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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진국이 만난 사람] 김진태 의원 식은 안 돼 … 보수 지키려면 좌파정책 많이 수용해야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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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4면

‘보수의 아이콘’ 김용갑 전 장관

김용갑 전 장관은 지난달 28일 박근혜 정부의 실패를 “직언하는 참모 대신 시키는 대로 하는 사람만 임명했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사진 김현동 기자]

김용갑 전 장관은 지난달 28일 박근혜 정부의 실패를 “직언하는 참모 대신 시키는 대로 하는 사람만 임명했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사진 김현동 기자]

김용갑(81) 전 총무처 장관은 보수의 아이콘이다. 그의 발언이 ‘보수 꼴통’이다. 그러면서도 육사(17기) 출신답게 던질 때 던질 줄 안다. 그런 과감한 결단, 어떻게 보면 돌출적인 행동으로 그는 주목을 받았다.

박 전 대통령·최순실 관계 전혀 몰라 #원로로서 책임감 많이 느끼고 있어 #대통령 되기 전엔 전화 많이 했는데 #청와대 가고 나서부터 모두 차단돼 #박 전 대통령 구속 가슴 아픈 일 #운명이라 생각하고 이겨냈으면 #지금은 안보 리더십 필요한 시점 #보수 결집해 좌파의 횡포 막아야

그는 1988년 “국가를 좌경화의 위험에서 구출하라”며 총무처 장관직을 박차고 나갔고 2000년 대정부질문에서 새정치국민회의를 ‘조선노동당 2중대’라고 주장해 파문을 일으켰다.

그가 요즘 매우 착잡하다. 박근혜 전 대통령의 측근 원로그룹인 ‘7인회’ 멤버로서 국정 실패에 책임을 피할 수 없기 때문이다. 박 전 대통령에 대한 구속영장이 신청된 지난달 28일 그의 서울 반포동 자택을 찾았다. ‘원조 친박’의 생각을 듣고 싶어서다.

“불행한 일인데…. 난 박 (전) 대통령과 최순실 관계는 전혀 몰랐어요. 만일 조금이라도 알았더라면…. 참, 나로서도 대단히 책임감을 느끼고 있어요.”

7인회가 최씨를 몰랐다면 말이 됩니까.
“우리는 정치에 개입하지 않았으니깐. 김기춘 전 대통령 비서실장은 박 전 대통령에게 말(직언)을 한마디도 안 한 사람입니다. 내가 늘 말했어. ‘5년은 잠깐 간다. 대통령이 돼 구중궁궐에 들어가면 제대로 들을 수가 없다. 그러니깐 직언할 사람을 옆에 두어야 한다. 그러니 민정수석은 검찰로 하지 말고 민간인 출신을 임명해라. 검찰은 상명하복에 젖어 직언을 못한다’.”
박 전 대통령에게 해 주고 싶은 말이 있나요.
“가슴 아픈 일입니다. 운명이라 생각하고 잘 이겨 내 주면 좋겠습니다.”
김용갑 전 장관은 지난달 28일 박근혜 정부의 실패를 “직언하는 참모 대신 시키는 대로 하는 사람만 임명했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사진 김현동 기자]

김용갑 전 장관은 지난달 28일 박근혜 정부의 실패를 “직언하는 참모 대신 시키는 대로 하는 사람만 임명했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사진 김현동 기자]

그러면서 그는 얼굴을 찡그리며 한참을 탄식했다.

“정윤회 사건이 터졌을 때도 정윤회만 문제라고 생각했지, 최순실은 상상도 못했다고…. 왜 인사를, 그런 사람들로만 채웠느냐, 이거야. 김기춘 전 실장을 비롯해 어째 한 사람도 제대로 이야기를 못하느냐, 이거야.”

