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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사설 속으로

오늘의 논점 - 박 대통령 탄핵 최종변론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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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6면

중앙일보 <2017년 2월 28일자>

역사적인 탄핵 심판정에 역사적 장면은 없었다

QR코드로 보는 관계기사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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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제 ‘2016헌나1’ 대통령(박근혜) 탄핵 사건 최종변론이 헌법재판소 대심판정에서 열렸다. 국회가 박 대통령 탄핵소추안을 가결한 지 81일 만이다. 헌정사에 남을 탄핵 사건의 마지막 17차 재판이다. 국회 소추위원단이 먼저 국민주권주의와 법치주의 위반, 대통령 권한 남용, 세월호 구조 실패에 따른 생명권 보호 위반 등 다섯 가지 사유를 들어 대통령 탄핵을 인용해 달라고 호소했다.

이후 대통령 대리인단 변호사로 제일 먼저 나선 이동흡(전 헌법재판관) 변호사가 준비한 변론을 마치더니 이정미 헌재소장 권한대행에게 “박 대통령이 손수 쓴 최후의 변이 있는데 낭독해도 되겠느냐”고 물었다. 장내가 일순 술렁였다. 재판관들도 놀란 표정이었다. 이 권한대행이 허락하자 이 변호사가 20여 분간 최후 진술문을 읽어 내려갔다.

요지는 탄핵소추의 근거가 된 최순실 국정 농단 방조나 국가 기밀 문건 전달 지시, 중소기업 이권 개입, 공무원 인사권 남용, 사기업 인사 관여 등은 전혀 사실이 아니라는 거였다. 탄핵 요건인 자유민주적 기본질서 위배, 국민의 신임을 배반할 정도의 중대한 법 위반도 없었다고 주장했다. 다만 박 대통령은 “주변을 살피고 관리하지 못한 불찰로 국민의 마음에 상처를 준 점 송구하다”고 사과했다.

박 대통령이 최종변론을 대리인을 통한 최후 진술서 낭독으로 대체한 것은 재판관들의 질의와 소추위원들의 추궁을 피하기 위한 것으로 보인다. 자칫 말실수라도 할까봐 우려했을 것이다. 하지만 최후 변론에까지 직접 출석 대신 서면 진술서로 대체한 것은 책임 있는 자세가 아니다. 대통령은 그동안 검찰·특검 조사는 물론 탄핵심판의 최종변론까지 수사나 재판에 협조한 게 없었다. 지난 신정 때 청와대 기자실을 찾아가 일방적으로 자신의 입장을 설명하고 우파 인터넷방송과 인터뷰한 것이 전부다. 이러니 부처 장관들로부터 서면 보고만 받더니 마지막까지 서면 진술 대체냐는 비난이 나오는 것이다. 어제 역사적 심판정에서 정작 사태를 여기까지 끌고 온 박 대통령이 나오지 않아 역사적 장면을 지켜보지 못한 게 못내 아쉬울 따름이다.

이날 헌재 분위기는 무거워 보였다. 최근 대통령 대리인단이 헌재의 절차적 공정성 문제를 강하게 제기하고 나선 것도 영향을 미친 것으로 보인다. 헌재 심판 막판에 투입된 김평우 변호사는 탄핵 인용을 전제로 “내란” “아스팔트에 피” “우리가 노예인가” 등의 강경한 발언을 쏟아냈다. 불복 가능성을 높이며 긴장감을 고조시키기에 충분했다.

그동안 우리 사회는 촛불과 태극기 집회로 상징되는 극심한 갈등을 겪었다. 이제 양측의 치열한 법리 공방은 끝났다. 모든 결정은 8인 재판관의 손에 맡겨졌다. 헌재는 오로지 법과 양심, 역사의 명령에 따라 결정을 내려야 한다. 그리고 헌재 결정에 무조건 승복해야 나라가 산다. 대선후보들도 거리 집회에 나가 헌재를 압박하거나 법치주의를 짓밟는 일은 그만두어야 한다. 대한민국이 벼랑 끝 위기다. 탄핵이 인용되면 내란, 기각되면 혁명이라는 말까지 나도는 현 상황을 무겁게 받아들여야 할 것이다.

