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말도 많이 잊은 것 같다"|2년동안 독방서 하루한번배식|석방된사실 제네바와서야 실감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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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3면

【제네바=홍성호 특파원】도재승서기관은 3일 귀국에앞서 1,2일을 스위스 제네바에서 휴식을 취했으며 1일하오 3시20분(현지시간)에는 파리주재 특파원들과 제네바주재 한국대표부 관저에서 석방후 첫 기자회견을 가졌다.
약20분간 진행된 이날 기자회견에서 도서기관은 짙은 감색 싱글 양복에 붉은 색 줄무늬가 있는 넥타이 차림의 말쑥한 모습을 보였으나 기력이 쇠약해져 말을 제대로 잇지 못하는등 겹친 피로의 기색을 감추지 못했다. 이상옥대사와 정경일공사등 한국대표부 공관원들이 대부분 참석한 회견에는 도서기관과 석방 첫밤을 함께지낸 박동선2등서기관이 도서기관의 하루를 설명해주기도했다.
도서기관의 귀국항로는 신변안전문제등으로 공표되지는 않았으나 이대사·주불특파원단이 일부구간을 동승할 예정이다.
다음은 기자회견에서 도서기관과의 1문1답 내용.
-건강은 어떤가.
▲크게 아픈 데는 없다. 그러나 기운이 쇠약해져 체력이 많이 준것 같다. 체중도 많이 빠진것 같다.
-귀국하는 소감은.
▲(잠시 고개를 숙인채 생각에 잠기는듯 한뒤)전두환대통령각하의 특별한 배려에 우선 감사를 드리고 싶다. 위로전문까지 보내주신 것에 감격했다. 가장 기쁜 것은 돌아가 가족들을 만나는 일이다. 나의석방을 위해 애써주신 외무부장관·외무부·전재외공관 여러분께도 고마움을 전하고싶다. 국민들의 성원과 염려로 내가 풀려날수 있었다.
-억류생활동안 어떻게 지냈나.
▲그런 것은 생각해보고 나중에 말하겠다. 지금은 생각이 정리되지않은 상태다. 배고프지는 않았으나 다른 여러가지 일들을 차차 생각해서 말할수 있는 기회를 갖겠다.
-누가 가장 먼저 보고싶은가.
▲부모님이다. 형제와 가족들도 그립다.
-머리도 짧게 깎았고 양복도 말끔한데….
▲옷은 서울에서 입던 것을 인편에 보내왔다. 머리는 석방된후 베이루트에서 깎았다.
-감금생활중 음식은 어떻게 해결했나.
▲하루 한끼씩 식사를 넣어주는 것으로 날짜 지나가는걸 알아차릴수 있었던 때도 있었다.
-귀국하여 가장 먼저 하고싶은 일이 있다면.
▲내가 평소에 말을 잘하는편이 아닌데 어떻게 대답해야할지 모르겠다. (그러면서 도서기관은 질문이 무엇이었는지를 다시 물었다) 아까도 이야기했지만 기운이 자꾸만 빠져 이처럼 긴장된 상태로 오래 버틸 수가 없다. (도서기관의 말씨는 차분하고 또렷했으나 힘이 찬듯 얼굴이 불그스름히 변해갔다)이제 그만하고 일어서야겠다. 이해해달라.
-21개월의 감금생활 동안 이야기할 상대라도 있었나.
▲우리말을 한마디도 못하고지내 많이 잊어버린것 같다.
-가장 고통스러웠던 일은 무엇이었나.
▲여러분도 상상할수 있다고 보는데 사람이 아무 것도 안하고 24시간, 48시간, 1년, 2년을 보낸다는 것이 큰 고통이었다.
-석방소식은 언제, 어떻게 들었나.
▲사전에는 몰랐다. 제네바공항에 내려 우리 공관원들로부터 영접을 받을 때야 내가 석방된사실이 실감되었고 비로소 안심할수 있었다. 그밖에는 잘 모르겠다. 더이상 말하고 싶지 않으니 제발 그 정도로 그쳐달라.
-그토록 오랜 역경을 어떤 마음가짐으로 버틸수 있었나. 운동을 하거나 기도하는등 소일거리는 허용되었나.
▲교회에는 나가지 않았고 담배도 피우지 않아 할일이 거의 없는 상태로 지냈다. 가슴이 두근거리니 다음에 또 이야기하자.
도서기관은 이상의 대화를 나누면서 긴장을 누그러뜨리기위해 던진 우스개 질문에는 가벼운 미소를 지어보이기도 했으나 전체적인 표정에는 아직도 일말의 불안과 감금생활의 악몽이 도사려있는듯 굳어진 자세로 일관했고 자리를 뜨려고 몇번이나 일어섰다 앉았다했다.
그는 마지막으로 석방사실을 국민들에게 알리기 위해 사인해달라는 부탁을 받고 『몇년만에 써보는 한글이어서 글씨가 매우 서투르다. 전에는 곧잘 썼는데…』라며 자신의 필체를 한동안 내려다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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