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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분수대

대한국인 안중근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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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1면

박정호 기자 중앙일보 수석논설위원
박정호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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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 남산 안중근의사기념관에 들어서면 설치미술가 강익중의 ‘대한국인 안중근’이 가장 먼저 보인다. 가로 4m, 세로 5m 대작이다. 안 의사가 남긴 말 80자를 작가가 한 자 한 자 그려 넣었다. 우리 땅 푸른 산을 배경으로 지구촌 평화를 바라는 안 의사의 염원을 담았다. ‘대한국인(大韓國人)’은 안 의사의 유묵 끝에 단골로 등장하는 서명이다. 세상을 끌어안는 통 큰 사내의 기개가 느껴진다.

기념관 외벽에 현수막이 걸려 있다. 오는 26일 일요일, 안 의사 순국 107주기 추모식을 알리고 있다. ‘우리 국권이 회복되거든 고국으로 반장(返葬·고향으로 옮겨 장례를 치름)해다오’라는 유서가 눈에 띈다. 안 의사가 묻힌 곳조차 아직 모르는 후손들의 책임감을 일깨운다. 중국 뤼순(旅順) 감옥 교수대에 오른 당일에도 “나의 거사는 오직 동양평화를 위한 것”이라며 의연해했던 안 의사다.

안 의사는 중국에서도 존경받았다. 1909년 10월 26일 만주 하얼빈역에서 일본통감 이토 히로부미(伊藤博文)를 무너뜨린 그의 총알 세 발은 일제에 신음하던 중국인에게도 큰 희망이 됐다. 중국 혁명지도자 쑨원(孫文)은 “공(功)은 삼한을 덮고 이름은 만국에 떨치나니 살아 백 살은 없는 건데 죽어 천 년을 가오리다”라며 안 의사를 기렸다. 남산기념관 2층 추모실에도 쑨원의 글귀가 촛불과 함께 빛나고 있다.

안 의사는 누구보다 평화론자였다. 단순한 지사나 협객을 넘어섰다. 사형 선고를 받고 옥중에서 쓴 『동양평화론』이 대표적이다. 끝내 미완성으로 남았지만 안 의사는 한·중·일 3국이 뤼순을 영세중립지대로 만들자고 했다. 3국 공동은행 설립, 공동화폐 발행, 공동군대 편성 등도 구상했다. 고고도미사일방어(THAAD·사드) 체계 배치 문제로 한·중 관계가 극도로 얼어붙은 오늘임에도 그가 꿈꾸었던 평화마저 부정할 순 없을 터다.

오는 26일 뤼순감옥에서도 안 의사 추모식이 진행된다. 지난해 10월 개·보수 공사로 문을 닫았던 뤼순박물관도 다음달 말 재개관한다. 또 지난 19일 하얼빈 조선민족예술관에선 안중근기념관 재개관식이 열렸다. 2014년 세운 하얼빈역 기념관이 역 증개축 공사로 지난 14일 닫았으나 휴관 닷새 만에 장소를 옮겨 다시 문을 열게 됐다. 안 의사를 중시하는 중국의 태도를 엿볼 수 있다. ‘시과실기 추회하급(時過失機 追悔何及, 때를 지나 기회를 놓치면 후회한 듯 무엇하리)’, 안 의사의 당부다. 오늘날 긴장의 동아시아에 큰 울림을 준다.

박정호 논설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