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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근혜의 환한 미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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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영기
전영기 기자 중앙일보 논설위원
전영기 중앙일보 칼럼니스트

전영기 중앙일보 칼럼니스트

역사가 한 번은 비극으로, 다른 한 번은 우스꽝스러운 희극으로 반복된다는 말은 마르크스가 했다. 프랑스 혁명을 유럽에 수출하다 비극적 최후를 맞은 나폴레옹 1세(황제 즉위 1804년)와 왕정복고(1852년)로 역사를 퇴행시켰다는 나폴레옹 3세 얘기다. 한국 탄핵사의 희비극은 순서가 바뀐다. 2004년 노무현 대통령은 기각됐고 2017년 박근혜 대통령은 파면됐다. 당사자의 입장을 기준으로 보면 처음은 해피엔딩, 두 번째는 비극에 해당한다. 박근혜는 연극은 끝났는데 무대에서 내려오지 않으려는 배우 같다. 헌재 판결을 수용한다는 성명이 없다. 그는 어제 삼성동 사저에 도착하면서 환한 미소를 지었다. "진실은 반드시 밝혀진다고 믿고 있다”는 말은 승복과 거리가 멀었다. 왜 그런지에 대해 세 가지 가설이 있다. 무슨 잘못을 했는지 아직도 모르고 있다는 견해가 첫째. 헌재의 결정을 법률적으로나 정치적으로 뒤집을 수 있다는 망상적 믿음에 빠졌다는 주장이 둘째다. 셋째는 심리적 배신과 수치심. 청와대 퇴거 뒤 들이닥칠 검찰 수사를 두려워하고 있다는 설명이다. 박근혜의 어젯밤 미소는 배신과 수치를 감추려는 뜻일 수도 있다.

재기 가능하다는 망상적 믿음 탓 #죄는 도려내되 정치보복은 안 돼

박근혜 전 대통령은 최소한 탄핵 판결 하루 전까지 기각을 확신한 듯하다. 그날 밤 4(인용):3(기각):1(각하)이나 5(인용):2(기각):1(각하)이 나오리라는 구체적인 보고를 받았다고 한다. 그의 사적 인맥에서 흘러나오는 말들이다. 대통령직 복귀를 예상하고 황교안 총리를 비롯해 민정·정무수석의 교체 등 정국 전환의 밑그림까지 구상하고 있었다는 것이다. 박근혜는 자신에게 기각 정보를 제공 혹은 보고한 Q씨의 지위와 위상에 비추어 그를 철석같이 믿었다. 결과가 정반대로 나오자 Q씨에게 극도의 배신감을 갖게 되었다.

박근혜를 미망에 빠뜨린 또 다른 인물이 있다면 김평우 변호사일 것이다. 그는 중간에 대통령 변호인단에 끼어들었다. 가망이 없는 각하론을 끄집어 냈다. 각하론은 탄핵안을 가결한 국회의 의사결정에 하자가 있어 헌재가 심리해선 안 된다는 주장이다. 하지만 2004년 노무현 탄핵판결문엔 “국회는 폭넓은 자율권을 가지므로 그 판단에 헌법재판소가 개입하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고 명시돼 있다. 처음부터 각하론은 적용될 여지가 없었다. 명민한 김평우가 치열한 다툼이 가능했던 기각론을 버리고 무망한 각하론을 전개한 건 이해할 수 없다. 그는 탄기국(탄핵기각국민운동본부)의 구호를 “탄핵 기각”에서 “탄핵 각하”로 바꿔 운동의 초점을 분산시켰다. 물론 Q씨의 헛된 보고나 김평우의 개입은 모두 박근혜가 자초했다. 어디 다른 데로 책임을 돌릴 수 없다.

그렇다 해도 민간인 박근혜의 인간적 생존엔 관심 기울일 필요가 있다. 노무현은 탄핵 재판에서 살아났으나 5년 뒤 뇌물 혐의가 드러났다. 수치심이 그를 자살로 몰아갔다. 박근혜는 대통령 파면으로 졸지에 민간인 신분이 됐다. 바로 뇌물죄 수사를 받을 처지다. 배신감에 수치심이 겹친다. 상상하기 싫고 역사는 똑같은 방식으로 되풀이되지 않을 것이다. 그러나 노무현식 사태가 일어나지 않으리라는 장담은 누구도 할 수 없다.

노무현이 100만 달러를 받았다는 혐의엔 일부 진술과 증거가 제시됐다. 그렇지만 정권교체 뒤 정치보복이라는 정서가 물씬 풍겨났던 것도 사실이다. 노무현의 자살은 죄보다 보복이 더 강조됨으로써 친노 폐족이 부활하는 계기가 됐다. 이 대목에서 멈춤의 교훈을 얻어야 한다. 박근혜의 죄는 최소한만 도려내는 게 좋겠다. 그를 가혹하게 추궁하면 정권교체도 하기 전에 정치보복부터 하느냐는 기운이 퍼질 수 있다. 살얼음판같이 조심스러운 조기 대선전이 시작됐다. 감정의 격류에 휩쓸리지 않도록 해야 한다. 친박 폐족이 다시 살아날 빌미를 처음부터 만들지 않는 게 현명하다. 시간을 길게 늘여 보면 노무현 탄핵의 해피엔딩은 그때뿐이었다. 더 참담한 비극으로 치닫는 전조였다. 민심에 보이지 않는 손이 있길 바란다. 그 손이 박근혜 비극을 더 비참하게 끌고 가지 않았으면 한다. 

전영기 중앙일보 칼럼니스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