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법개혁 요구 판사들 압박 의혹’ 법원행정처 차장 업무 배제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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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2면

임종헌(57) 법원행정처 차장이 사법개혁을 요구하는 판사들의 법원 내 학회 활동을 위축시키려 했다는 의혹과 관련해 13일 업무에서 배제됐다. 법원행정처 차장은 법원행정사무를 총괄한다.

학회활동 방해와 부당 인사 논란 #대법, 이인복 전 대법관에게 #진상 규명 조사 권한 위임

이 조치는 최근에 제기된 의혹 진상 규명을 위해 권한을 위임받은 이인복 전 대법관(사법연수원 석좌교수)의 요청을 양승태 대법원장이 받아들여 이뤄졌다. 이 전 대법관은 이날 전국 법관들에게 “ 한 점 의혹 없이 이번 사태의 경위를 밝히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하고, 모든 법관의 바람도 이와 다르지 않다고 생각한다”고 밝혔다. 그러면서 “이를 위한 전제로 아직 사실관계의 규명이 이루어지기 전이지만 대법원장께 논란의 중심에 있는 법원행정처 차장에 대한 적절한 조치를 건의드렸다”고 전했다. 임 차장은 진상조사가 끝날 때까지 사법 연구와 관련한 일을 맡게 된다. 대법원 관계자는 “구체적으로 어떤 일을 맡을지는 모르지만 법원행정처 사무와 관련된 일은 하지 않을 것”이라고 설명했다.

이 전 대법관은 이와 더불어 공정하고 중립적으로 진상조사에 참여할 적임자를 17일까지 추천해 달라고 공지했다.

이번 논란은 지난달 9일 시작됐다. 400여 명의 판사가 참여하고 있는 법원 내 최대 학술단체인 ‘국제인권법연구회’가 전국 법관을 상대로 ‘사법독립과 법관 인사제도에 관한 설문조사’를 실시하면서다. 대법원장의 인사권에 대한 내용도 포함된 조사 결과는 오는 25일 학술행사에서 발표될 예정이다.

법원행정처가 설문조사 실시가 알려진 지난달 13일 법원 내부 전산망에 “판사들이 중복 가입한 전문 분야 연구회를 탈퇴해야 한다”는 글을 올리면서 논란이 시작됐다. 소속 연구회를 1개만 남기라는 취지의 지시에 국제인권법연구회 소속 일부 판사가 반발했다. 이런 가운데 국제인권법연구회 소속인 이모 판사가 법원행정처 임종헌 차장으로부터 부당한 지시를 받았다는 의혹도 불거졌다. 이 판사가 법원행정처 심의관으로 발령이 난 뒤 임 차장으로부터 학술행사를 축소하라는 지시를 받았고 이 판사가 이에 반발하자 원래 있던 법원으로 돌아갔다는 내용이었다. 법원행정처는 “이 판사가 개인적인 사정으로 인사 철회를 요구했다”고 밝혔지만 연구회 소속 판사들 사이에서는 법원행정처 차원의 압박이 있었다는 말이 돌았다.

이에 대해 임 차장은 “결코 부당한 지시를 한 적이 없다”는 입장이다. 고영한 법원행정처장도 지난 7일 법원 내부 통신망에 “(대법원은) 해당 판사에게 연구회 활동과 관련해 어떠한 지시를 한 적이 없다”는 공식 입장을 냈다. 이 판사도 이튿날 “저의 인사 발령 등에 대한 언론 보도는 모두 저의 의사와 무관하게 보도된 것”이라며 “제가 경험한 부분에 대하여는 어떤 방식으로 말씀드리는 것이 옳은지 고심하고 있다”는 글을 올렸다. 하지만 의혹이 해소되지 않은 채 논란이 커졌고 이 판사는 이후 어떤 입장도 내놓지 않고 있다. 

문병주 기자 moon.byungjoo@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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