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권노갑 비자금 파문] 權씨, 경선·대선 내내 盧와 불화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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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노갑 전 고문이 체포된 데 대해 청와대는 극도로 말을 아끼고 있다. 자칫 정치적 의도가 있는 수사로 비춰질 경우 화약고 같은 민주당 상황을 극도로 자극할 수 있고 검찰독립에도 금이 갈 수 있기 때문이다.

문희상(文喜相)비서실장은 이날 "청와대 입장은 뭐냐"는 취재진의 질문에 아무 말 없이 고개만 가로저었다. "반응을 보일 게 없다는 얘기냐"는 질문에 고개를 끄덕끄덕했다.

지난해 4월 민주당 경선 당시 이인제 후보 측이 "盧후보가 작년 12월 기자들과의 회식자리에서 '2000년 출마했을 때 원도 없이 돈을 써봤다'고 말했다"라고 주장한 대목도 새삼 거론되고 있다. 權전고문이 수수한 혐의를 받고 있는 자금이 민주당의 2000년 총선자금으로 쓰인 게 아니냐는 의혹과 맞물린 때문이다. 당시 盧후보는 "여당후보라 다른 때보다 조금 많이 썼다는 뜻"이라고 당시 李후보 측 주장을 반박했었다.

盧대통령과 權전고문의 개인적 인연도 관심을 끈다. 후보경선 전인 2001년 10월. 盧대통령은 權전고문에게 면담을 요청, "경선 시작 전 대세론이 확산되는 것은 불공정하다"고 항의했다.

權전고문이 이인제 측을 밀어 '이인제 대세론'이 확산될 때였다. 權씨는 "여론을 상승시켜 지지를 얻으면 기회가 있을 것"이라는 덕담만 했다고 한다. 그러나 權전고문 측이 '이인제 지원'을 멈추지 않는 것으로 판단한 盧대통령 캠프의 동교동에 대한 분위기는 점차 싸늘해졌다.

2002년 초를 기점으로 盧대통령의 핵심 측근들은 "경선은 이인제-권노갑으로 상징되는 민주당 수구세력과 개혁세력 간의 일전"이라고 공공연히 주장했다. 盧대통령 캠프의 전략문건엔 '구갑(舊甲.구파의 권노갑)은 호남.충청연합 구도에 매몰돼 있다. 국민통합 정부를 만들어야 한다는 역사적 책무와 무관한 사리사욕일 뿐'이라는 대목도 적시됐었다.

후보당선 뒤 盧대통령의 지지율이 급락하고 단일화론이 부상하면서 盧대통령 캠프는 다시 權전고문을 비롯한 동교동계 구파에 의구심을 품었다. 정몽준(鄭夢準)의원을 밀며 자신을 흔드는 배후에 이들의 역할이 있다는 것이었다.

盧대통령은 대선 이틀 전 기자회견에서 급기야 "인사에 부당하게 개입하고, 부패에 관련됐으며, 쇄신에 장애가 된 실정(失政) 책임자들은 법적으로 책임질 일이 없어도 반드시 정치적 책임을 묻겠다"고 약속하기에 이르렀다.

최훈.강민석 기자 <choihoon@joongang.co.kr>
사진=장문기 기자 <chang6@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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