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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진국이 만난 사람] 낙오계층 배려 안 하면, 기술 발전한들 행복한 세상 되겠나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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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4면

김명자 과학기술단체총연합회 회장

지난달 27일 오후. 서울 역삼동에 있는 과학기술회관은 어수선했다. 김명자(73) 한국과학기술단체총연합회(이하 과총) 회장 취임식 하루 전이다. 1층 로비에는 전임 회장을 비난하는 노조 대자보가 잔뜩 붙어 있고, 한쪽에는 농성장이 만들어져 있었다. 지하 대회의실에는 제4차 산업혁명 관련 대토론회가 열리고 있었다.

산업혁명기 빈부 격차 두드러져 #4차 산업혁명 양극화 더 심화 우려 #기후변화·물·질병 문제 개도국에 #적정 기술 제공해 과학 한류 확산 #판에 박힌 사고, 학원 교육으로는 #시험 점수 높여도 근본 역량 못 키워 #사이버 이사회 등 소통 확대해 #모든 세대 아우르는 과총 만들 것

이런 번잡함과 달리 3층 복도는 정말 조용했다. 소회의실 앞에 직원 두 명이 서 있다. 아직 취임하지 않은 김 회장이 직원들을 이리로 불러 보고받고 있었다. 김 회장은 일에 대해서는 매우 치밀하고, ‘깐깐하다’고 알려져 있다. 축하한다고 하자 그는 손사래를 쳤다.

김명자 과총 회장은 지난달 27일 “4차 산업혁명은 양극화를 심화하고 산업·경제·고용·사회·정부 형태까지 바꿀 것”이라고 말했다. [사진 김춘식 기자]

김명자 과총 회장은 지난달 27일 “4차 산업혁명은 양극화를 심화하고 산업·경제·고용·사회·정부 형태까지 바꿀 것”이라고 말했다. [사진 김춘식 기자]

“축하받을 일인지 잘 모르겠습니다. 어깨가 너무 무거워서요. 성미에 못 이겨서 너무 많은 일을 한다고 말씀을 드려 놔서 이게 ‘공약(空約)’이 될까 봐 켕깁니다.”

그는 이미 1년 전 총회에서 최종 선출됐다. 앞서 이사 90명의 투표에서 압도적 지지로 당선됐다. 그는 김대중 정부에서 환경부장관을 3년8개월간 맡았다. 노무현 정부에서는 17대 국회 열린우리당 비례대표 국회의원으로 국방위원회에서 일했다. 1970년대 초부터 숙명여대 이과대학장과 경제정의실천시민연합 이사, 녹색소비자연대 공동대표 등 비정부기구(NGO) 활동도 하고, 언론에 칼럼도 단골로 썼다. 이런 경험이 과총 50년 만의 첫 여성 회장이 되는 밑거름이 됐다.

“여기저기에서 일을 하다 보니 과학기술계에 대한 일반 인식을 알게 되고, 어떻게 달라져야 하는가를 객관적으로 볼 수 있는 눈을 갖게 된 것 같습니다.”

그는 특히 소통을 강조했다.

“과총이 너무 시니어 그룹 중심으로 움직인다는 지적이 있어요. 과학기술자는 전문화·세분화된 분야에서 연구에 몰두해야 하고, 좋은 실적을 내야 한다는 압박감에 사회적인 관심 영역에서 활동하기가 쉽지 않습니다. 또 과학기술, 산업 분야가 굉장히 영역이 넓기 때문에 서로 대화하고, 컨센서스를 모으는 작업이 필요하다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우리 함께’를 강조하는 거죠.”

사이버 이사회를 만드시려는 것도 그 때문인가요.
“이사가 92명입니다. 전국에 흩어져 있고, 전 분야에 걸쳐 있어 1년에 두세 번 짧은 시간 회의로는 턱도 없어요. 그래서 상시 소통 채널을 가동하려는 겁니다.”
환경부 장관 시절 생전의 박경리 선생을 만난 김명자 회장.

환경부 장관 시절 생전의 박경리 선생을 만난 김명자 회장.

그는 ‘대증적(對症的)으로 나누어주는 복지’보다 과학기술을 활용해 ‘사전예방하는 근원적 접근의 복지’를 강조한다. 공공기술, 삶의 질 향상, 이런 복지 문제를 한국의 상황에 맞게 해결할 수 있는 사회적 기술의 역할이 중요하다는 것이다.

