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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정남 암살로 큰 대가를 치를 북한

중앙선데이

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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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21호 31면

에버라드 칼럼

김정남 암살 사건은 말할 나위 없이 큰 국제적인 관심을 모았다. B급 영화에서나 볼 법한 일이지만 외교적 파장은 심각하고 오래 지속될 것이다. 지난달 12일 미사일 발사 실험, 트럼프 정부와 중국 간의 불편한 관계와 겹쳐진 이번 악재로 북한의 입지가 더 불안해졌다.


북한의 암살조가 김정남에게 독극물인 VX를 사용한 건 아마도 실행상의 이유였을 것이다. 그들이 말레이시아로, 그리고 공항으로 잠입하려면 스캐너에 인식되지 않는 무기가 필요했다. 그래서 총이나 칼은 배제된다. 들키지 않고 신속히 실행할 필요가 있는 암살조에게 극소량만으로도 효과적인 VX는 좋은 선택지였을 것이다. 그러나 VX를 사용하는 것은 상당한 정치적 비용을 수반한다. VX는 끔찍하다. 북한을 포함한 소수를 제외한 대부분의 국가들은 1997년 화학무기의 사용은 물론 소유를 금지하는 화학무기금지협약(CWC)을 비준했다. 그래서 전쟁터에서조차 쓰기 어려운 VX를 사람들로 붐비는 공항에서 쓴다는 건 광범위한 공포와 비난을 유발하는 행위다.

고체연료 미사일 발사 다음날 도발 #외국 여성 이용해 이미지 더 나빠져 #중국도 석탄 수입 금지 등 강한 제재 #추가 도발로 국면전환 노릴 가능성

김정남을 살해한 시기도 문제다. 암살은 북한이 고체 연료를 사용한 미사일 발사로 국제 사회에 도발한 바로 다음날 이뤄졌다. 이런 연이은 도발은 누적효과를 키워 북한이 직면했던 것보다 더 강한 반응을 야기할 수 있다.

북한이 큰 대가를 치를 마지막 이유는 두 명의 외국인 여성을 이용했다는 점이다. 북한의 암살조는 대개 외부인을 배제하는데 이번에 이 패턴에서 벗어난 이유는 명확치 않다. 이유가 어찌됐든 두 여성을 이용한 건 굉장한 잘못이었다. 첫째, 훈련받지 않은 그들은 이내 말레이시아 경찰에 붙잡혀 살인 혐의로 기소됐다. 유죄 판결을 받으면 교수형에 처해질 위기에 처한 그들은 관대한 처분을 받기 위해 수사에 최대한 협조할 것이다. 둘째, 그들이 스트리퍼와 매춘부로 일하던 약자(언더독)라는 점이다. 불안한 표정으로 전 세계 미디어를 장식한 두 여성에 대한 동정심이 이들을 교묘하게 꾀어낸 북한에 대한 반감으로 이어졌다. 마지막으로 두 사람이 각각 인도네시아와 베트남 국적자라는 점이다. 이 때문에 현재 두 나라가 사건에 개입했다. 북한이 교묘하게 자국 국민을 이용했다는 사실이 달가울 리 없다.

이런 요소뿐 아니라 북한의 사후 대처마저 사태를 악화시켰다. 말레이시아는 무비자 입국이 가능한 북한의 몇 안 되는 친구였다. 암살 바로 며칠 전에는 북한과 문화 협력 협정을 맺기도 했다. 처음에 말레이시아는 참을성 있게 대응했다. 그러나 북한은 김정남의 시신을 넘겨달라고 요구했고, 부검도 막으려 했다. 한국 정부와 결탁했다고 말레이시아 정부를 비난하기도 했다. 말레이시아의 인내심은 이내 바닥이 났다. 북한이 혼잡했던 공항 터미널에서 치명적인 신경작용제를 사용했다는 걸 인지하게 됐을 때였다. 2주 만에 두 국가의 관계는 파국에 이르게 됐다. 말레이시아 정부는 평양 주재대사를 철수시켰고 외교부 장관은 북한대사를 추방하겠다고 언급했다. 부총리는 양국 관계의 재검토를 지시했다.

