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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진국이 만난 사람] 반기문, 가족 음해 당하자 크게 당황 … 정치인들 만난 후 대통합에 회의감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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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4면

김숙 전 유엔대사

그는 ‘아쉽다’는 말을 몇 번이나 반복했다. 김숙(65) 전 유엔대사는 반기문 전 유엔 사무총장의 최측근이다. 반 전 총장이 외교부 장관일 때 북미국장으로 호흡을 맞췄고, 유엔에서는 사무총장과 주유엔 대사로 함께 일했다. 그는 “그분의 마음을 가장 잘 안다고 할 수 있다”고 말했다.

일부 언론·SNS서 비판 확대 재생산
감수하면서 대통령 해야 하나 고민

박근혜 대통령과 동일시해 공격
제한된 기간에 극복하기 어려워

다음 정권에서 대북 유화책 펴면
트럼프 더 강경, 전쟁 가능성 높아져

사드는 순수 안보 시각서 결정하고
그로 생긴 문제는 외교로 풀어야

그는 1년 반 이상을 서울에서 대리인으로 도왔고, 대통령 선거도 준비했다. 그의 좁은 광화문 오피스텔은 반 전 총장의 서울연락소 역할을 했다. 지난해 하반기부터는 5인용 소파에 간이 의자까지 놓고 10명 정도가 끼어 앉아 전략을 논의했다. 그만큼 그는 아쉽고 허탈했다.

반 전 총장은 마포 선거사무소 해단식을 하면서 “출마를 결심한 게 내 생애 가장 잘못된 결정이었고, 접기로 한 게 가장 잘한 결정”이라고 말했다. 그러자 김 전 대사는 “오해할 수 있다”며 그 말을 자르고 롱펠로의 시 ‘화살과 노래’를 읊었다고 한다.

“나는 허공을 향해 화살을 쏘았으나/ 화살은 땅에 떨어져 간 곳이 없었다./ (중략)/ 세월이 흐른 뒤 고향의 뒷동산 참나무 밑동에/ 그 화살 부러지지 않은 채 꽂혀 있었고/ 나의 노래 처음부터 마지막 구절까지/ 친구의 가슴속에 숨어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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완전히 끝나지 않았다는 외침으로 들렸다.

김숙 전 유엔대사는 14일 “김정은과 김정남은 배다른 형제인 데다 평생 서로 얼굴 한 번 본 적 없어 포악한 정은이 이복형을 죽이는 데 일말의 연민도 안 느낀다”고 밝혔다. [사진 우상조 기자]

김숙 전 유엔대사는 14일 “김정은과 김정남은 배다른 형제인 데다 평생 서로 얼굴 한 번 본 적 없어 포악한 정은이 이복형을 죽이는 데 일말의 연민도 안 느낀다”고 밝혔다. [사진 우상조 기자]

왜 그만두셨습니까?
“사실 사명감을 갖고 시작했는데 음해(陰害)를 당하면서 크게 당황하게 된 거죠. 그런 것이 있으리라고는 생각했지만 이렇게 본인의 순수성을 갉아먹을 줄은 몰랐던 거죠. 보세요. 12월 말일 FBI가 조카를 기소하지 않았어요? 증거는 없지만 그게 국내에서 작동했다는 이야기도 있고, 한국계 미국인을 통해 했다는 이야기도 있고….”

그는 한참 동안 불만을 쏟아냈다.

“우선 탄핵으로 인해 너무나도 지형이 험악하게 되었고, 언론들의 전반적인 분위기가 적대적이고, 정치권이나 SNS꾼들이 대접하는 게 비전이라든지 이상이라든지 큰 건 생각 안 하고, 만 원짜리 두 장을 넣었다느니, 에비앙을 뽑았다느니, 이런 걸로 비판하니까 ‘내가 하려고 하는 것이 기름종이에 물 묻히듯이 도저히 안 받아들여지는구나’ 하는 좌절감을 느끼게 된 거죠.”

