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게임시장 8년째 석권 '스타크래프트의 힘'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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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일 오후 서울 삼성동 코엑스 3층 대서양홀 '2006 월드와이드 인비테이셔널(WWI)' 행사장. 대형 스크린에서 '스타크래프트' 결승 대회가 생중계되고 있었다. 프로게이머 강민.홍진호 선수가 경기를 펼칠 때마다 1만여 명이 넘는 관람객의 탄식과 함성이 이어졌다. 행사장 입구에서는 게임 캐릭터로 분장한 도우미들이 관람객과 사진을 찍고 있었다. 아직 국내에 발표되지 않은 후속 게임인 '스타크래프트 고스트' 시연회장 앞에는 수백 명이 차례를 기다리고 있었다. 이날 행사장을 찾은 서동일(26)씨는 "아직 공개되지 않은 신작 게임을 미리 체험해 볼 수 있다고 해 전날 잠까지 설쳤다"며 "스타크래프트를 만든 제작자들의 얘기를 들을 수 있어 무척 좋았다"고 말했다.

행사를 주최한 게임업체 블리자드는 3~5일 연인원 6만여 명이 행사장을 찾았다고 밝혔다. 첫날인 3일에는 새벽부터 수천 명이 입구에서 개막을 기다리는 진풍경이 벌어지기도 했다. 블리자드는 2004년 첫 번째 행사를 한국에서 연 뒤 지난해 미국을 거쳐 3회 대회를 또다시 한국에서 개최했다.

스타크래프트는 1998년부터 8년 동안 국내 시장을 석권하고 있는 게임이다. 출시 이후 블리자드가 판매한 900만 개의 게임팩 중 절반에 가까운 400만 개가 한국에서 팔렸다. 스타크래프트는 단순히 시장점유율 1위만 기록하고 있는 게 아니다. 프로게이머란 신종 직업군과 'e-스포츠(게임을 스포츠 경기처럼 운영하는 것)' 산업을 만들어 냈다. 삼성경제연구소는 지난해 말 보고서를 내고 2010년까지 e-스포츠 시장이 연간 1200억원 규모로 성장할 것으로 전망했다. 이는 게임 판매액과 대회 관람객이 소비하는 부가가치는 제외한 수치다.

삼성경제연구소 이안재 수석연구원은 "스타크래프트가 없었으면 국내 e-스포츠 시장이 이만큼 성장할 수 없었을 것"이라며 "이 게임이 국내 e-스포츠 시장의 70%를 차지한다"고 말했다. 전국 2만여 개의 PC방과 국내 온라인게임 산업도 '스타크래프트 효과'로 탄생했다.

중앙대 경영학과 위정현 교수는 "스타크래프트의 인기가 PC방이 보급되는 데 결정적 역할을 했다"며 "PC방이라는 인프라가 있었기 때문에 온라인게임 산업도 성장할 수 있었다"고 말했다.

블리자드 관계자들조차 궁금해하는 것이 스타크래프트의 한국 내 장수 비결이다. 블리자드의 프랭크 피어스 수석 부사장은 "미국 등 다른 나라에서는 출시 2년 뒤부터 스타크래프트의 인기가 떨어지기 시작했다"며 "한국에서만 이 게임이 이렇게 오랫동안 인기 있는 것이 놀랍다"고 말했다. 전문가들은 그 이유에 대해 게임의 성격이 한국인의 정서와 잘 맞는다는 점을 꼽는다. 스타크래프트는 온라인에서 '길드(커뮤니티의 일종)'를 형성해 이용자들이 단체로 즐길 수 있는 게임이다. 위정현 교수는 "떼를 지어 노는 것을 좋아하는 한국 사람들의 성격과 이 게임이 궁합이 잘 맞았다"며 "게임이 30분 안에 끝난다는 점도 속전속결을 좋아하는 한국인이 열광하는 이유"라고 말했다.

한국인의 게임 열기는 블리자드의 후속 게임 내용을 바꾸기도 했다. 블리자드는 2004년 출시된 '월드 오브 워크래프트' 게임에 남대문.김치 등의 캐릭터를 넣었다. 한국 팬들이 이 캐릭터들을 그려 달라고 요청해 왔기 때문이다. 피어스 부사장은 "일부 팬이 태극기를 미국 본사로 보내와 게임에 태극기 모양의 지형까지 만들었다"고 말했다.

홍주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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