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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의 국채 신뢰 흔들기, 세계금융 위해 있어선 안 될 일”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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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2면

사공일이 만난 석학 (3) 커밋 숀홀츠 뉴욕대 스턴스쿨 석좌교수
트럼프 시대 세계는 어디로

커밋 숀홀츠 뉴욕대 경영대 석좌교수(오른쪽)가 지난달 22일 뉴욕 맨해튼의 대학 연구실에서 중앙일보 사공일 고문과 이야기하고 있다. 숀홀츠 교수는 금융 규제 완화 필요성은 일부 인정했지만 트럼프 행정부의 미국 경제 낙관은 “지나치다”고 봤다. [뉴욕=안정규 JTBC 기자]

커밋 숀홀츠 뉴욕대 경영대 석좌교수(오른쪽)가 지난달 22일 뉴욕 맨해튼의 대학 연구실에서 중앙일보 사공일 고문과 이야기하고 있다. 숀홀츠 교수는 금융 규제 완화 필요성은 일부 인정했지만 트럼프 행정부의 미국 경제 낙관은 “지나치다”고 봤다. [뉴욕=안정규 JTBC 기자]

뉴욕 증시가 후끈 달아올랐다. 감세와 인프라 투자로 성장의 메시지를 전한 도널드 트럼프의 첫 의회 연설 덕분에 1일(현지시간) 다우지수는 사상 처음으로 2만1000선을 돌파했다. 다우·S&P500·나스닥지수 등 3대 지수가 모두 사상 최고치다. 월가를 잘 아는 이코노미스트는 이런 ‘트럼프 랠리’를 어떻게 보고 있을까. 지난달 22일 커밋 숀홀츠 뉴욕대(NYU) 경영대(스턴스쿨) 석좌교수를 뉴욕 맨해튼에 있는 그의 연구실에서 만났다.

트럼프 선거 때 Fed 변화 예고 #35년 지켜온 독립성 해칠까 우려 #기업 부채, 은행 부실, 관치 금융 #중국 경제, 장·단기 모두 걱정스러워 #독일이 경상수지 흑자 본다고 #환율조작으로 비판하는 건 곤란 #남북한 밤 위성사진 불빛차이 보라 #중요한 건 제도지 문화가 아니다

▶사공일=트럼프 대통령이 유세 때는 월가와 금융기관들에 상당히 비판적이었는데, 월가는 트럼프의 당선을 환영하고 있다. 주가도 크게 올랐다. 어떻게 설명할 수 있나.

▶커밋 숀홀츠=무엇보다 경제성장에 대한 낙관 때문으로 본다. 상당한 금융 규제 완화로 은행과 금융기관이 더 많은 이윤을 내고 이것이 주주들에게 돌아갈 것이란 분석도 반영됐다고 본다. 그래서 주가가 올랐다.

▶사공=낙관이 오래 지속되리라고 보나.

▶숀홀츠=낙관이 좀 지나치지 않나 우려한다. 트럼프가 말한 것처럼 미국 경제가 앞으로 10년간 매년 3% 이상 성장할 것으로 보는 것은 상당한 무리가 있다.

▶사공=2007~2008년 금융위기 이후 앞으로의 금융위기를 사전에 예방하자고 만든 주요 금융 규제법(예를 들면 도드-프랭크법)을 크게 완화하겠다는 것에 대해 금융 규제 분야의 최고 전문가인 당신의 의견은.

▶숀홀츠=금융시스템에 영향을 미칠 수 있는, 시스템적으로 중요한 대형 금융기관에 대한 적절한 규제는 물론 필요하다. 방법은 여러 가지가 있다. 그런데 금융위기 이후 만들어진 도드-프랭크법 등 주요 금융 규제법은 상당 부분 개선의 여지가 있는 것이 사실이다. 미국에는 거의 6000개의 은행이 있는데, 대부분은 소규모로 미국 금융시스템 전반에 큰 영향을 미칠 가능성은 낮다. 그래서 이들 소규모 은행에 대한 규제 완화는 필요하다고 본다.

▶사공=당신은 미국 금융 규제 시스템 자체가 너무 복잡하고 다기화돼 있어 이 문제 해결도 시급하다고 주장했다.

▶숀홀츠=그렇다. 현재 미국의 금융 규제 당국은 너무 많고 복잡하게 얽혀 있다. 각 주의 규제 당국까지 포함하면 100개가 넘는 규제 당국이 있다. 이는 평상시에도 문제가 되지만 위기 시에는 더욱 문제가 될 수 있다. 그래서 금융 규제 체제 자체를 정비하는 것이 아주 중요하다.

