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대로 옮긴 『회장님 좋습니다』인기 폭발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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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5면

노동의 정당한 댓가를 요구하는 노동자들의 시위가 봇물터지듯 일어나자 「비룡그룹」의 김덕배 회장도 별도리가 없다. 『여러분, 나 김덕배요. 여러분들의 주장은 정당한 것입니다. 나는 여러분들이 제시한 9개항을 수락하겠습니다. 모두들 직업장으로 돌아가십시오.』 회장의 중대선언. 이사들이 아부한다. 『회장님의 이번 선언은 전세계를 충격에 빠뜨렸습니다.』 (회장, 진지한 얼굴로) 『나는 이 선언을 위해 이틀동안 밤샘을 했어. 마누라가 이를 받아들이지 않으면 모든 공직에서 사퇴하겠어….』 (전화벨이 울린다. 겁먹은 표정으로 전화를 받는 회장)
이사들을 불러모은다. 『마누라가 그러는데 이번 선언을 말야…. 천천히, 아주 천천히 그러나 안 한다고는 하지말고 천천히 하자는 거야…. 그리고 이번 사태의 주동자는 하나씩, 아주 하나 하나씩 찾아내서….』 (이사들 복창) 『찾아내서?…』 『모두….』 (회장, 손을 내리친다) 『잘라버려!』 순간 불이 꺼지고 막이 내린다.
지난 1일부터 실험극장에서 공연중인 연극 『회장님 좋습니다.』 극장안은 콩나물시루처럼 빽빽하다. 1백30명 정원에 매회 2백30여명씩 들어차 숨이 막힐 정도.4시30분 첫회 공연이면 2시간전부터 3백여명씩 줄을 선다. 이미 7천장이 예매된 상태.
관객들은 『TV에서보다는 풍자의 영역이 넓은 것 같다. 그러나 웃음만을 위해 기업인들이 지나치게 왜곡될 소지가 없는것도 아니다』 (이권희씨· 27· 교사· 서울상도2동)는 반응을 보인다.
사실이 아닌 것으로 밝혀졌지만 H그룹회장이 개막첫날 7석을 예약했다는 설이 그럴듯하게 퍼졌고 실제로 극장 가까이 있는 그룹의 직원들이 20여명씩 단체관람을 온다는 연극 『회장님…』은 TV와 달리 정치권의 풍자가 돋보인다.
이사들이 회장의 대통령출마를 부추긴다. 그러나 대통령이 되려면 투쟁경력이 필요하다는 의견이 제시되자 회장, 『나도 감옥 갔다왔어.』 처남이 일어선다. 『맞아요. 친구한테 사기쳐서….』
그밖에 회장과 대학생들의 대담, 회장의 어두웠던 과거, 부를 향한 욕망의 세월, TV에는 나타나지 않는 사모님의 등장등이 관객으로 하여금 편한 마음으로 대사 하나하나에 폭소를 터뜨리게 하지만 정원을 초과해 관객을 입장시킨 극장은 너무 좁고 답답하다.<박해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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