사건 이후 북한이 말레이시아 측에 이 유감스러운 사건을 해결하는 데 협조하겠다고 말하고, 가까운 친척이 시신을 인계받도록 쿠알라룸푸르에 와달라는 말레이시아의 요청을 따랐다면, 이런 피해를 막을 수 있었을 것이다. 하지만 북한은 그렇게 행동할 줄 모른다. 대신 엄포를 놓고 협박했다. 심지어 영안실에서 시신을 탈취하려 했다. 매우 도발적인 행동이었다. 북한은 아무리 끔찍하게 들린다해도 한 가지 노래밖에 부를 줄 모른다.

그러나 북한이 말레이시아와 소원한 관계가 되면서 입은 피해는 중국을 화나게 해 겪게 된 피해에 비교해보면 미미한 수준이다. 중국은 북한의 유일한 동맹국이자 주요 후원자다. 김정남은 중국의 보호를 받기도 했던 중요한 존재였다. 따라서 그에 대한 암살은 중국의 자존심에 대한 모욕이었다. 그리고 중국은 공항에서 VX를 사용하는 것처럼 안전에 문제가 생기는 상황에 질색한다. 더군다나 중국은 김정남 암살 전날에 있었던 미사일 발사로 이미 화가 난 상태였다. 사건발생 나흘 후엔 트럼프 정부의 신임 국무장관인 렉스 틸러슨과 중국 외교부장 왕이가 북한에 대해 논의했다. 자세한 대화 내용이 공개된 바 없지만 틸러슨은 북한 정권을 향한 강력한 조치를 중국 측에 요청했을 것이다.

중국이 올해 연말까지 북한산 석탄 수입을 금지한다고 지난달 18일 발표한 것은 북한 정권에게 날벼락이었을 게 틀림없다. 북한의 대(對)중국 석탄수출액은 전체 수출액의 4분의 1에서 절반 가량을 차지한다. 미사일 발사, 김정남 암살, 틸러슨 회담의 세 가지 요소들이 중국의 이 결정에 각각 얼마나 영향을 미쳤는지는 알 수 없지만 전반적으로 심기를 불편하게 한 것은 사실일 것이다. 북한이 김정남을 죽이지 않았더라면 북한은 여전히 중국에 석탄을 팔고 있을 가능성이 크다.

북한이 망연자실한 것은 분명하다. 지난달 23일 “미국의 장단에 춤을 추고 있다”며 보기 드물게 중국에 대한 비난성명을 발표했다. 중국을 공개적으로 모욕하는 것은 궁지에 몰려 최근 상황을 서투르게 다루고 있다는 또 다른 사례다. 지난달 28일 이길송 북한 외교 부부장은 베이징으로 향했다. 수출금지조치의 완화를 설득하기 위한 목적이었다는 데 의심할 여지가 없지만 중국을 설득해 마음을 바꿔놓을 것 같진 않다.

3주 전 북한의 상황은 좋지 않았다. 그런데 지금은 훨씬 더 나빠졌다. 북한의 국제적 명성은 저점을 새로 찍었다. 중국의 석탄제재는 이전 조치들보다 훨씬 강하게 북한을 압박할 것이다. 금지조치가 완화되지 않는다면 경제가 급락하게 될 위험이 있다. 북한 정권은 경제적인 대가로 엘리트들의 충성심을 확보하기 때문에 경제 악화는 이들이 흔들리는 결과를 가져올 수 있다. 김정남 제거의 목표가 반대 세력을 평정하기 위한 것이었다면, 의도와는 반대되는 효과를 불러올 수도 있는 것이다.

북한은 핵무기와 새로운 화학무기를 포기할 수 있다고 발표하며 현 상황에서 벗어나기 위한 협상을 시도할 것인가? 우리 모두는 그렇게 되길 희망한다. 유감스럽게도 북한 정권은 이런 약점을 보일 수 없다고 느낄 것이다. 대신 이제 막 시작된 한?미연합훈련 기간에 무력을 과시하고 추가 도발을 통해 제재를 풀어보려고 시도할 것이다. 이미 지난 1일 사설을 통해 “국가의 주권과 존엄성을 보호하기 위한 자기방어를 위한 더욱 강력한 수단”을 언급했다. 2월은 쉽지 않은 한 달이었다. 3월은 더 나빠질 것 같다.

에버라드
전 평양 주재 영국 대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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