▶사공=조금 시야를 넓혀 일반적으로 ‘금융위기’를 방지하기 위해 가장 중요한 것을 꼽는다면.

▶숀홀츠=영국의 런던 밀레니엄 브리지가 일반에 공개되던 날(2000년 2월 10일) 많은 사람이 몰렸고 다리가 크게 흔들렸다. 그래서 일시적으로 다리를 폐쇄하고 충격 흡수 장치를 설치해 지금은 안전하다. 마찬가지로 금융시스템도 충격 흡수 장치가 필요하다. 미국의 경우 2007~2008년 이후 은행의 자본이 크게 확충됐다. 그러나 아직 충분치 않다. 은행 자본을 더 확충하면 금융의 시스템 리스크를 줄이는 데 도움이 된다.

▶사공=화제를 바꿔보자. 스스로 ‘부채의 왕(king of debt)’이라고 한 트럼프가 유세 기간에 언급한 바 있는 미국 국채(재무부 증권)의 채무 조정 문제와 사실상의 세계 기축통화인 달러에 대한 당신의 생각은.

▶숀홀츠=트럼프는 국채 관리에도 부동산 사업이나 기업 차원의 부채 관리, 거래(deal making) 원칙들을 직접 적용할 수 있다고 보는 것 같은데 둘은 전혀 다르다. 기업 부채는 채무 불이행도 일어날 수 있고 채무 조정도 불가피하게 일어날 수 있다. 그러나 미국 국채는 다르다. 실제 미 재무부 채권이 가장 안전한 투자 자산으로서 세계 금융체제의 중심에 자리 잡고 있는 것은 재무부 채권에 대한 흔들림 없는 신뢰가 있기 때문이다. 그런데 그것을 흔드는 일은 미국의 이해관계뿐 아니라 세계 금융시스템의 안정 차원에서 있을 수 없는 일이고 있어서도 안 된다.

▶사공=현재 6조 달러 이상의 외국인 소유 미 재무부 채권의 3분의 2는 외국의 정부기관이 보유하고 있으며 그중 5분의 1은 중국이 보유하고 있다고 알려져 있다. 현재까지의 이들 반응은 어떤가.

▶숀홀츠=다행스럽게도 시장은 그런 일(채무 조정)이 일어날 수 없다고 보는 것 같다. 다시 말해 트럼프가 유세 기간에 한 말에 큰 무게를 두는 것 같지 않다. 나는 시장의 생각이 맞기를 바란다.

▶사공=미국 국채가 가장 안전한 투자자산으로서의 위치를 유지함으로써 미국이 얻는 이득은 어마어마하게 큰 것이 아닌가.

▶숀홀츠=그렇다. 미국은 재무부 증권을 항상 낮은 금리로 발행할 수 있다. 미국은 국내총생산(GDP)의 0.5%에 해당하는 정도의 이익을 매년 얻는다고 추산하고 있다.

▶사공=그래서 발레리 지스카르데스탱(Valery Giscard d‘Estaing) 전 프랑스 대통령은 미국 달러가 사실상 세계 기축통화로서의 위치에서 생기는 이득을 ‘미국의 과다한 특권(exorbitant privilege)’이라고 한 바 있다. 그럼 미국 연방준비제도(Fed)의 독립성 문제로 화제를 돌려보자. 트럼프는 유세 동안 Fed의 독립성이 지나치다는 생각을 비춰 왔다. 조금 있으면 재닛 옐런 Fed 의장과 스탠리 피셔 부의장의 임기가 만료되고, 머지않아 Fed 이사 몇 명이 교체될 터인데 Fed의 독립성에 변화가 올 것으로 보나.

▶숀홀츠=지난 35년간 미국의 전임 대통령들은 Fed를 비정치화하려고 노력해 왔다. 그동안 몇몇 대통령은 반대 당의 전임 대통령이 임명한 Fed 의장을 재임명했다. 그 결과 Fed는 긴 안목에서 경제와 물가 안정을 이룩하는 데 크게 기여해 왔다고 본다. 그런데 아직은 두고 봐야 알겠지만 지난 35년간 유지돼 온 Fed의 독립성에 변화가 올까 우려된다.

▶사공=당신은 일본어도 할 수 있고 아시아 지역에 대해서도 잘 알고 있는데 트럼프의 대아시아 정책은 어떻게 될 것으로 보나.