지지율은 등락이 있는 건데 너무 쉽게 포기한 것 아닌가요.
“지지율도 전혀 영향을 안 줬다 할 수도 없어요. 그렇지만 그렇게 절대적인 요소는 아니었어요. 서울에서 각계 인사, 특히 정치권 사람들을 만나면서 벽을 느꼈어요. SNS에 퍼지는 것들이 회의감을 느끼게 했죠.”
정치인을 만나 설득하고, 포용하는 것은 반 전 총장이 해야 할 일 아닌가요. 정치인을 겨우 한 번씩 만난 건데.
“그렇죠. 아쉽다는 사람이 많이 있는데, 본인이 직감적으로 느끼신 거로 봐요. 나도 너무 급작스러운 결정에 놀랐는데, 그래도 나는 이해했어요. 지난해 연말부터 반 전 총장의 순수성을 음해하려고 23만 달러 이야기를 하는데, 그건 ‘병풍(兵風)’과 마찬가지로 실체가 없는 일이거든요. 줬다는 사람도 안 줬다, 받았다는 사람도 안 받았다, 객관적인 사진까지 나와 있는데도 SNS와 일부 언론이 계속 확대 재생산하고…. 10년간 유엔 사무총장으로서 쌓아온 명예가 돌이킬 수 없게 훼손된다는 말이에요. 본인과 가족, 아들, 부인, 동생이 하나하나 비난과 음해의 대상이 되는 걸 보면서 ‘내가 이런 걸 감수하면서까지 대통령을 해야 하느냐’ 생각한 거죠.”
탄핵 국면에 보수세력이 엎드렸지만 시간이 지나면 달라지지 않을까요.
“바뀔 거니깐 기다리라고 정치학자들, 여론조사 분석가들이 찾아와 말씀드렸어요. 보수의 응답률은 점점 떨어져 13~15%고, 진보라는 사람들의 응답률은 70%대까지 올라갔어요. 꽤 왜곡돼 있으니 일희일비(一喜一悲)하지 마시라고 했어요. 그렇지만 근본적으로 국내 정치 풍토에 좌절을 느낀 겁니다.”
어디다가 깃대를 꽂았는지가 불분명했는데.
“아직 꽂지 않았었죠. 막 하려고 했어요. 독자적인 정치적 결사체를 만들어서 당분간 하겠다. 그리고 어느 정파, 정당하고 손 잡는 것이 가장 본인이 내건 기치에 맞는지 봐야겠다고 하고 있었죠. 그러면서 주요 정치인들을 동조해 줄 수 있는지 타진하는 과정이었어요. 그런데 신문에서는 대통합, 반패권 다 좋다 그러고는 만나서 얘기해 보면 1시간 동안 얘기해도 손에 잡히는 게 없는 거예요. 자존심을 죽이고 할 수도 있겠지만, 안 죽이는 건 본인의 결정이란 말입니다. 말릴 수도 없고.”
정치인을 비난하기 전에 삼고초려(三顧草廬)하면서 설득해야 이해도 하고, 희생도 하는 것 아닙니까.
“그럴지도 모르죠. 아무튼 본인이 더 늦기 전에 내가 해야 할지 안 해야 할지 결정해야 한다고 생각했어요. 마포 사무실을 여의도 더 큰 데로 옮겨야 했어요. 본인 돈을 들여서…. 그 즈음 본인이 새벽 5시에 일어나 생각한 겁니다. ‘내가 지금 느끼는 좌절을 누르고 뭔가를 만들어낼 수 있을까? 아니면 좌절이 나를 먹을까? 시간이 지나 좌절이 나를 완전히 압도하면 타이밍도 놓치고 마는 것 아니겠는가?’ 그 새벽에 그런 결단을 한 겁니다.”
최순실 대리인 정도로 여겨진 것 아닙니까.
“박근혜 대통령과 동일시하는… 그걸 극복 못했어요. 시간이 지나면 그걸 극복할 수 있겠는데, 제한된 대선 기간에 가능할 수 있을까, 그건 잘 모르겠어요.”

그는 이명박 정부에서 2년간 국가정보원 제1차장을 맡았다. 한반도평화교섭본부장과 6자회담 수석대표도 역임했다. 자연스럽게 북한 현안으로 말문을 돌렸다.

북한이 완전 고체연료를 사용한 북극성 2호를 쏘았는데, 트럼프 미국 대통령의 대북정책이 달라지지 않을까요.
“달라지려면 세 가지가 필요합니다. 인선(人選)과 말까지 두 가지는 나왔거든요. 한 가지 더 필요한 게 행동입니다. 1994년 제네바 합의 직전에 나왔던 정밀타격(surgical strike)은 그 이후 잠잠해졌어요. 지금은 ‘선제공격(preemptive strike)’이라는 얘기까지 나옵니다. 우리는 한반도에서 전쟁이 일어나는 걸 원치 않죠. 그러나 북한이 전쟁을 일으키면 항복할 순 없지 않겠어요? 그전까지는 전쟁을 방지하는 노력을 해야 합니다.”

