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법개혁 요구 학회 활동 위축 의혹, 임종헌 법원행정처 차장 사의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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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법개혁을 요구하는 판사들의 법원 내 학회 활동을 위축시키려 했다는 의혹을 받아 온 임종헌(57) 법원행정처 차장이 17일 사의를 표명했다.

법관 재임용 신청 철회로 19일 법원 떠나게 돼

임 차장은 이날 판사들에게 “이번 주에 법관 재임용 신청의사를 철회했다”며 “오는 19일은 제가 청운의 꿈을 품고 법관의 길에 들어선 지 꼭 30년이 되는 날”이라고 시작하는 글을 보냈다.
그는 “최근 언론보도 이후 저는 말로 표현할 수 없는 참으로 참담한 시간을 보냈다. 제 평생 가장 큰 불신과 비난을 받으면서, 스스로를 해명하고 강변하고 싶은 억울하고 괴로운 심정이면서도 진심을 전달하지 못하고 또다른 의혹과 불신을 야기할지 모른다는 우려와 걱정에 충분한 말을 할 수 없었다”고 설명했다. 또 “퇴임의사와 무관하게 이번 일과 관련한 조사에 성실히 임할 것이며, 공정하고 객관적인 사실조사에 의한 결과를 수용하고 책임질 일이 있다면 그에 대한 책임을 지겠다”고 전했다.

임 차장의 사임을 불러온 이번 논란은 지난달 9일 시작됐다. 400여 명의 판사가 참여하고 있는 법원 내 최대 학술단체인 ‘국제인권법연구회’가 전국 법관을 상대로 ‘사법독립과 법관 인사제도에 관한 설문조사’를 실시하면서다. 대법원장의 인사권에 대한 내용도 포함된 조사 결과는 오는 25일 학술행사에서 발표될 예정이다.
법원행정처가 설문조사 실시가 알려진 지난달 13일 법원 내부 전산망에 “판사들이 중복 가입한 전문 분야 연구회를 탈퇴해야 한다”는 글을 올리면서 논란이 시작됐다. 소속 연구회를 1개만 남기라는 취지의 지시에 국제인권법연구회 소속 일부 판사가 반발했다. 이런 가운데 국제인권법연구회 소속인 이모 판사가 임 차장으로부터 부당한 지시를 받았다는 의혹도 불거졌다. 이 판사가 법원행정처 심의관으로 발령이 난 뒤 임 차장으로부터 학술행사를 축소하라는 지시를 받았고 이 판사가 이에 반발하자 원래 있던 법원으로 돌아갔다는 내용이었다. 연구회 소속 판사들 사이에서는 법원행정처 차원의 압박이 있었다는 말이 돌았다.

이에 대해 임 차장은 “결코 부당한 지시를 한 적이 없다”는 입장이다. 고영한 법원행정처장도 지난 7일 법원 내부 통신망에 “(대법원은) 해당 판사에게 연구회 활동과 관련해 어떠한 지시를 한 적이 없다”는 공식 입장을 냈다. 이 판사도 이튿날 “저의 인사 발령 등에 대한 언론 보도는 모두 저의 의사와 무관하게 보도된 것”이라며 “제가 경험한 부분에 대하여는 어떤 방식으로 말씀드리는 것이 옳은지 고심하고 있다”는 글을 올렸다. 하지만 의혹이 해소되지 않은 채 논란이 커졌고 이 판사는 이후 어떤 입장도 내놓지 않고 있다.

대법원은 이인복 전 대법관에게 진상조사에 대한 권한을 일임했고, 임 차장은 지난 13일 차장 업무에서 배제된 채 조사를 기다리고 있다. 이 전 대법관은 전국 판사들에게 진상조사에 참여할 인사들을 추천해달라고 공지했다.

문병주 기자 moon.byungjoo@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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