성과 너무 강조하면 기초과학이 죽지 않나요.
“해마다 10월이 되면 왜 우리는 노벨상을 못 받는 거냐면서 연구개발(R&D) 예산 투입 대비 성과가 저조하다는 비판을 받곤 합니다. 정부가 많은 개선책을 내놓았고, 별거별거를 다 했어요. 그런데 개선됐다는 소리는 안 들립니다. 이제는 과학기술이 단순히 경제성장의 도구라는 발상에서 벗어나야 합니다. 결국 과학기술계에 창의성과 자율성을 존중하고, 믿고 맡길 차례입니다. 걸리는 게 있으면 일벌백계하고, 연구개발 관리의 규제를 합리화하는 것이 대안이다, 이런 생각을 하죠. 미국 교수가 발표한 결과를 보니까, 거기도 행정소요 시간이 40%를 넘는다고 비판하더라고요. 어느 나라나 그런 갈등은 있는 것 같아요.”
과학 한류 확산도 강조하셨는데.
“과총에 ‘과학기술 외교센터’와 ‘과학기술 ODA지원센터’를 만듭니다. 개도국이 우리나라에 요구하는 것은 적정기술, 이게 가장 많거든요. 기후변화, 물, 질병 문제는 다 과학·기술·환경과 관련되잖아요. 정부출연연구소에서도 협조 요청이 들어오더라고요. 과총에 관련된 학회가 387개가 있거든요.”

그는 환경부 장관 시절 경험을 떠올렸다. 역사·정치 문제에서는 한·중·일 3국이 만나기가 불편할 때가 많다. 그러나 대기오염 같은 월경(越境)성 이슈를 제기하니 자연스럽게 3국 장관회의를 정착시킬 수 있었다는 것이다. 일본과 중국의 과총 유사 단체와 기후변화, 사이버안전, 원자력 안전, 전염병 등을 다루는 ‘한·중·일 3국 과학기술협의체’, 아시아혁신포럼을 만들겠다고 밝혔다.

그는 취임사에서 “과총이 4차 산업혁명의 문명사적 격동기에서 혁신을 선도하는 프런티어가 돼야 한다”고 말했다.

미국 유학 시절 모습.

미국 유학 시절 모습.

“4차 산업혁명은 모든 기술의 융합입니다. 그런데 사실 우리는 융합에 약합니다. ‘빨리빨리’에는 아주 강하지요. 이세돌과 인공지능의 바둑 대결 이후 민관으로 9대 국가전략프로젝트를 내놓았죠. 새 정부가 들어서면 포장은 바뀌겠지만 내용은 크게 바뀌지 않을 것 같아요. 그래서 우리 과총이 현장에서 모니터링을 하고 피드백해서 그 프로젝트들이 잘나갈 수 있도록 지원하려고 합니다.”

김 회장은 “저는 기술혁신에 따르는 사회 양극화가 걱정됩니다”라고 말을 꺼냈다.

“4차 산업혁명의 핵심 기술과 산업을 키우는 정책은 물론 중요합니다. 그런데 2차 산업혁명에서도 그랬고, 산업혁명기에 가장 두드러진 사회적 현상 중 하나는 빈부격차가 크게 벌어진다는 거예요. 4차 산업혁명은 더 크게 벌어질 거예요. 세계 부호 62명의 부(富)가 지구촌 인구 절반인 36억 명의 부와 같다는 옥스팜(Oxfam) 보고서가 2015년에 나왔죠. 2016년에는 그게 8명으로 됐고…. 조직이나 국가나 스킬(skill)에서 뒤져서 낙오되는 계층을 배려하지 않으면 기술이 발전한들, 경제가 성장한들 그게 행복한 세상이 될 수가 있을까요. 불만과 좌절로 인한 갈등 심화를 예방하고 대응하는 것이 4차 산업혁명 성패의 관건이 될 겁니다. 특히 정치 쪽에서 그걸 유념해야 된다고 생각합니다.”

김 회장은 성균관대 대학원장이었던 영문학자 고(故) 김재근씨의 1남5녀 중 맏딸이다. 예일대 교환교수 시절 소련의 스푸트니크호 발사(1957)로 과학기술이 주목받자 부친이 이공계를 권유해 서울대 화학과에 들어갔다(62년). 71년 버지니아대에서 박사학위를 받았다.

그는 경기여중·고 시절 수학보다 국어·영어 성적이 더 좋았다고 한다.

