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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 금리 인상 … 한은도 금리 깜박이등 켜야 한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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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0면

미국 연방준비제도(Fed)의 어제 기준금리 인상으로 한국 경제의 고민이 더욱 깊어졌다. 나라 안팎의 정치·경제적 혼란과 악재가 동시다발적으로 터지는 상황이기 때문이다. 사상 첫 대통령 파면으로 과도정부는 50여 일 만에 새 대통령을 뽑아야 하는 부담을 안았다. 보호무역과 환율조작국 지정, 사드 보복 등을 놓고 우리는 미국·중국·일본 주변 강대국 틈바구니에서 이들과 크고 작은 갈등을 앓고 있다. 한국 경제의 성장동력이 꺼져 가는 가운데 경기침체와 내수부진의 골은 깊어지고 있다

미 Fed식 금리인상 로드맵 필요 #경제주체 운신 위한 미래 가늠자 #안정된 경제 다음 정권에 넘겨야

정치 리더십 부재의 시기엔 경제 사령탑이라도 온전해 다음 정부에 안정된 경제를 넘겨줘야 한다. 인수위원회도 없이 탄생하는 새 정권에 취약한 경제 기반을 넘기면 초반부터 고전할 것이 뻔하다.

트럼프 미 정부 출범 후 처음인 이번 기준금리 인상은 우리 경제엔 큰 악재다. 한·미 간 금리 격차가 더욱 좁혀짐으로써(0.25~0.5%포인트) 8개월째 1.25%에 머물러 있는 우리나라 기준금리에 인상 압력으로 작용하고 있다. 더욱이 Fed가 올해 기준금리를 적어도 두 차례 더 올리는 로드맵이 현실화할 경우 연말 미국 기준금리가 1.25~1.5%에 이르면서 10년 만에 한·미 간 금리 역전 현상이 벌어질 수 있다. 과거 2000년과 2006년 전후 두 차례 미 기준금리가 한국보다 높은 적이 있었는데 자본 유출 등으로 한국 경제가 홍역을 치렀다. 그나마 긍정 요인을 찾자면 금리 인상 속도를 좀 조절하겠다는 메시지 정도가 시장의 불확실성을 줄인 점이다.

고민은 정책당국의 대응 수단이 마땅치 않다는 점이다. 미 금리 인상으로 인한 자본 유출이나 환율·물가 리스크를 줄이려면 우리도 따라서 금리를 올리는 것이 맞지만 성장률이나 실업률, 내수침체를 감안하면 오히려 금리를 내려야 할 판이다. 특히 1300조원을 넘어선 가계부채의 규모와 가파른 증가 속도는 우리 경제의 폭발성 뇌관이다. 기준금리를 올리면 200만 한계 취약가구가 이자 폭탄을 맞게 되고, 내리면 가계부채 조절 기능이 약해지는 진퇴양난의 상황이다.

한국은행은 어제 “미 통화정책에 기계적으로 대응하지 않겠다”는 종전 입장을 되풀이했다. 금리 동결 등 그간의 완화적 통화정책 기조를 당분간 유지하려는 뜻으로 읽힌다. 하지만 미국이 거듭 기준금리를 올리면 가만히 있긴 쉽지 않을 것이다. 이주열 한은 총재가 임기 초 시사한 ‘포워드 가이던스(선제적 신호)’도 다시 한번 들여다볼 필요가 있다. 시장과의 교감을 강화함으로써 금리정책의 방향을 시장 참여자들로 하여금 어느 정도 짐작게 하는 방식이다.

중앙은행을 포함해 정부의 금융 리스크 관리 역량을 총동원할 때다. Fed와 유럽중앙은행(ECB) 등 주요국 중앙은행이 돈줄 죄기에 나섰다. 저금리 시대가 막을 내릴 조짐이 완연하다. 우리 통화당국도 미리 시장에 깜빡이등을 켜야 할 것이다. 어느 때보다 타이밍에 맞는 유연한 통화정책이 중요하다. 경기 경착륙으로 경제의 판 자체가 흔들릴 조짐이 보이면 금융정책 대신 추경 등 과감한 재정정책도 동원할 필요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