그러면서 그는 대선후보들의 안보정책을 비판했다.

“그동안 어찌 됐든 공동 입장에서 북한을 대해 왔는데 트럼프는 더 강경하게 나가고, 다음 한국 정권은 ‘북한 먼저 가겠다’ ‘개성공단을 재개하겠다’며 대북 유화로 나가면 트럼프로선 한국에 대한 기대를 상당부분 접어버릴 수 있어요. 그렇게 되면 애초의 의도와 달리 전쟁 가능성은 더 높아지는 딜레마가 있습니다. 새 대통령이 취임하자마자 사드 문제, 개성공단 문제에서 전향적으로 나갈 경우 중국은 좋겠죠. 미국·일본과의 공조는 매우 위험해질 가능성이 꽤 커요.”

그는 사드는 “순수하게 우리 국가 안보에 관한 시각에서 결정해야 한다”고 말했다. 그로 인해 야기되는 문제는 분리해 외교적으로 풀어야 한다는 것이다.

“어떻게 푸느냐. 풀 방법이 있죠. 오늘, 내일, 또는 1~2주 만에 풀어라 그러면 못 풀겠지만 외교라는 게 얼마든지 풀어나갈 수 있는 구멍이 많이 있어요. 그게 겁난다고 외교와 안보를 뭉뚱그려 짬뽕을 시켜버리고, 중국 사람들이 하는 말을 우리가 그대로 받아와서 국내에서 주장하는 게 걱정스러워요.”

[S BOX] “김정남, 아들 때문에 두 번 망명 타진”

김숙 전 대사는 “김정남이 아들의 신변에 대한 인간적인 고민 때문에 망명을 두 번 타진한 적이 있다”고 말했다.

“김정남은 중국이 편의를 봐주고 있어 괜찮아요. 그런데 아들 한솔이에 대한 걱정이 많더라고. 우암각 사건 때 북한에 들어가 해명하고 나왔는데도 어느 순간 자기 여권을 연장해 주지 않는 거라. 돈도 안 보내고. ‘나를 버리는 게 아닌가. 내 아들은 어떻게 되는 것인가’ 하는 인간적인 고민이 있었을 거라고 봐요. 말레이시아·싱가포르에도 친구가 있고. 그런 사람들을 만나면 토로하고, 그 사람들이 ‘정 그렇게 걱정되면 한국 쪽에다 타진해 봐라’ 이런 정도까진 갔는데 구체적으로 우리 당국 쪽에 ‘여권 주쇼’ ‘서울로 데려가쇼’ 이렇게까진 안 했어요.”

- 일부 소문은 김정남이 요구하는 게 많아 성사가 안 됐다는데.

“모르겠어요. 나는 국정원 나온 지가 5~6년 돼 그 이후에 이루어진 것은 모르지만 그 전 이야기는 그래요. 황장엽도 김대중·노무현 정부 때 대북정책에 굉장히 실망해 ‘괜히 왔다’ ‘남북통일 안 됐으면 좋겠다’고 한 적이 있어요. 북한이 망하더라도 북한 망명정부를 세워 나라를 새롭게 만들겠다는 생각이 있었거든요. 그들이 말하는 백두혈통인 김정남 같은 사람을 간판으로 세워 망명정부 같은 것을 만들면 어떻겠느냐 하는 얘기도 있었는데 그거를 김정은이 잊지 않고 있었던 게 아닌가 싶어요.”

김 전 대사는 2009년 2월부터 2011년 4월까지 국정원 제1차장이었다. 국제 정보와 대북정보 분석까지 담당했다. 그에 따르면 김정남의 집은 마카오와 베이징에 있다. 마카오에 집이 2~3채 있는데, 하나는 자기가 살고, 나머지는 세를 놔 수입을 얻었다. 베이징 집은 중국 당국에서 제공해 줬다.

“김정은과 김정남은 배다른 형제인 데다 평생 서로 얼굴 한 번 본 적 없어요. 김정남이 71년생이고 김정은이 84년생이에요. 84년 이후 33년 동안 평양에서 같이 지낸 기간이 얼마 안 돼요. 같이 지낸 기간은 의도적으로 떼어놨어요. ”

글=김진국 칼럼니스트 kim.jinkook@joongang.co.kr
사진=우상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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