“대학에서 과학사를 가르쳤죠. 문명사라서 들어가보면 정말 끝없이 재미있거든요.”

요즘 자기 일을 하면서 아이 셋(1남2녀)을 키우는 일은 아주 드문데, 대학교수로 출발해 계속 유리천장을 뚫으며 살아오셨습니다.
“연구실에서 실험하고, 좋은 논문 내고, 이럴 여건이 전혀 아니었죠. 그러니 한밤중에도 집에서 할 수 있던 게 번역하고, 책 쓰고, 이런 거였죠.”

덕분에 그는 84년 제1회 한국과학저술인협회 저술상을 받았다.

“돌아보면 흠 잡히지 않으려고 바둥거린 삶이었던 것 같기도 해요. 그래도 그만둘 생각은 해본 적이 없는 걸 보면, 이공계 여성에게 경력 단절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지레 알았던 것 같기도 합니다. 국회의원 시절 KAIST와 포항공대 학생들이 『과학 해서 행복한 사람들』이란 책을 만들면서 여섯 명의 국내외 여성 과학자를 인터뷰했는데, 저를 만난 뒤 책의 후기에 ‘참 답답했다. 어떻게 그렇게 순응하면서 수퍼우먼으로 살았나’, 그런 조로 썼더라고요. 뒤통수를 한 대 얻어맞은 느낌이었어요. 우리나라 출산 절벽은 개인의 문제로 보는 한 해결책이 요원하다는 생각이 듭니다.”

그는 "외국인 교수들이 요즘 한국 유학생들 기량이 예전보다 떨어진다고 말한다”며 "교육 방식이 창의적인 인재를 만들지 못한다”고 걱정했다.

"지금 하고 있는 것을 다 벗어나는 게 우리가 가야 할 길 같아요. 골라내는 것 하고, 판에 박힌 사고를 하고, 사교육, 이런 게 다 당장 시험 점수는 높이지만 4차 산업혁명과는 정말 거리가 먼 교육입니다.”

[S BOX] “4대에 걸쳐 대통령 자문위원 했는데 박근혜 때 잘렸죠”

김명자 회장은 1980년대 말부터 정부 자문 일을 했다. 45년간 300개 이상의 일을 했더라고 말했다. 김대중 정부에서 환경부 장관(1999.6~2003.2)에 발탁되기 전에도 김영삼 정부에서 대통령 과학기술자문위원을 지냈고, 장관 물망에도 올랐다. 이명박 정부에서도 교육부 장관 등 후보에 올랐다. 환경부 장관으로 재임한 3년8개월은 헌정 사상 최장수 여성 장관 기록이다.

“4대에 걸쳐 대통령 자문위원을 했는데 박근혜 대통령 때는 잘렸죠. 하하….”

그는 정치적 색깔은 없다고 말했다. 열린우리당 비례대표로 제17대 국회의원을 할 때 “정치인이 못 돼 언저리에서 빙빙 돌다 나왔다”고 웃었다. 그는 김대중 대통령을 전혀 몰랐다고 한다. 손숙 전 환경부 장관이 갑자기 물러나자 공직기강팀이 실무적으로 선정한 경우라고 한다.

“저는 언론 보도에 비쳐진 ‘그런 이미지’를 갖고 있었는데 들어가서 뵈니 말씀이 그대로 글이 되고, 모든 답을 갖고 계신 분 같았어요. 애쓰시는 모습을 뵙고 좀 더 젊어서 하셨더라면 하는 생각을 할 때가 있었죠.”

그는 노무현 전 대통령과는 환경부 장관과 해양수산부 장관을 같이 하면서 새만금을 반대하는 ‘동지 장관’이었다고 말했다.

“노무현 대통령이 참 솔직한 분이시죠. ‘나는 정치인이라서 직설적으로 반대하기 어려운 입장이다. 김 장관이 말하면 뒤에서 전폭 지원하겠다’고 해요. 그런데 10여 년 숙원사업이던 낙동강 수계 특별법을 통과시킨 것을 보고 저를 건설교통부 장관으로 내정했어요. 한동안 고민하다 조각 발표 전날 사양을 했지요. 그 뒤에도 노 대통령이 국무위원 자리를 제안했지만 그냥 국회에 있겠다고 했어요. 이제 과총 회장으로 일하게 되면서 일복 하나는 확실하다는 생각을 하게 되네요.”

글=김진국 칼럼니스트 kim.jinkook@joongang.co.kr

사진=김춘식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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