김 전 실장은 7인회가 추천한 것 아닙니까.
“아니야. 가장 시키는 대로 할 사람을 임명한 거야.”
급하게 연락해도 최순실을 거친 뒤 회신한다는 얘기도 있던데.
“최순실의 존재를 알고 나서 그걸 안 거고, 그전에는 이해가 안 되는 겁니다. 나는 민정수석일 때 전두환 대통령에게 너무 자주 문제가 있다, 문제가 있다고 보고했어요. 이런 일은 상상을 못했는데. 그런 인사를 옆에 잘못 둬서 아무도 눈과 귀 역할을 안 하고 닫아 버린 겁니다.”
유신 말기에 중앙정보부에서 일하시지 않았나요.
“감찰부실장 하다가 12·12 이후 감찰실장, 기조실장이 됐죠.”
그러면 김재규 중정부장이 최태민을 조사한 내용을 알 수 있었을 텐데.
“그때는 국방대학원에서 교육을 받고 있었어요. 12·12 이후 돌아왔죠.”
전두환 전 대통령은 집권 이후에도 최태민을 관리했잖아요.
“나는 관여할 위치가 아니어서 듣기만 들었어요.”
7인회 멤버인 김용환 전 재무부 장관은 박 전 대통령에게 ‘최태민 그림자를 지우라’고 건의해 눈 밖에 났다고 하는데.
“나는 박근혜 대통령이 되기 전에는 전화 많이 했어요. 그런데 되고 나서는 모든 전화가 차단되고 불통이야. 끊어 버렸어요. 중간에 안봉근에게 전화를 걸어 보니 음성이 달라지는 겁니다. ‘괜히 걸었다. 앞으로 안 건다’. 자존심이 상했어요. 나중에 김기춘이 비서실장이 되더라고요. ‘왜 그리하느냐’고 하니까 ‘형님, 저는 형님처럼 배짱이 없습니다’ 그래요.”
김기춘 전 실장은 최순실의 존재를 알았을 것 아닙니까.
“대통령이 옷 사고 하는데 전부 누가 해주나 알아봐라 하면 최태민 딸이다, 그랬겠지요. 박관천 경정 문제가 터졌을 때도 ‘이게 어떻게 나왔느냐’ 당연히 확인해야지. 직무 유기야. 그걸 시키려고 비서실장 시킨 거 아닙니까.”

박 전 대통령은 지난해 10월 29일 김용갑 전 장관을 포함해 새누리당 고문들을 청와대로 불렀다. 박 전 대통령이 최순실씨로부터 연설문 표현에 도움을 받은 적이 있다고 1차 사과한 직후다. 다들 말을 아끼자 김 전 장관이 말을 했다고 한다.

“남자 대통령은 말기에 늘 문제가 생겨 불행한 일을 겪었습니다. 여자는 안 그럴 것이라고 대통령을 만들었는데 4년도 안 돼 왜 이렇게 됐습니까. 최순실이 뭡니까. 그런 사람하고 엮여서 국민 자존심을 건드립니까. 그런 식으로 사과하지 말고 국민이 납득할 수 있고, 진정성을 받아들일 수 있도록 충분히 설명하십시오. 제2의 6·29선언을 하세요. 그래도 국민이 납득을 못하면 대통령을 그만하겠다고 하십시오.”

그리고 그는 “인사를 왜 그렇게 하느냐”고 따졌다고 말했다.

“처음에는 그렇게 하나 보다 했더니 뭐 이상하게…. 그러나 저러나 천하의 권력을 휘두르다가 너무나 초라하다, 초라해. 박 전 대통령이 구속되는 건 우리 국민이 구속되는 거나 마찬가지입니다. 우리 대통령이었으니까. 가슴이 아픕니다. 법을 지켜야겠지만… 야… 대통령이 도주할 정도로… 다 지나간 이야기야.”

김용갑 전 장관은 지난달 28일 박근혜 정부의 실패를 “직언하는 참모 대신 시키는 대로 하는 사람만 임명했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사진 김현동 기자]

김용갑 전 장관은 지난달 28일 박근혜 정부의 실패를 “직언하는 참모 대신 시키는 대로 하는 사람만 임명했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사진 김현동 기자]

중간에 여러 번 기회가 있었는데.
“시스템이 하나도 없었다는 겁니다. 대통령 되기 전에 말했어요. 청와대 안에 가면 귀 막고 눈 막고 하니까, 주변 이야기를 믿지 말고 시스템을 만들라고 해도 이 양반은 안 된대. 하도 내가 그러니까 박 전 대통령이 ‘그러면 고문님이 전화를 주세요. 문제가 있으면’ 그래요. 그런데 전화를 할 수가 없어. 삐딱한 소리만 하는데 바꿔 주겠어요. 고문들 한 번 불러서 차 한잔하면서 조언 듣는 것도 안 해요.”
박 전 대통령은 왜 그렇게 최순실한테 매였을까요.
“안에 살림살이하는 사람이 최순실이야. 그러니까 경계심이 없는 거죠.”
공직에 대한 개념이 없는 것 같아요.
“너무나 실망스럽습니다.”