<헌재 대심판정에서>

한겨례 <2017년 2월 18일자>

변론 마친 탄핵심판, 추태와 억지로 일관한 대통령

QR코드로 보는 관계기사 <한겨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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헌법재판소가 27일 박근혜 대통령 탄핵심판의 변론을 마쳤다. 헌재는 국회의 심판 청구 뒤 81일 동안 모두 20차례 심판정을 열어 증거를 조사하고 변론을 들었다. 이제 평의 끝에 내려질 헌재 결정을 온 국민이 간절히 기다릴 것이다.

이번 심판은 현직 대통령이 국민과 역사의 심판대에 선, 헌정사의 일대 사건이다. 헌법과 법률을 어긴 대통령을 탄핵 심판정에 세운 것은 주권자인 국민이다. 헌정 유린의 전말은 물론, 탄핵심판의 처음과 끝은 다시 온전히 역사의 심판에 맡겨질 것이다. 헌정과 법치가 어떻게 위협당했는지, 이를 어떻게 바로잡았는지는 우리 민주주의의 귀중한 자양분이 되어야 한다.

탄핵 사유는 충분히 입증된 것으로 보인다. 대통령이 주권자가 위임한 권력을 비선인 최순실씨 등에게 함부로 넘기고, 심지어 최씨의 사익 추구에 협조한 일은 관여한 이들의 증언과 제출된 증거 등을 통해 사실로 확인됐다. 헌법상 국민주권주의와 대의민주주의 훼손이 분명하다. ‘세월호 7시간’ 동안 대통령이 아무것도 하지 않았음도 드러났다. 국민 안전을 지켜야 할 헌법 의무 위반이다. 공무원들을 함부로 인사 조처한 임명권 남용도 분명하다. 재단 출연금이나 정유라씨 지원 등을 이유로 기업에서 돈을 거둔 것에 대해선 직권남용과 강요에 더해 뇌물 혐의까지 드러난 터다. 법 위반이 대통령직을 도저히 유지할 수 없을 정도로 중대하다.

그런데도 대통령은 최종변론에 이르기까지 모든 잘못을 다 부인했다. 지난 몇 달간의 수사와 재판, 심판을 통해 자신의 범죄 혐의와 헌정 유린의 잘못이 애초 알려진 것보다 훨씬 심각하고 중대함이 명백해졌는데도, 처음처럼 그저 “모른다” “억울하다”뿐이다. 관련자들의 자백과 증언도 아예 모른 체다. 잘못을 부끄러워하지도 못하니, 과오에 대한 성찰과 나라를 위한 결단 따위는 아예 기대할 수도 없다.

대통령 대리인단도 가관이다. 변론의 대부분을 터무니없는 억지와 정치적 선동으로 채웠다. 소추 사유의 본질을 정면으로 반박하기는커녕 온갖 수법으로 심판을 지연시키고 핵심을 흐리는 데만 골몰했다. 재판관들까지 공격하더니, 이제는 국회의 탄핵소추 과정이나 헌재 재판부의 결원을 뒤늦게 시비 걸어 헌재 결정에 ‘불복’하겠다고 을러댄다. 참으로 비열한 추태다.

논리 vs 논리

쪽 헌재 결정에 승복해야 vs 탄핵은 국민과 역사의 심판

지난달 27일 서울 종로구 재동 헌법재판소에서 박근혜 대통령 탄핵심판 최종변론이 진행되고 있다. [사진공동취재단]

지난달 27일 서울 종로구 재동 헌법재판소에서 박근혜 대통령 탄핵심판 최종변론이 진행되고 있다. [사진공동취재단]

<단계1> 공통주제의 의미 박근혜 대통령 탄핵 여부를 결정하는 심리가 지난 2월 27일 최종변론을 끝으로 마무리됐다. 권성동 국회 탄핵소추위원단장은 헌법재판소(이하 헌재)가 박 대통령의 파면을 통해 정의를 갈망하는 국민이 승리했음을 선언해 주시기 바란다며, “피청구인(박 대통령)의 헌법과 법률 행위 위반에 대해서는 엄격한 심리를 거친 증거들에 의해 충분히 규명됐다”고 의견을 밝혔다.

