 자금 지원의 조건이다. 따라서 정부가 짠 구조조정의 틀대로 가려면 큰 산을 하나 넘어야 한다. 다음달 17~18일 열릴 사채권자 집회에서 총 1조3500억원의 채권을 보유한 회사채 투자자가 50% 출자전환과 잔여분의 만기 연장에 동의해줘야 한다. 사채권자 중 큰손은 국민연금과 우정사업본부. 이 중 ‘최순실 게이트’ 논란의 중심에 있었던 국민연금은 정부의 편을 들어서 채무 재조정에 쉽게 동의하기가 쉽지 않은 상황이다. 국민연금 관계자는 “채무 재조정은 정부 입김이 아니라 연금 가입자의 이익을 최대화하는 방향에서 검토할 것”이라고 말했다. 개인 투자자의 반발도 적지 않다. 4월 21일 만기인 ‘대우조선해양6-1’ 채권 보유자들은 “만기 상환을 얼마 안 남겨두고 출자전환과 만기 상환 유예라니 부당하다”고 아우성이다.

금융위는 자율적 합의에 실패하면 사실상 법정관리인 프리패키지드 플랜(P플랜)에 들어가겠다며 엄포를 놓고 있다. 채권단의 신규 자금 지원을 전제로 3개월 정도의 초단기 법정관리다. 전문가들은 정부의 ‘벼랑 끝’ 전술이 결국 통할 거라고 내다본다. 정부는 이번 구조조정으로 대우조선의 재무·수익구조가 개선되면 주인 찾기에 나설 계획이다. 내년에 조선 업황이 살아난다면 인수합병(M&A)을 추진키로 했다. 사실상 현대중공업이나 삼성중공업이 대우조선을 통째로 인수하는 방안을 염두에두고 있다. 임 위원장은 “차기 정부가 검증해서 계획을 수립해야 할 일이긴 하지만 국내 조선산업을 빅3에서 빅2 체제로 전환하는 것을 검토해야 한다고 본다”고 언급했다.

한애란·고란 기자 aeyani@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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