그는 이제라도 박 전 대통령이 “모든 걸 내려놓고 대통령으로서 위신은 세웠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청와대 참모들도 시키는 것 말고는 아무것도 못하는 사람들 같아요.
“그건 졸병이 하는 겁니다.”
보수정당이 어떻게 되어야 합니까.
“우리나라가 지금까지 발전한 것은 보수적 리더십에 의해섭니다. 좌파정권은 햇볕정책 가지고 북한을 도와준 것밖에 없습니다. 그 결과가 핵과 미사일 아닙니까. 우리가 건국 이후 최대 위기에 있습니다. 이때야말로 안보 리더십이 필요한 시점입니다. 그게 불행하게도 친북적인 정권이 탄생하게 되었습니다. 지금 방법은 없어, 없는데… 할 수 있는 방법은 보수가 결집하는 수밖에 없다 이겁니다. 정권을 못 잡으면 좌파정권의 횡포를 막아야죠.”
보수정당이 다시 신뢰를 받으려면 당으로서도 책임지는 자세를 보여야 하는 것 아닙니까.
“말은 쉬운데 국회의원에게 나가라, 그만둬라 할 수야 없지요. 역할을 할 수 없게는 할 수 있지만…. 그것보다 지금 친박이 어디 있습니까.”
당장 가두 집회에도 나가서….
“그건 두서너 사람이죠. 그 사람들은 안에서도 다 지적받는 거 아닙니까.”
김 전 장관은 이명박·박근혜 정부에도 많이 실망했다고 말씀하셨는데 정권을 교대하는 게 민주주의 아닙니까.
“시기가 안 좋아요. 그래서 걱정하는 거지.”
집권하려면 세력을 넓혀야 하는데 보수가 스스로 소수로 고립되는 것 아닙니까.
“김진태 의원 식의 그런 게 보수가 아니고, 보수를 지키려면 좌파정책을 많이 수용해야 하는 거예요. 복지도 그렇고, 경제적인 균형 문제도 그렇고. 그래도 시장경제 원칙은 유지하고, 안보는 확고히 해야죠.”
집회에 나가서 떠들고 하면 그런 분이 자유한국당의 이미지로 굳어지는 것 아닙니까.
“그걸 하면 안 돼. 국민이 상당히 싫어하거든.”
태극기집회에 나가 보셨나요.
“안 가 봤어요. 나는 주장을 많이 하지만 다중의 힘을 빌리는 사람이 아닙니다.”
육군소령으로 예편한 그는 안기부(국정원) 감찰실장·기조실장을 거쳐 총무처 장관을 역임했다. 96년 15대 총선 때 고향인 경남 밀양에서 무소속으로 당선된 뒤 신한국당에 입당, 16·17대에도 당선됐다. 현재 자유한국당 상임고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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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 BOX] 30년 전 민정수석 시절 “생각 바꿔야 이긴다” 6·29선언 건의

대통령 직선제를 되찾은 지 30년. 직선제 개헌은 1987년 노태우 전 대통령의 6·29선언으로 길이 열렸다. 광장을 가득 메운 6월항쟁의 결과다.

6·29선언에 대해서는 아직도 증언이 엇갈린다. 노 전 대통령은 전두환 전 대통령의 4·13 호헌조치를 뒤집는 ‘구국의 결단’이었다고 한다. 전 전 대통령은 자신이 노 전 대통령을 설득해 "나를 밟고 가라”고 했다고 한다. 최근 출간된 이순자 여사의 자서전도 전 전 대통령이 6월 17일 노 후보를 불러 설명하고, 이틀 뒤 설득됐다고 썼다.

김용갑 전 장관은 “날짜를 착각하신 것”이라며 “나는 수첩에 시간 단위로 적어 놔 정확하다”고 말했다. 처음 자신이 건의했다는 것이다.

민정수석이었던 그는 87년 6월 10일 시청 앞 시위, 명동성당 농성장 등 하루 종일 현장을 다니며 살폈다. 이때 시간이 갈수록 어렵다고 판단해 직선제를 받아 주고 이기는 방법을 생각했다고 한다.

12일 플라자호텔에서 안무혁 안기부장, 이춘구 민정당 사무총장을 만나 직선제 수용을 이야기했으나 “무슨 뚱딴지 같은 소리냐”는 말을 들었다. 18일 오전 9시20분 당시 김 수석은 전 대통령에게 보고했다.

“남은 임기 8개월 동안 추락한 민심을 회복하고 정상적 정권 교체를 할 수 있겠습니까? 불가능합니다. 생각을 바꿉시다. 생각을 바꾸면 이길 수도 있습니다.”

그는 김대중씨의 정치활동 금지를 풀어 3자 대결을 유도하고, 김수환 추기경 등 사회 원로들에게 시국 수습방안을 듣는 형식을 거치자는 방법까지 제시했다. 전 대통령은 시원하게 받아들였다. 그러나 노 후보는 반대했다. 며칠을 밀고 당기다 27일에야 합의했다고 김 전 장관은 밝혔다.

글=김진국 칼럼니스트 kim.jinkook@joongang.co.kr

사진=김현동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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