박 대통령은 대리인단을 통해 발표한 최후 진술 의견서를 통해 “20여 년간의 정치 여정 중 단 한 번도 부정부패에 연루되지 않았다”며 “저의 약속과 신념 때문에 국정 과제를 하나하나 다 챙기고 국가와 국민을 위해 헌신했다”고 주장 했다. 이날 대통령 대리인단은 국회의 탄핵소추 의결 과정에서 심각한 문제점이 있다고 주장하며 헌재가 9인 재판관으로 구성돼 선고가 내려져야 한다고 강조하 기도 했다.

헌재의 이정미 소장 권한대행은 최종변론에서 “재판부는 이 사건이 우리나라 민주주의와 법치주의 성숙도를 가늠하는 척도가 되고 유례없는 사건으로서 우리나라뿐만 아니라 세계 이목이 집중된 점을 알고 있다”며 “사건에 대해 예단과 편견 없이 헌법과 법률이 정한 절차에 따라서 실체를 파악해 결론을 내리기 위해 모든 노력을 다해 왔고, 앞으로도 그럴 것”이라고 강조했다.

<단계2> 문제 접근의 시각차 중앙은 ‘장내가 일순 술렁였다. 재판관들도 놀란 표정이었다’라는 구절로 미루어 알 수 있듯 마치 최종변론을 현장에서 생중계하듯 사설을 전개하고 있다. 중앙은 박 대통령이 최종변론을 대리인을 통한 최후 진술서 낭독으로 대체한 것은 박 대통령이 ‘재판관들의 질의와 소추위원들의 추궁을 피하기 위한 것으로 보인다’라고 분석하고 있다. 박 대통령은 지난해 10월 25일 ‘최순실씨에게 대통령 연설문과 국정 회의자료가 유출됐다’는 의혹에 대해 사실을 인정하고 사과했다. 그러나 이때도 사과문만 낭독하고 기자들의 질문을 받지 않았다. ‘불통’이라는 박 대통령의 이미지도 이런 일방적 의사소통 방식에 기인한다고도 볼 수 있다. 중앙은 이 점을 문제 삼고 있다.

중앙은 “최후 변론에까지 직접 출석 대신 서면 진술서로 대체한 것은 책임 있는 자세가 아니다”라고 지적한다. 당초 “검찰수사에 협조하겠다”던 박 대통령은 최순실씨에 대한 공소사실이 발표된 뒤 말을 바꿨다. 중앙의 지적처럼 박근혜 대통령은 “그동안 검찰·특검 조사는 물론 탄핵심판의 최종변론까지 수사나 재판에 협조한 게 없었다”. 박 대통령의 이런 태도는 죄의 유무를 떠나 법치주의 국가의 수장으로서 보여주어야 할 태도가 아니다.

한겨레는 “이번 심판은 현직 대통령이 국민과 역사의 심판대에 선, 헌정사의 일대 사건이다”라고 규정하며 이번 심판이 가지는 역사적 의의를 강조한다. 주권자인 국민이 헌법과 법률을 어긴 대통령을 탄핵 심판정에 세운 것은 우리 “민주주의의 귀중한 자양분”이 되어야 한다고 한겨레는 역설한다. 한국사회여론연구소의 조사 결과 응답자의 78.3%가 탄핵 인용에 찬성했다는 소식도 이와 무관하지 않을 것이다. 대한민국은 국민이 대표자를 선출해 정부나 의회를 구성해 정책 문제를 처리하도록 하는 대의제 민주주의 국가이므로 대통령이 주권자가 위임한 권력을 최순실씨 등에게 함부로 넘긴 것은 “대의 민주주의의 훼손”이라고 한겨레는 강조한다. 공무원들을 함부로 인사 조치한 임명권 남용, 재단 출연금이나 정유라씨 지원 등을 이유로 기업에서 돈을 거둔 것 등 “법 위반이 대통령직을 도저히 유지할 수 없을 정도로 중대하다” 고 주장한다.

