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사설

나라 맡겠다며 박근혜 동정심에 의존하나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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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6면

자유한국당의 어제 예비경선전에선 박근혜 전 대통령에 대한 동정론이 많았다. 주자들의 발언 중엔 “황망하고 안타까운 대통령 탄핵” “고향인 경북에서 모시고 싶다” “대통령을 지키겠다”는 다짐들이 있었다. 장외에선 비슷한 얘기가 공방으로 번졌다. ‘박근혜 호위무사’ 김진태 의원은 “홍준표 경남지사가 박 전 대통령을 머릿속에서 지우고 우파가 총집결해야 한다고 했다는데, 홍 지사는 머릿속에 지우개가 있어 가능한지 모르지만 그게 지운다고 지워지느냐”고 외쳤다.

한국당은 집권 여당이었다. 박 전 대통령 파면에 책임이 커 소속 의원이라면 폐족을 자처해도 모자랄 판이다. 그럼에도 무려 9명의 후보가 나섰는데 대부분 0%대 지지율 후보여서 ‘대선을 희화화한다’는 빈축이 나오는 마당이다. 그런 도토리 키재기의 후보들이 모여 박근혜 동정표나 자극하면서 나라 이끌 표를 달라고 주문하니 딱하고 한심한 일이다. ‘친박 좀비정당’이란 얘기가 괜히 나온 게 아니다.

문제는 바른정당마저 대안의 보수 정당으로 자리매김하지 못하고 있어 ‘보수 공백’ 사태가 현실화되고 있다는 점이다. 보수 유권자는 자신을 대변할 정당과 후보를 찾지 못한 채 길을 잃었다. 황교안 대통령 권한대행이 잡아 뒀던 보수 표는 더불어민주당의 안희정 충남지사나 국민의당의 안철수 의원에게 관심을 보인다는 게 여론조사 결과다. 보수층이 대거 투표를 포기할지 모른다는 우려도 커지고 있다. 민주주의는 보수와 진보의 균형과 견제가 생명이다. 어느 한쪽의 일방적 독주는 재앙이다.

보수가 이 지경에 이른 데는 한국당의 잘못이 크다. 보수 궤멸의 책임은 얼버무리고 재건의 비전은 제시하지 못하고 있어서다. 그저 당장의 연명을 위해 간판만 바꿔 단 채 과거에 갇혀 있으니 보수 유권자가 쇄신의 진정성을 느낄 수 없는 것이다. 보수는 더 늦기 전에 과거를 씻고 미래의 비전을 보여 주는 참된 보수로 재기의 돌파구를 만들어야 한다. 반성할 과거를 끊어 내지 못하고 기득권 유지에 급급한 보수에게 미래는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