끌과 망치로 새겨 낸 '부처의 진리'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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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1면

"중은 모름지기 세 가지 기본적인 일, 즉 염불.참선.법문만 아니라 생산적인 일 한 가지 씩은 꼭 해야 한다"는 스승의 가름침을 받들어 끌과 망치를 잡고 서각(書刻)수행을 한 지 어언 20여년. 서각과 선(禪)판화의 고수인 혜안 스님이 9~18일 서울 사간동 법련사 불일미술관에서 '일획일각(一劃一刻)'이라는 주제의 전시회를 연다. 수필집 '그래, 떠나보거라'(열린박물관 간)도 펴냈다.

전시 작품은 자작나무와 산벚나무를 이용해 3년여 걸려 만든 금강경 경판 20장을 비롯해 반야심경 경판, 병풍 형태의 심우도.십이간지도.단청 문양, 선판화 등 150여 점. 경판에 대한 대중의 이해를 돕기 위해 제작 과정도 전시한다. 자작.산벚 두 나무는 바로 해인사 법보전에 존치된 팔만대장경의 주재료다.

"불교 서각은 부처님의 진리를 새기는 행위로 곧 수행의 방편이며, 만들어진 작품들은 또 다시 포교의 방편이 되는 것입니다."

혜안 스님은 이런 믿음과 함께 불교미술 차원에서 현대적으로 해석한 서각을 선보인다. 고리금.쌍줏대금 등 단청 문양의 여러가지 형태에서 그런 시도를 드러내는 게 대표적이다. 선판화를 간결하되 만화적 요소를 경계해 만들며, 한 줄의 화제(畵題)에도 화두가 깃들어야 한다는 원칙도 같은 연유다.

스님은 수필집에서 "칼 끝에 온 정신을 집중하면 어느 사이 세상이 텅 비어 버린 듯 시간을 잊고 나를 잊어 버립니다. 내가 나무가 되고 나무가 내가 되어 버립니다. 그래서 불가에서는 서각을 최고로 치기도 합니다"라고 썼다. 법련사 주지 보경 스님은 "마음이 담기면 만사 진실한 법"이라며 "한 끌 한 끌 전진해 가며 그가 새긴 일획일각은 그래서 아프다"고 말했다. 혜안 스님은 불교서각화를 감상하는 특별한 방법이 있냐는 물음에 "그냥 서서 보세요"라고 했다. 10번째 전시지만 큰 규모론 1998년 이후 두번째다.

이헌익 문화담당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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