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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설] 중국 의존 벗어나야 한국 경제 미래 있다

중앙선데이

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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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23호 02면

사설

주말이던 어제 명동·동대문 등 서울 도심의 쇼핑가는 썰렁했다. 지난 15일 중국 정부가 ‘한국 단체관광상품 판매 금지령’을 내린 여파가 몰아쳤기 때문이다. 제주도 등 중국 특수를 누려왔던 지방도 마찬가지다. 인천국제공항 입국장이 한산해졌고, 항공사들은 중국 노선을 크게 줄이고 있다. 중국에서 제주·부산으로 오던 크루즈선 182편이 취소됐다. 이대로 가면 연말까지 36만 명의 발길이 끊기게 될 판이다.

전체 외국인 관광객(1700만 명)의 절반에 이르던 중국 관광객이 급감한 후유증을 관광버스와 택시 기사들까지 체감하고 있다. 고고도미사일방어(THAAD·사드) 체계 기지 부지를 제공한 롯데그룹에 대한 압박도 끝없이 이어지고 있다. 15일 롯데마트 베이징점 영업정지로 중국 내 99개 점포 중 57개가 문을 닫았다.

중국의 경제보복은 쉽게 수그러들지 않을 것이다. 중화 패권주의의 거친 행태는 비난받아 마땅하다. 하지만 대응할 카드가 딱히 없는 것도 현실이다. 미국처럼 보복성 관세나 벌금을 물리기는 쉽지 않다. 세계무역기구(WTO) 제소도 실익을 기대하기 어렵다. WTO 규정을 갖다 대기 어렵게 중국이 교묘한 수단을 쓰고 있어서다. 무엇보다 제소가 선전포고로 받아들여져 양국 경제관계를 더욱 악화시킬 가능성이 크다.

올해로 한·중 수교는 25년을 맞았다. 양국 경제는 그동안 서로를 발판으로 성장의 선순환을 이뤄왔다. 한국 기업은 중국 정부의 지원과 저임금 노동력을 활용해 중국을 제3국 수출의 전진기지로 삼아왔다. 근래에는 지갑이 두둑해진 유커(遊客?중국인 관광객)가 쏟아져 들어와 빈약한 내수를 벌충해줬다. 한국 기업의 투자와 중간재·부품 공급은 중국의 수출 확대와 경제성장 정책을 뒷받침했다.

이러면서 양국 관계는 단순 우호협력에서 전면적 협력동반자, 전략적 협력동반자로 꾸준히 격상됐다. 한국에 중국은 최대 교역국, 중국 입장에서 한국은 넷째 교역국이 되기에 이르렀다.

하지만 사드가 드러낸 그림자도 그만큼 커져왔다. 중국 의존도의 과도한 심화다. 한국의 전체 수출입에서 중국이 차지하는 비중은 4분에 1에 가깝다. 12%인 미국의 두 배 이상이다. 교역에서의 대중국 의존도가 그만큼 높다. 무역흑자의 주된 원천도 중국이다. 한 해 많으면 600억 달러, 적으면 300억 달러다. 지난해에도 374억 달러 흑자였다. 1992년 수교 이래 한국의 대중 무역흑자는 520조원으로 대중 교역 최대 흑자국이다. 중국이 “누구 덕에 먹고사느냐”고 큰소리를 칠 수밖에 없는 구조다.

이에 대한 경고의 목소리가 없었던 것은 아니다. 중국이 고도성장을 끝내고 6% 중반의 중속성장을 하면서 ‘중국 효과’를 더 이상 누리기 힘드니 대비해야 한다는 지적이 잇따랐다. 중국 증시가 출렁일 때마다 ‘중국이 기침을 하면 한국은 독감에 걸린다’는 아우성이 나왔다. 중국 산업의 경쟁력이 높아지고 양국의 기술 격차가 급속히 줄어들어 대중 수출의 대부분을 차지하는 중간재와 부품 산업의 미래가 어둡다는 걱정도 제기됐다.

하지만 정부는 쉽고 달콤한 당장의 유혹에 안주해왔다. 수출 다변화는 말뿐이었다. 심지어 내수 정책에서도 중국발 훈풍을 당연시하며 의존도를 높여왔다. 중국인 관광객을 겨냥한 면세점 특허를 크게 늘리고 입국 절차를 간소화하고 중국인 관광객의 대규모 치맥파티를 대대적으로 홍보했다. “제주도가 중국 섬이 됐다”는 말이 나올 정도였다. 이러다 사드 복병을 만났고, 마땅한 대응책을 찾지 못해 허둥대고 있으니 정부가 반성할 점이 적지 않다.

이젠 좋든 싫든 중국 변수를 재평가할 때가 됐다. 중국은 어차피 ‘세계의 공장’에서 ‘세계의 시장’으로 변모하고 있다. 대체할 수출기지와 시장을 찾아 중국 의존도를 낮춰야 한다.

사드 보복이 관광·유통에 집중되고 있는 점도 교훈을 준다. 중국으로서도 반도체 등 핵심 부품과 중간재까지 범위를 넓히긴 쉽지 않다. 자국 산업과 수출에 끼칠 영향이 너무 크기 때문이다. 한·중 관계의 훼손을 막는 최선의 방책이 산업경쟁력 유지라는 방증이다.

우리가 600조원에 가까운 누적 적자를 보면서도 수십 년간 일본과의 경제 관계를 유지·발전시켜온 건 일본의 산업 경쟁력 때문이다. 정치·외교적 불확실성을 이겨내는 힘은 결국 산업과 제품 경쟁력에서 나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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