<단계3> 시각차가 나온 배경 중앙은 무거웠던 헌재의 분위기를 전하며 “대통령 대리인단이 헌재의 절차적 공정성 문제를 강하게 제기하고 나선 것도 영향을 미친 것으로 보인다”라고 말한다. 대통령 변호인단은 9인 재판관 전원이 참석하지 않은 탄핵심판은 무효라고 주장한다. 입법·행정·사법부에서 각 3명씩 재판관을 추천해 헌재가 구성된 만큼, 9인 재판관 체제에서 결론을 내려야 하는데 지금의 헌재의 ‘8인 재판관 체제’가 문제가 있다는 것이다. 중앙이 우려하는 것은 절차적 공정성의 문제점을 들어 헌재의 결정에 불복하는 사태가 벌어질 수도 있다는 가능성이다. 중앙이 박 대통령 측 김평우 변호사의 “헌법재판관 8명, 7명이 결정하면 내란으로 들어간다” “헌재 판결 무조건 승복하라고? 우리가 노예인가?” “(탄핵 인용 시에) 촛불과 태극기가 정면충돌해서 우리나라 아스팔트 길이 피와 눈물로 덮여 버린다”라는 구절을 언급한 것도 헌재의 결정에 불복하는 사태가 벌어져서는 안 된다는 문제의식의 소산이다.

중앙이 우려하는 것은 법치주의의 훼손이다. 헌재가 “오로지 법과 양심, 역사의 명령에 따라 결정”을 내려야 하고 헌재의 결정이 내려지면 무조건 승복하는 것이 나라가 사는 길임을 중앙은 강조한다. 중앙은 야권의 “대선후보들도 거리 집회에 나가 헌재를 압박하거나 법치주의를 짓밟는 일은 그만두어야 한다”라는 우려도 표명한다. 헌재 결정에 승복하느냐 불복하느냐의 문제를 선거에서의 표를 의식해 결정해서는 안 된다는 것이 중앙의 태도다. “탄핵이 인용되면 내란, 기각되면 혁명이라는 말까지 나도는 현 상황을 무겁게 받아들여야 할 것이다”라는 구절을 통해 중앙은 헌재의 결정이 국론 분열로 연결되어서는 안 된다는 것을 말한다.

한겨레가 문제 삼는 것은 모르쇠로 일관하고 있는 대통령 측의 태도다. 탄핵심판 증인신문에서 청와대 비서관과 행정관들이 보여준 태도는 국민들의 공분을 사기에 충분했다. “관련자들의 자백과 증언”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이를 부인하는 태도에서 “과오에 대한 성찰과 나라를 위한 결단 따위는 아예 기대할 수도 없다”라고 한겨레는 강조한다.

한겨레는 대통령 대리인단이 “국회의 탄핵소추 과정이나 헌재 재판부의 결원을 뒤늦게 시비 걸어 헌재 결정에 ‘불복’하겠다고 을러댄다”라고 비판하고 있다. 박 대통령 대리인단은 국회가 지난해 탄핵안을 의결하면서 총 13개 탄핵 사유를 하나로 묶어 한 번에 가부(可否) 투표를 하는 식으로 처리한 것을 문제 삼았고, ‘9인 재판관 전원이 참석하지 않은 탄핵심판은 무효’라고 주장하기도 했다. 이정미 헌재소장 대행이 퇴임하는 오는 3월 13일 이전에 결정 선고를 내린다면 “재판의 공정성 차원에서 문제가 많다”고 비판하기도 했다. 이는 “소추 사유의 본질을 정면으로 반박하기는커녕 온갖 수법으로 심판을 지연시키고 핵심을 흐리는 데만 골몰”하는 것이라고 한겨레는 꼬집는다.

김보일배문고 국어교사

김보일배문고 국어교사

전체적인 논조로 볼 때, 중앙이 헌재의 결정에 승복해야 한다는 입장이라면 한겨레는 탄핵이 인용되어야 한다는 입장이다. 전자가 법치주의를 내세운다면 후자는 대의민주주의를 내세운다.

김보일 배문고 국어교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