▶숀홀츠=아직은 새 정부의 대외정책이 확실치 않다. 트럼프 내각에는 글로벌 리더십과 우방과의 관계에 관해 미국의 전통적인 시각을 가진 인사들도 있고, 대통령과 부통령 간의 의견이 외교 분야에서 반드시 일치하지 않는 측면도 있는 것 같다. 더 두고 볼 수밖에 없다. 다만 이민 정책만은 이미 큰 변화가 있었다. 인류의 중요한 가치를 지켜온 이민자의 나라인 미국의 국가적 평판에 해가 되지 않기를 바랄 뿐이다.

▶사공=일본의 아베노믹스는 어떻게 평가하나.

▶숀홀츠=아베 신조 총리가 강조한 공급 측면의 구조조정은 거의 이행되지 않고 있어 실망스럽다. 미국의 환태평양경제동반자협정(TPP) 탈퇴로 외압이 줄어 구조조정을 더욱 어렵게 할 것이라고 생각할 수도 있겠으나 중요한 것은 일본 스스로의 정책 의지다.

▶사공=중국 경제의 현황과 앞날은 어떻게 보나.

▶숀홀츠=중국 경제에는 우려되는 측면이 여럿 있다. 특히 금융 시스템에 몇 가지 문제가 있다. 지난 8~9년간 빠르게 늘어나 현재 아주 높은 수준에 있는 기업 부채가 있다. 중국의 은행은 대부분 국영인데 이들 은행의 문제가 생길 때마다 정부의 뒷받침으로 견뎌왔고 그것조차도 투명하지 않다. 부실채권의 규모 자체에 대한 우려가 크다. 또한 은행에 대한 이러한 정부 정책은 결과적으로 금융 자원의 효율적 배분에 문제를 일으키게 되고 경제성장을 떨어뜨릴 수밖에 없다. 그래서 중국 경제는 단기적인 금융 리스크도 배제할 수 없을 뿐 아니라 긴 안목에서 볼 때 걱정스러운 면이 있다.

▶사공=최근 들어 유럽연합(EU) 경제는 큰 문제없이 서서히 호전되고 있다.

▶숀홀츠=유럽이 당면한 도전은 유럽 각국의 정치다. 특히 유로 체제가 유지되려면 정부 간 긴밀한 협력이 필요한데 각국에 그것을 지지하지 않는 유권자도 상당수 있다. 브렉시트 경우에서도 봤고 프랑스에서도 이와 비슷한 주장을 하는 대통령 후보와 정당이 있다.

▶사공=독일은 현재 경상수지 흑자가 많아 옳든 그르든 간에 트럼프 행정부가 환율조작국으로 거론하고 있다. 독일 경제에 대한 소견은.

▶숀홀츠=올해 앙겔라 메르켈 총리 재선에 독일 경제가 문제가 될 것으로 생각하는 이는 아무도 없다. 사실 독일 경제는 다른 나라들이 배워야 할 측면이 많은 모범 경제로 손꼽힌다. 특히 10여 년 전에 있었던 노동시장 개혁이 독일 경제의 놀라운 성과에 크게 기여했다는 점은 모두가 인정한다. 높은 경상수지 흑자와 관련해 독일이 EU와 세계 경제 전체를 위해 적극적인 재정 확장 정책을 펴야 한다는 주장에는 일리가 있다고 본다. 그러나 독일의 경상수지 흑자를 보고 환율조작이라고 비판하는 것은 분명히 문제가 있다고 본다.

▶사공=한국 경제에 대한 당신의 평가는 어떤가.

▶숀홀츠=나는 거시경제학 강의에서 한국을 정책과 리더십의 성공 사례로 자주 인용한다. 60여 년 전 한국의 1인당 소득을 보면 어느 경제 전문가가 한국이 세계에서 가장 잘사는 나라 중 하나가 될 수 있을 것으로 내다볼 수 있었겠나. 이론적으로 다른 나라들도 올바른 정책과 제도, 리더십만 갖춰진다면 한국과 같은 성공이 가능하다는 희망을 보여주는 훌륭한 사례다.

▶사공=특히 남북한 경제 상황을 비교해 보면 체제와 리더십이 얼마나 다른 결과를 가져올 수 있는지를 무엇보다 잘 알 수 있다.

▶숀홀츠=그렇다. 나는 항상 중요한 것은 제도이지 문화가 아니라는 점을 강조한다. 아마추어 천문학자인 나는 인공위성이 잡은 한반도의 밤 풍경을 학생들에게 보여준다. 남북한 휴전선을 경계로 명확하게 구분된다. 같은 언어, 문화를 공유한 남북한의 차이는 문화에서 온 게 아니라는 점을 재차 강조하기 위해서다.

커밋 숀홀츠

커밋 숀홀츠

정리=송경진 세계경제연구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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