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지영의 MLB밀] 걱정말아요, 박뱅

중앙일보

입력

“박뱅 취재하러 왔나요? 여기가 박뱅의 라커예요.”

초청선수 신분 됐지만 강렬한 홈런 2방 #홀가분한 표정으로 "이제는 눈치 안볼 것" #"내 유니폼 입고 응원 오는 팬 보고 싶다"

미네소타 트윈스의 간판스타 브라이언 도저가 제게 물었습니다. 도저를 인터뷰하기 위해 기다리고 있었던 건데 친절히 박병호 선수의 라커룸 위치를 알려줘 좀 놀랐습니다. 박병호 선수에게도 도저는 메이저리그 첫해 많은 도움을 준 선수라고 하더군요. “브라이언 도저 선수가 리더답게 잘 챙겨 줬어요”라고요.

사실 박병호 선수가 한국에서 뛸 때 도저 같은 역할을 했습니다. 외국인 선수들에게 먼저 다가가 인사하고 손을 내미는 이가 박병호 선수였습니다. 박병호 선수는 “외국인 선수들이 낯선 곳에서 야구하는 게 얼마나 힘들겠어요. 문화적으로 적응하는데 도움을 주고 싶어 말도 많이 걸고 친해지려고 노력했어요. 영어공부는 덤으로 따라오더라고요. 하하”라고 하더군요.

박병호 인터뷰 [박지영 아나운서]

박병호 인터뷰 [박지영 아나운서]

지난 2일(한국시간) 미국 플로리다 포트마이어스 센추리링크 스포츠콤플렉스에서는 반가운 한국말이 들렸습니다. “병호 형!” 바로 롯데에서 뛰었던 조쉬 린드블럼이었습니다. 린드블럼은 미네소타 트윈스의 시범경기 상대팀 피츠버그 파이리츠의 선발투수였거든요. 한국에서 박병호 선수가 다른 팀 외국인 선수에게도 얼마나 친절했는지 알 수 있는 장면이었습니다. 린드블럼은 박병호 선수와 인사하기 위해 애타게 형을 찾은 겁니다.

사실 걱정이 많이 됐습니다. 지난해 많은 기대를 받고 미네소타 트윈스에 입단했던 박병호 선수의 입지가 많이 달라졌기 때문이죠. 이번 스프링캠프를 앞두고 40인 로스터에서 제외된 박병호 선수는 초청선수 신분으로 시범경기에 출전하고 있습니다. 틀림없이 자존심이 상했을 거라 생각했습니다. 그러나 박병호 선수는 특유의 하얀 미소를 보여줬습니다. 오히려 반갑게 취재진을 맞이했습니다.

“전 괜찮아요. 자존심이요? 그런 게 어디 있나요?”

걱정과 달리 박병호 선수는 즐겁고, 씩씩하게 지내고 있었습니다. 시범경기에서 빠른 공을 받아쳐 홈런을 2개나 치고 4할 타율을 기록했기 때문만은 아닐 겁니다. 시련을 겪고 더 단단해진 것으로 저는 느꼈습니다.

지난해 박병호 선수는 정말 롤러코스터를 탔습니다. 대형 홈런을 펑펑 터뜨리며 메이저리그를 깜짝 놀라게 하더니, 빠른 공 공략에 약점을 보이며 타율이 2할 아래로 떨어졌습니다. 결국 마이너리그에 내려갔고, 오른 손등 수술을 받아 시즌을 마쳤죠.

“내가 잘할 때와 못할 때 주변 반응이 너무 달랐어요. 사실 당연한 건데 제가 주위 반응에 신경을 많이 쓴 거 같아요. 이제는 눈치 보지 않고 제 페이스대로 할 겁니다.”

박병호 선수 입에서 '눈치'라는 단어가 나오는 걸 보면, 그가 얼마나 마음고생을 했는지 짐작할 수 있었습니다. 메이저리그에 가면 무엇보다 팀 분위기에 잘 적응하는 게 중요하다고 많은 분들이 말합니다. 인성 좋은 박병호 선수는 그걸 지나치게 신경쓰지 않았나 싶어요. 박병호 선수는 “한국에서는 한두 번 못해도 툭 털고 잊어버렸는데, 미국에서는 잘 안 되더라고요”라고 말했습니다.

이제 박병호 선수는 2년차가 됐고, 더 이상 적응이 필요 없을 만큼 동료들과 잘 지내고 있었습니다. 본인 의지에 따라 타격폼도 바꿔서 올 시즌을 준비했는데요. 눈으로 보기에는 큰 차이가 없지만 하체 이동을 빠르게 하고 배트를 쥔 손의 움직임이 간결해 졌다고 합니다.

박병호 인터뷰 [박지영 아나운서]

박병호 인터뷰 [박지영 아나운서]

넥센 코치 시절 박병호 선수와 한솥밥을 먹은 손혁 MBC스포츠플러스 해설위원이 “병호는 예의 바른 선수이지만 야구에 관해서는 코치들에게도 할 말은 하는 선수였잖아. 코치들은 그런 당찬 모습을 좋아했고, 이제 여기서도 그 모습으로 야구를 했으면 좋겠어!”라고 격려했습니다. 박병호 선수도 손 위원의 말을 다 이해하는 것 같았고요.

“야구를 잘하는 게 가장 중요하다는 걸 느꼈어요. 당연한 말이지만, 새로운 리그에 적응하는 것보다는 제 야구를 하는 게 먼저죠. 이제 야구에만 집중할 겁니다.”

환하게 웃고 있어도 박병호 선수의 미소에서 독기 같은 걸 느낄 수 있었습니다. 팀 내 지위가 낮아졌을지 몰라도 무게중심은 잘 잡고 있다는 생각도 들었습니다. 인터뷰에 앞서 ‘트윈스샵’에서 박병호 선수 유니폼을 샀습니다. 유니폼을 찍은 사진을 보여주니 “작년 재고품 아니에요?”라며 웃더군요.

“올 시즌 제 이름을 새긴 유니폼을 입은 팬들을 많이 봤으면 좋겠어요. 그러려면 제가 잘해야겠죠?”

박병호 선수가 한 말이 꼭 이뤄지길 바랍니다. 어느 노래 가사처럼요. 걱정 말아요, 박뱅~♬.

박병호 인터뷰 [박지영 아나운서]

박병호 인터뷰 [박지영 아나운서]

<플로리다에서 박지영 MBC스포츠플러스 아나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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